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 속 조기 냄새
내 오랜 기억에 의하면 할머니는 한 때 서울 영등포 쪽에서 분식집을 운영하셨다. 여름과 겨울, 인생의 업보를 맞이하는 마음으로 손주를 돌보던 그녀에게도 찬란한 시절이 있었다. 그녀는 음식점 사장님이었던 것이다.
당시 분식집 끝에는 작은 쪽방이 있었는데, 나는 그 곳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티비를 보며 밥을 먹었었다. 그 방에 아버지, 어머니, 동생은 없었다. 기억 속에 그 방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나 그렇게 세 명 뿐이었다.
할머니는 종종 조기를 구워주셨다. 할머니가 굽는 조기는 늘 잘았고 살이 많지 않았다.
“큰 조귀는 비리기만 하고 맛이 안 나”
잘은 조기는 두 어른의 취향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할머니는 언제나 먹잘 것 없는 잘은 조기만을 구웠기 때문이다. 나중에 커서 알게 되었지만 세상에는 정말 맛있는 생선이 많았다. 어린 시절 조기구이에 단련된 입은 어른이 된 이후 사시미, 물회, 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조리된 생선을 즐길 줄 알게 되었다.
할머니는 기름을 적게 둘러 조기를 구웠다. 얕게 깔린 기름 위에 올린 조기는 타닥타닥 소리와 함께 고소한 탄내를 풍겼다. 생선 껍질은 갈색 빛을 띠며 바삭한 데 모양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단순해 보이는 작업으로 탄생한 구이가 실은 할머니의 노련한 손맛으로 완성되는 것이었다.
마흔이 된 지금, 나는 할머니처럼 ‘원형이 보존된 조기 구이’를 만들지 못한다. 혹시 찐다면 모를까…. 여전히 내겐 어려운 일이다.
한껏 들떠 상 위에 숟가락을 놓고, 할머니가 자리에 앉기만을 기다렸다. 할머니는 조기에 붙은 살이란 살은 모조리 내게 주고, 당신은 뼈를 씹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조기 눈알을 파(?) 드셨다. 그 모습이 몹시 생경하고 징그럽게 느껴져서 밥을 먹을 때마다 질문을 던지곤 했다.
“할머니 조기 눈 맛있어?”
“응, 나는 조귀 중에서 이거시 제일 맛나”
할머니 말을 곧잘 믿고 생선뼈를 씹었던 날이었을까. 어느 날은 조기를 먹다가 가시가 목에 걸렸다. 할머니는 흰 밥을 입 안에 가득 넣어 넘겨보라 했다. 할아버지는 밥상 위에 미리 깎아놓은 복숭아를 씹어서 넘겨보라 했다.
당황한 두 어른이 허둥지둥 하던 그 날이 오랫동안 기억났다. 마치 사진 한 장처럼 머릿속에 진열되어 그 날의 기억을 종종 꺼내보곤 한다. 등을 수차례 토닥이던 할머니를… 은색 스테인레스 컵에 물을 따라주던 할아버지의 손을….
그들은 퍽이나 당황했겠지만 나는 그들이 쏟아 붓는 걱정 어린 눈빛들에 기분이 좋아졌던 것 같다. 주름진 손이 새우처럼 굽은 어린 여자 아이의 등을 쓰다듬을 때, 차분하게 솟아나는 열기에 마음까지 따스워졌던 것 같다.
어른이 되어 생각해보니 쪽방에서의 조기 사건은 애착을 느꼈던 몇 안 되는 순간이라 강렬하게 기억되는 것 같다. 미취학 아동이었을 어느 어린 시절에 나는 어른이 주는 칭찬과 연민이 고팠을 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조기의 눈을 먹는 것으로 나의 정서적 고픔을 대신 채워주고 싶어 했던 것일까. 장사하랴, 빙판에 넘어진 나이 든 남편 돌보랴, 손주 돌보랴… 그녀의 일상은 유독 알차서 터질 듯 했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어떤 존재였을까. 나에겐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다.
한편, 쪽방 옆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짐을 넣어 둔 작은 방이 있었다. 그 곳이 나의 임시 거처였다. 거의 직각으로 세워진 사다리를 타고 그 방에 들어가 잠을 청하곤 했다. 천장이 낮고 어두운 그 방에서 도대체 어떻게 지냈던 것일까.
난 분명 어릴 때부터 겁이 많아 한참 동안 그네를 서서 타지 못했고, 철봉에도 거꾸로 매달려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직각 사다리가 딸린 방에선 어떻게 지냈던 것일까… 지금도 의아하다. 아버지의 여동생인 막내 고모도 가끔 그 천장 낮은 방에서 머물곤 했다. 고모는 자신이 들고 있는 양산으로 내 머리를 콕 쥐어박곤 했다.
“으휴, 불쌍한 것”
말은 분명 동정인데, 행동은 구박이었다. 막내 고모의 속내는 뭐였을까. 아마도 다 늙어서 손주를 떠맡은 자신의 어머니, 아버지를 생각하니 울화가 치밀었던 것일까. 불쌍하지만 성가셨기에 가끔은 함부로 대해도 될법한 존재라고 인식했던 것일까. 나는 한동안 고모의 손가락 마디 뼈도 아닌 양산의 쇠 부분에 맞곤 했다.
어쩌면 고모는 나를 통해 오빠를 보고, 오빠를 향해 켜켜이 쌓아온 적대감을 나에게 대신 푸는 듯 해 보였다. 오빠가 어른 노릇을 해보기도 전에 낳아버린 아이, 그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어여쁘게 여기기에는 고모는 아직 젊었다.
마음속에 억울함이 스멀스멀 올라올 무렵, 아버지가 날 찾으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