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과 할머니
그 날의 햇볕이 유독 강렬해서였을까. 할머니는 좀처럼 웃지 않았다. 뭐, 웃을 일이 워낙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이고, 우리 예쁜 똥강아지들’ 이라며 손주들을 맞이한 지 어언 3주째, 자식은 손주들을 찾으러 오지 않았다. 다만 드문드문 전화로만 안부를 묻고 있었다.
그녀는 손자들이 서로 엉겨 붙어 싸우거나 재잘거리는 소리에 지친 지 오래였다. 손자 두 명이 동시에 수두에 걸렸던 지난주는 더더욱 괴로웠다. 아이들이 가렵다며 밤새 투덜거리는 통에 멀리 읍내 약국에서 약을 사오기까지 했다.
이 세상엔 단번에 낫는 병도, 약도 없는 거였다. 세상을 얼추 살아온 할머니는 고통이 이어지는 시간들이 예견돼 더 괴로웠던 것이다. 아무쪼록 아이들이 얼추 커서 손이 덜 갈 줄 알았는데, 여간 손이 많이 가는 것이 아니었다.
지하수로 틈틈이 몸을 적시며 열기를 식히는 한 여름의 한 낮이었다. 당시 할머니 집에는 제대로 된 가전이 하나 없었다. 에어컨은 말할 것도 없었다. 아이들이 드문드문 햇빛으로 얼룩진 대나무 자리에 누워 구름 모양을 좇고 있을 때였다.
“깻잎 따러 가자”
할머니는 서둘러 우리를 일으켜 세웠다. 동생과 나는 슬리퍼를 질질 끌며 억지로 뒤를 좇았다.
커다란 선캡 아래로 드문드문 보이는 그녀의 입술은 엎어져 있는 사발 모양마냥 축 늘어져 있었다. 졸졸 따라간 곳은 처음 가보는 밭이었다. 온통 깻잎 투성이 밭에서 우리는 할머니와 멀찍이 떨어져 쭈그려 앉았다.
“대는 건드리지 말고 순한 잎만 골라서 따라”
“네들은 끝에서부터 와. 다른 거는 건들지 말어”
할머니는 간단하게 업무 지시를 내렸고, 그 이후로는 줄곧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깻잎을 땄다. 포대 자루는 금세 모양을 잡으며 일어섰고, 우리는 할머니 몰래 손가락으로 깻잎에 구멍을 내어 가면을 만들며 놀았다.
평소였다면 할머니는 먹는 걸로 장난치는 우리에게 파리채를 들었을 것이다. 경험해 본 사람은 알고 있겠다. 파리채의 손잡이는 유독 단단하고 탄력이 있어, 살을 휘감으며 문양을 남기는 아주 독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 날은 매우 더웠으므로 할머니는 혼낼 기력조차 없어 보였다.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 마냥 허겁지겁 깻잎 따는 것에만 열중하는 할머니가 의아하게 느껴졌었다.
그 날 할머니가 허겁지겁 깻잎을 땄던 건, 아마 인심 좋은 이웃이 베푼 식량을 받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녀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중이었다. 할머니의 집에는 이따금 누군가가 도시락을 들고 왔고, 덧붙여 간단한 안부를 묻고 갔다.
안부의 겉모습은 다정했지만 퍽이나 어색해서 할머니는 도시락을 받을 때마다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하지만 도시락이 오는 날이면 우리는 내심 반가웠던 것 같다. 도시락 안에는 할머니가 전혀 해 줄 수 없는 반찬들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맛살, 분홍 소시지, 탕수육 같은 것들이…
지금 생각해보니 할머니는 기초생활수급자였기에 몇몇 단체의 지원을 받았던 것 같다. 시골의 독거노인을 찾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았다. 시골 교회 목사님, 이장님, 면사무소 직원, 자원봉사단체 직원 등….
이 와중에 할머니의 다섯 번째 아들인 나의 아버지에겐 부양 능력은커녕 육아까지 버거웠던 것일까. 그는 여름 방학 때마다 우리 남매를 노모에게 보냈다.
구름이 물러간 하늘 아래에서 동생과 나는 깻잎을 따기 시작했다. 까슬까슬하면서도 부드러운 솜털이 난 깻잎들을… 눈으로, 손으로 찾으며 땄다. 손톱 밑이 진한 초록색으로 물들다 못해 아예 새까맣게 변했다. 깻잎이 꺾이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나는 상상했다. 깻잎이 꺾일 때마다… 뾰족한 굽을 바닥에 튕겨가며 춤을 추는 한 여자를, 환호하는 사람들을, 머리 위로 쏟아지는 조명들을.
