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프라이는 싫고 말이는 좋았지.

아버지의 계란말이

by Dal Kim


“어떡해요. 저 두 줄이에요”

“내가 책임질게. 우리 잘 키워보자”


여기 20대 초반의 젊은 남녀에게 생명의 축복이 찾아왔다.

둘은 짧은 시간 만났지만 서로에게 푹 빠졌다. 남자의 책임감 넘치는 고백에 여자의 눈엔 눈물이 고였다.

둘은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 잠시 서로의 두 눈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그 때 배가 불러온 한 여자가 나타나 그들을 향해 괴성을 쏘아 부쳤다.


“니네들, 다 간통죄로 처 넣어 버릴거야”

얼굴이 붉어진 채 소리를 지르는 여자의 배는 동글게 튀어나와 있었다.

그 옆에는 나이든 여자가 서 있다.


“애미야, 참아라! 한번만 참아줘라. 애기 애비잖니. 전과자 만들어서 서로 좋을 게 없어”


“어머니, 저 못 참습니다. 이 아기 젖 뗄 때까지만 키우고 떠날 테니까 그렇게 아세요.”


이것은 나의 탄생 비화다. 큰 따옴표 속 말은 비화의 이해를 돕기 위한 소금과 후추 정도가 되겠다.

탄생의 비화는 사춘기의 방황에 불을 지피는 최적의 땔감이 되었다.

방황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나는 더 깊은 우울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애썼다.

슬픈 음악을 귀에 꽂았고, 등을 더욱 둥글게 말고서 지킬 것 하나 없는 주머니에 주먹 쥔 손을 우겨 넣었다.

가끔은 탄생 비화가 훈장처럼 느껴졌다. 말간 얼굴에 부내가 나는 옷차림의 친구들을 보면 속으로 비꼬곤 했다. ‘부모 잘 만나서 편안하게 사는 네가 고통을 알아?’ 식으로….

‘어린 나이에 극한의 슬픔을 마주한 나는 너보다 훨씬 더 어른스러워’ 라며 상대를 깔보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탄생 비화를 두고 어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가에 대해 꽤 오랫동안 끙끙댔다.

뱃속의 나를 두고 다른 여자에게 돌아선 희대의 사랑꾼 아버지에게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까.

나를 거둬준 조부모와 아버지에게 무한한 감사와 존경을 보내야 하는 것일까.


탄생 비화를 처음 접한 날은 마치 내가 배우가 된 것 마냥 드라마틱했다.

그날은 어머니가 집을 나간 다음 날이었다. 할머니가 아버지로부터 소식을 들었는지 한약방 가방에 온갖 반찬을 싸오셨다. 냉장고에 김치와 멸치 등 여러 반찬들을 차곡차곡 쌓고 난 이후 할머니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네 엄마는 원래 엄마가 아니여”


할머니의 선포에 나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손주의 충격을 기대했을 할머니는 약간 김이 샜을 것이다. 왜냐하면 난 어느 순간부터 친모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남매를 두고 은연중에 드러내던 차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랬다. 외삼촌댁에 가면 나는 섞이지 못했다. ‘너는 왜 왔니’ 라는 표정의 삼촌과 불쌍하다는 듯 바라보던 숙모의 시선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할머니의 말을 듣고서야 내가 왜 환영받지 못했는지에 대한 실마리가 풀렸다. 정답을 알아서 오히려 개운한 기분이 들었었다.


막 십대가 되면서 나는 자연스레 눈치와 생존 감각을 기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왜 자꾸 곁눈질을 하냐며 핀잔을 주었다. 무쌍에 까무잡잡한 얼굴을 한 여자아이는 밥상 앞에서 유독 눈을 좌로 굴렸다가 우로 굴렸다. 그것은 온전한 내편이 없음을 직감한 데서 나오는 반응이었을까.


할머니는 아버지와 두 여자의 풀 스토리를 들려주었다. 화자의 태도는 매우 편향적이어서 자신의 주인공에게 적대적인 인물은 마구잡이로 비난했다. 나는 아무 말을 못했다. 할머니는 이제야 속이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대서사를 마무리했다. 10살의 아이는 이해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할머니는 왜 일생일대의 실수를 저지른 아버지를 감싸는 것인가.’

