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동안 나는 커피 제조를 수련했지.
집 나간 엄마는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인가 아빠까지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동생과 나의 위태로운 방학 생활이 시작됐다. 우리는 텔레비전과 라면으로 긴 방학을 버텼다.
배고플 때 주로 먹는 것은 라면이었다. 내가 만든 라면은 소위 말하는 한강 라면이었다.
물을 잔뜩 넣으면 덜 맵고 밥을 많이 말 수 있어서 훨씬 배불렀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물 양을 못 맞춘다.
김치는 덜지 않고 먹었던 터라 아밀라아제에 뒤범벅돼 낯선 단맛이 느껴졌다.
할머니는 잊지 않고 우릴 찾아주었는데 얼굴은 보지 않은 채 반찬만 놓고 가는 날도 있었다.
겨울이면 차가운 장판 한 켠에 놓여있던 귤을 산처럼 쌓아놓고 까먹었다.
이불을 덮은 채 텔레비전을 보며 귤을 까먹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낙이었다.
어렸을 적, 텔레비전 채널은 적었지만 내용은 다양해서 채널 돌리는 맛이 있었다. 우린 닥치는 대로 텔레비전을 보았다. 텔레비전에 몰두하면 슬퍼하거나 무서워할 겨를이 없었다.
부모가 없는 방학엔 잊지 못할 위기 상황도 있었다.
어느 날은 천장에 날파리들이 벽지 문양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동생과 나는 비닐과 모자를 얼굴에 뒤집어 쓴 채 모기약을 사정 없이 뿌렸다.
우두두두 벌레들이 떨어졌다.
우리가 해냈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매일같이 서로를 때리던 남매는 겨울을 보내며 친해졌다.
겨울방학의 어느 날 한낮에… 아빠가 나타났다. 무언가에 쫓기듯 다급하게 서랍을 열더니, 포장이 뜯기지 않은 다이어리를 품에 챙겼다. 집 나간 엄마가 보험회사에서 받은 판촉물이었다.
“내일 여행을 갈 테니 깨끗하게 씻어라”
아빠는 그 말만 남기고 다시 나가버렸다.
다음 날 우리는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아빠 차에 타고 있었다.
아빠는 어느 컨테이너 앞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컨테이너 안에서 한 여자가 걸어 나왔다.
머리는 빨갛고, 눈은 까맣고, 치마는 짧은… 요상한 모습의 여자였다.
처음 본 여자와 우리는 눈이 쌓인 한 리조트로 향했다. 동생과 나는 태어나서 리조트엔 처음 가보았다.
말끔한 숙소 지하에는 당구장, 탁구장, 노래방, 게임장이 있었다. 동생과 나는 신나게 돌아다녔다.
하지만 탁구공은 두 번 이상 왕래하지 못했고, 당구대는 너무 길었다. 금세 지루해진 우리는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아빠와 여자는 괴성을 지르며 레슬링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들어오는 소리도 못 들었는지 그들의 레슬링은 계속되었다. 우리는 애써 그들을 피했다.
그리고 그 여자는 우리의 새로운 엄마가 되었다.
우리는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했다. 산과 논과 밭으로 둘러싸인 시골 동네였다.
논이 중심이고 논 옆에 집이 다닥다닥 놓여 있는 처음 보는 구조의 마을이었다.
“앞으로 너는 나를 엄마라고 부르면 돼. 그리고 매일 아침마다 커피를 타야 해."
"잘 봐봐. 물을 끓이고, 이 스푼으로 커피를 세 스푼 넣은 다음 팔팔 끓인 물을 넣으면 돼.
이 정도…”
이사 후 나는 엄마와 처음으로 둘이 마주 앉았다. 엄마는 내게 고칠 점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너는 훈련이 필요하다며, 커피를 타라고 했다.
나는 그 날부터 엄마의 커피를 타기 시작했다.
‘인스턴트 커피 3스푼, 2/3분량의 뜨거운 물을 타면 끝’
커피를 타는 시간이 되면 나는 괜히 긴장이 되었다. 누군가를 위해 집중해서 커피를 타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누가 11살 아이에게 매일 커피를 타라고 하겠는가.
하지만 나는 엄마의 칭찬에 묘하게 길들여져 가고 있었다. ‘맛있다, 잘 탔다’ 말을 들으면 어깨가 으쓱해지는 기분이었다. 하루의 시작에 반드시 커피를 잘 탔다는 칭찬이 있어야 했다.
나는 오랜 시간 커피를 탔다.
엄마는 커피 제조 외에도 내게 잡다한 재주들을 익히게끔 유도했다. 트로트, 요가, 매일 아침 6시 한자 암기까지… 그 중 가장 기이한 훈련은 다리 세우고 자기였다.
나는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 신경써주는 건 처음이었다.
엄마는 내가 알던 어른과는 달랐다. 그녀는 다이어리에 한글과 일본어로 일기를 썼고, 아침마당에 나오는 목사님과 스님의 강연을 메모했다. 세로로 써져 있는 오랜 고전을 읽었다. 내게는 앙드레 지드와 헤르만 헤세의 책을 주었다. 매우 두껍고 누렇게 변색된 소위 벽돌책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어느 부모가 11살 아이에게 헤르만 헤세와 앙드레 지드 책을 주겠는가.
엄마의 커피가 늘 보람을 안겨주었던 것은 아니다.
사춘기에 도래하면서 그녀의 훈련이 부당하고 무의미하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순종하기 위해 애썼다. 엄마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아아아악”
그 날도 엄마는 통화를 하며 블랙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러다 커피를 우웩하고 뱉어버렸다.
수화기를 차마 내려놓기도 전이었다.
“너 이거 일부러 넣었지? 어??”
엄마는 매섭게 나를 노려보며 몰아 부쳤다. 커피 잔 속을 들여다보니 여치인지 메뚜기인지 모를 꽤나 큰 벌레가 커피 잔 안에 들어가 있었다.
신이 내게 선 넘은 장난을 친 것 같았다.
나는 절대 아니다! 온 힘을 다해 결백을 호소했지만 엄마는 나를 믿어주지 않았다.
잔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채 손이 이끄는 대로 커피를 타다 생긴 일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커피 잔에 왜 벌레가 들어있는 지 알 수가 없다.
훗날 나는 방송작가가 되었다. 막내작가의 주된 업무 중 하나는 출연자들에게 줄 믹스커피를 타는 것이었다.
한 동료는 왜 대학까지 나와서 아저씨들에게 커피를 타줘야 하냐며 억울해했다. 나는 오히려 그 시간을 즐겼던 것 같다. 커피를 타는 건 자신 있었다.
가끔 블랙커피를 타게 했던 엄마를 떠올릴 때면, 고마움과 허탈함이 동시에 밀려든다. 고작 11살 아이에게 커피를 매일 타라 했던 엄마는, 나를 정말 딸로 생각했을까. 그건 사랑이었을까. 엄마만의 사랑이었겠지?
지금도 뜨겁게 끓인 인스턴트 블랙커피 향이 퍼지면 나는 다시 그 주방에 서 있는 것 같다.
그 곳에서 새롭게 발견한 나의 쓸모에 자신감을 얻었다면, 엄마의 목표는 성취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