엄마와 엄마가 된 딸 사이의 묘한 불편함
딱히 말썽부린 적 없고 나름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 취업도 했다가 비록 경단을 거쳐 다시 취업도 그럭저럭 해냈고 결혼도 순탄했고 남보기에 썩 나쁘지 않은 스펙(?)의 내가 썩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바로, 우리 엄마.
머리 큰 자식은 독립해야 한다고 했던가. 언젠가부터 엄마랑 있는 것이 묘하게 불편했다. 싫다는 게 아니다. 어딘가 편치 않은 그 무엇. 사실 어릴 때도 당연히 그럴 때가 있었지만 그 땐 독립할 엄두를 못 냈던 거고 커서 독립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30대 초, 결혼으로 나는 엄마와 분리가 되었다.
결혼을 하고 나니 엄마의 마음이 이해될 때도 있었고 괜히 애틋해지기도 하고. 자잘한 것들을 살 때 엄마 것도 사고 내 딴에는 챙긴다고 생각했는데 엄마 생각에는 전혀 그렇지 못한 모양이다.
"누구 집 딸은 그렇게 친절하게 다 알려주는데 넌 전화하면 바쁘단 식으로 전화 받고 친절하지도 않고."
회사에서 진짜 바쁠 때도 있고 그렇다고 바쁘다고 끊은 적도 없고 나름 친절하게 하려고 매우 노력했는데 이런 피드백은 어딘가 억울하다.
"애는 엄마가 키워야지."
아니 저기요.. 저 경단되고 다시 취업하는 것도 정말 힘들었는데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시면 안 되는데요. 남들은 맞벌이한다고 애 봐달라는데 그것도 아니고 툭하면 애는 엄마가 키우리면 돈은 하늘에서 떨어지나 싶고 내 노력은 안 보이나 서운하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저는 육아가 적성에 잘 안 맞아요..
"대에단하다. 엄마라고 하나 있는데 궁금하지도 않냐? 잘 사나보네."
솔직히 일주일 넘게 전화 안 한 건 맞지만 아이 사진을 올리는 인스타로 나름 근황을 전하고 있다 생각했고 정신없이 살다보니 전화한지 일주일이 지났는지도 몰랐고... 다 떠나서 솔직히 말하자면 전화가 편치가 않으니 잘 안 하게 되더라. 그래도 이건 안 하긴 했으니까 엄마의 불만 접수. 그래도 이왕이면 좀 친절하게 잘 지냈어?하면 찔려했을 걸 대뜸 전화와서 이러면 잘못했어도 괜히 뿌에-하고 싶은 마음.
그러니까 이게 내가 잘했고 엄마가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다. 생각해보면 충분히 엄마 입장에서 서운할 수 있고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고 엄마는 평생 자식만 보고 살았고 나를 사랑하는 것도 맞는데 묘하게 안 맞는 그런 그 무엇.
아이를 키우다 보면 엄마를 이해한다고 하는데 오히려 그러지 못할 때도 있다. 어릴 때 상처들이 불현듯 찾아오기도 하고 나한테 왜 그랬을까 싶기도 하고. 오은영 박사의 금쪽이 치료를 보며 본인을 대입 시키는 어른들의 댓글이 달리는 거 보면 이런 게 나 뿐만은 아닌 것 같다. 하기사 그 시절에는 아이는 말 안 들으면 때리는게 응당 교육이었고 지금처럼 육아에 대한 정보도 없었고 부모들은 심지어 너무나 어렸고 지금의 관점으로는 해석하면 안 되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다. 손주가 있답시고 금쪽이를 보고 온 엄마가 이런 저런 조언들을 해주면 온전히 받아들이기보다 속으로 '지금이라도 나한테 그렇게 해주지.'란 마음이 생기는 거 보면 나도 내가 애 인지 어른인지 모르겠다. 거기다 다 자라서도 이런 것들이 조금씩 먼지처럼 쌓이다보니 가끔은 마음 한 켠이 삐그덕 소리를 낸다.