‘할머니는 왜 나의 어머니를 비난하는 것인가.’

‘그나저나 할머니는 왜 이렇게 신나있는 것인가.’


사랑을 찾아 헤매는 한 마리의 표범 같은 나의 아버지는 손재주가 뛰어났다. 하지만 근성을 녹여내지 못한 재주는 겉멋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어서,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데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근성 있게 하는 것은 은근 많았다. 매일 팔굽혀펴기를 했고, 칫솔을 혀뿌리까지 넣어 구역질을 했고, 발등과 발바닥의 경계를 뽀도독 소리가 나도록 닦았다.


아버지에게 주어진 재주 중 가족을 부양할 재주는 요리였다. 근성은 사랑뿐만 아니라 일자리에서도 발휘하지 못했다. 그는 이 식당, 저 식당을 옮겨가며 요리를 했다. 아버지는 집 안에서도 요리를 자처했다. 대체로 1.5L 소주와 잘 어울릴만한 단일 메뉴를 만드는 데에 집중했다. 아버지가 반죽한 칼국수 면은 쫄깃했고, 아버지가 굽는 삼겹살은 노릇노릇했다. 그 중 내가 가장 즐겨먹던 음식은 계란말이였다.


나는 요상하게 어렸을 때부터 비위가 약했다. 계란 프라이의 식용유 냄새만 맡으면 헛구역질을 했다. 국의 국물은 죄다 마시지 못했고, 건더기만 깨작대며 먹었다. 닭고기는 가슴살만 먹었고, 삼겹살 역시 단단한 살코기만 뜯어 먹었다.


내가 유일하게 부담 없이 먹는 음식은 김치와 나물이었던 것 같다. 기름이 발라진 음식 중엔 아버지의 계란말이를 즐겨 먹었다.


아버지의 계란말이에는 파가 잔뜩 들어있었다. 뒤돌아보건대 아버지는 소금과 후추, 미원을 잔뜩 넣었던 것 같다. 먹고 나면 입이 텁텁했던 것이다. 계란은 가난한 우리가 마음껏 누리는 사치품이었다. 아버지는 계란을 마음껏 깨뜨려 부드럽게 풀어내고 파와 양념을 섞었다. 그리고 넉넉한 기름에 두툼하게 말면 끝이었다.


파말이인지, 계란말이인지 분간이 안가는 음식이었다. 시퍼랬지만 덜 느끼했고, 적당히 짭잘한 맛은 흰 밥과 잘 어울렸다. 아버지는 계란을 단정하고 단단하게 말았을지언정, 정작 자신의 인생은 파도에 살점이 뜯기며, 죽어가는 물고기 같았다.


어린 시절 나는 아버지의 뒷모습에 묘한 안정감을 느꼈다. 술에 취하지 않은 채, 음식에만 몰두하는 그가 듬직해보였고, 선해보였고, 비로소 아버지 같아 보였다. 사실 안정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의 밥그릇 옆에는 언제나 작은 소주잔이 있었는데, 수차례 비움과 채움을 반복하다보면 안정감은 작은 파편이 돼 부서졌다. 술에 취한 아버지는 마지막 의식처럼 접시나 컵들을 던졌고, 그로 인해 생기는 파편들을 나는 오랜 세월 주워왔다.


그래서일까. 나는 아버지의 음식이 주는 온기에 희망을 걸다가도, 다시 마음을 문을 닫게 됐다. 열고 닫는 시간들이 숱하게 이어졌다. 나는 여전히 어렵다. 그가 준 온기를 그리워해도 되는 것일까.


슬픔을 과식하던 아이는 어느새 어른이 되었다. 어깨 너머로 배운 계란말이를 배워 온 나는 파 대신 깻잎과 참나물을 잘게 다져 넣는다. 당근이나 양파를 넣어봤지만 어째 계란말이가 푸석해지는 느낌이다. 아이들은 엄마의 계란말이가 정말 맛있다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엄마가 해 주는 계란말이가 제일 맛있어”


그럼 잠시나마 아버지의 온전했던 뒷모습을 떠올리고 마음이 아릿해진다. 미움은 익었고 용서는 설익은 상태다. 용서는 아직 나에게 허황된 꿈같은 것일까. 그저 작은 술잔 없이 아버지와 식사를 할 수 있다면… 그 한 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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