동생은 상상했다. 깻잎이 꺾일 때마다… 아빠와 엄마의 손을 잡고 걷는 자신의 경쾌한 발걸음을, 솜사탕을 먹고 회전목마를 타는 자신의 웃는 모습을.
우리는 상상으로 여름 방학의 하루하루를 채워 나갔다. 아이들은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심심함이 이어지는 날들은 상상으로 시간을 때우곤 했다. 물론 할머니 집에서도 일탈이 섞인 일상이 있었다. 비석이 기울어진 무덤에서 미끄럼틀을 타거나, 나무를 타기 위해 다리가 까지도록 매달려보거나, 동네 조부모 댁에 놀러온 도시 아이들과 돈사에 새끼 돼지를 구경하기도 했다. 그러다 심심해지는 시간이 오면 여러 상상으로 현실을 덮곤 했다.
하지만 우리의 상상이란 게 누군가에겐 매우 소박하고 일상적인 것이었다. 예를 들자면 아버지·어머니와 한 집에서 사는 것, 밖에 나가 고기를 구워 먹는 것, 놀이공원이나 바닷가에 놀러가는 것 등. 그저 다 같이 있는 것, 마주보는 것, 사소한 것들에 깔깔거리는 것들을 꿈꿨지만, 그 상상은 평생도록 이뤄지지 않았다.
어쩌면 할머니는 부모의 부재가 잦은 우리가 엇나갈까봐, 두려웠던 걸까. 혹은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 자체가 속이 쓰라렸던 것일까. 그녀는 방긋 웃다가도 예측할 수 없는 어느 순간에 버럭 화를 내곤 했다. 그녀는 우리를 자주 혼냈고 자주 때렸다. 하지만 밥은 언제나 정성껏 차려 주셨다.
할머니가 차린 밥상의 터줏대감은 단연 깻잎이었다. 깻잎 반찬이 늘 놓여 있었다. 그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반찬은 된장 양념에 찐 깻잎과 들기름에 볶은 깻순이었다. 할머니는 된장에 잔 멸치와 들기름을 섞은 후, 솥 아래에 대파를 길게 깐 다음, 양념을 바른 깻잎을 차곡차곡 얹었다. 약한 불에 찌어 내면 뻣뻣한 깻잎의 숨이 죽고, 된장과 깻잎 향이 어우러져 풍겼다.
깻잎을 씻고 양념을 바르는 건, 무료해서 미칠 지경인 우리의 몫이었다. 처음엔 성가시니까 주방에 무조건 들어오지 말라 하시더니, 하릴없이 늘어져 있는 우리가 도저히 안 되겠던 모양이었다보다. 수돗가에서 깻잎을 씻으라 하셨고, 감히 깻잎 양념을 만질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하셨다.
간장이든, 된장이든 양념에 푹 담긴 깻잎을 하나하나 떼먹는 것은 조리된 김을 짚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집중력이 요구되는 일이었다.
두 번째로 할머니는 들기름과 들깨가루를 듬뿍 넣어 덜 익힌 듯 푸릇하게 깻순을 볶아 내기도 했다. 깻순을 볶는 날엔 주방 밖까지 들기름 냄새가 풍겨 식욕이 한껏 올랐다.
어렸을 적 할머니 요리는 그다지 맛있지는 않았다. 연세가 드실수록 잔반을 몽땅 넣고 끓이는 일이 많아졌고, 나중엔 잔반들이 어우러지지 못한 채, 기이한 맛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할머니의 음식 중 기억에 꼽히는 음식은 각종 나물이었다. 기력이 있으실 때에 여러 양념으로 버무렸던, 향이 나는 나물들이 내 입맛엔 맛있게 느껴졌었다. 번외로 내가 가장 좋아했던 할머니의 반찬은 깻잎 외에 고춧잎나물, 씀바귀 무침이었다.
세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 옛 생각이 나 나물을 사볼까 하다가도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지천에 널린 게 나물이었는데, 데치면 한 줌도 안 되는 풀때기가 4천원씩이라니…’ 라며 내려놓곤 하는 것이다.
가끔 허겁지겁 깻잎을 따던 할머니의 굽은 뒷모습이 생각난다. 이유를 알 수는 없으나,
마치 벌을 받듯이 손자들을 꾸역꾸역 섬겼을 할머니의 여름이…
논과 밭일을 끝내고 모두가 쉴 때쯤 남의 밭으로 총총 걸어가 깻잎을 따오던 할머니의 자존심이 생각나 안쓰러워진다.
그럼에도 시간은 흐르고, 아이들은 어떻게든 애쓰며 자라고, 그 때의 나물은 아주 맛있고 향긋하게 추억된다. 하지만 할머니에게 깻잎은 지긋지긋한 생존의 향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