잘 하지는 않지만 가아끔 남의 집 딸이 뭐 해줬다는 소리를 들으면 이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남들은 조부모 손벌려 아이 키우는 통에 허리가 아프다, 생활이 없다 난리인데 그런 적 없는 것만 해도 다행 아닌가요- 싶은 염치 없는 뻔뻔함도 괜히 올라온다. 욕 먹을 소리인 것도 알고(그래서 입 밖에는 당연히 안 낸다) 조부모가 육아 노동력을 제공해야 한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다들 그러고 싶으면서도 어쩔 수 없는 환경이니 그리하는 거고 다행히 그러지 않아도 되는 환경임에 매우 감사하며 살고 있다. 그럼에도 살다보면 한 두 번 손을 내밀어야 할 때 흔쾌히 해주지 않았던 게 조금 서운하긴 하더라.
물론 매주 일요일 몇 시간씩 아이를 보러 와주기는 했다. 충분히 감사한 일이고 그러니 이렇게 말하면 내가 나쁜 년인 것도 맞다. 그래서 이게 묘한 건데 손을 얹어줄 수는 있지만 맡아서 봐줄 수는 없다-는 느낌을 알려나. "영화 한 편 보게 애 한 번만 봐줄 수 있어?" 하면 "어디 부모가 애를 두고 나가."라는 식이라고 해야하나. 부탁하면 들어주긴 하겠지만 마음을 편치 않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고 할까.
문득
"내가 엄마한테 칭찬받은 적이 언제지?"
이 질문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원래 칭찬이 박한 집이었고 나는 그걸 당연히 여기고 살았다. 원래 그런 줄 알아서 딱히 불만스럽지도 않다. 그러니까 생각해보면 엄마의 이런 태도는 그냥 성향인 것이다. 환갑이 넘은 엄마의 성향이 바뀔리도 없고 나의 남은 인생에 엄마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기는 글렀단 소리다. 늘 이러한 대화 속에 살았으나 어릴 땐 달리 선택의 권한이 없기에 내 마음을 들여다 볼 기회가 적었지만 내가 머리가 굵어지고 가정 환경이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조금씩 내 마음 안에 불편함이 싹텄다 보는 것이 맞다. (참고로 내 남편은 나와 전혀 다른 가정환경에서 자랐으며 칭찬을 받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라 상당한 마찰이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건 나의 관점이라서 엄마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할 거다. 서운한 것도, 속상한 것도 많겠지. 원래 사람은 각자의 입장에서만 이야기를 하는 법이니까.
그러면서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지?"
이렇게 다 자라서 엄마가 된 다음에도 엄마의 말에 흔들리는데 아이에게 부모란 어떤 존재일까. 물론 부모는 어디까지나 자식이 독립할 수 있게 기틀을 잡아주는 존재이지 아이의 인생을 책임지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그래서 그걸 어떻게 해야 하는 지는 매우 의문. 당장 애 울음 하나도 못 달래면서 도대체 육아란 무엇인가, 내가 한 사람의 인생의 토대를 다져줄 자질이 있는 인간이 아닌데 우짤꼬 싶은 마음이 새록새록 든다.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잘 해보려고 노력은 할 텐데 노력말고 잘 해야 되는데 내 인생도 잘 살고 있는지 의문인 엄마라 미안해..로 빠지는 의식의 흐름.
엄마와 나의 관계는 (아마도)이런 형태로 흘러갈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가끔 나는 불편함을 가질 것이고 엄마 또한 내가 탐탁치는 않을 것이다. 이제와서 엄마한테 내 감정을 설명할 필요도 없고 가족 상담을 받으러 갈 것도 아니고 그냥 이렇게 적당히 서로의 이야기를 묻고 흘러가겠지. 바라는 것은 이 상태로만 쭉 흘러갔으면 하는 것. 부모자식 간에도 각자의 삶이 있는데 타인 간에 이 정도면 그래도 제법 괜찮은 거 아닌가 싶은 정신승리.
그래서 오늘의 결론은
엄마한테 전화를 해야할 것도 같은데 지난 주에 만났으니 안 해도 될 것 같다는 마음이 스멀스멀.
사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