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등나무 정자, 비빔국수, 다방 아가씨

국수 먹고 바람 현장 잡으러 가자!

by Dal Kim

새로운 동네에서 우리는 차츰 적응해 갔다. 엄마는 뒷집 아줌마와 금세 친해졌다.

뒷집으로 가려면, 주차장 문제로 원수가 된 옆집을 지나 코너를 돌아야 했다.


뒷집 아줌마는 엄마보다 훨씬 어려 보였고,

말투는 주의 깊게 듣지 않으면 알아듣기 어려울 만큼 어눌했다.

그녀는 심각한 고도비만을 겪고 있었고, 몸무게는 백 킬로가 족히 넘어 보였다.


나는 스모선수 뺨치는 거구의 아주머니에게 호감도, 존경심도 느끼지 못했다.

착한 분인 걸 알면서도, 살이 쪘다는 이유로 살갑게 다가가지 못하는 내 모습이

죄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엄마는 달랐다. 반찬이든, 화장품 샘플이든, 나눌 것이 생기면

뚱뚱한 아줌마부터 챙겼다.

가난한 살림에도 나눌 것이 있다니, 이해가 안 됐다.

머리가 좀 커질 무렵, 나는 그 우정의 방향에 의문을 품게 됐다.

엄마는 자신보다 못난 사람을 곁에 두며 우월감을 얻는 것처럼 보였다.

선심을 베풀었지만, 그 안에는 은근한 깔봄이 섞여 있었다.


“우리는 이런 거 싫어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이런 행동 안 하지.”


엄마의 ‘우리’라는 말은 언제나 낯설었다. 엄마 옆에는 아무도 없는데, 왜 자꾸 우리라고 할까.

엄마가 나를 만나기 전, 다른 여자아이를 입양해 키웠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나는 그 ‘우리’의 정체를 어렴풋이 이해했다.

‘우리’라는 말에 내 마음 속에 피어나던 불쾌감의 원인을…


사업과 부도, 이혼과 도망.

주민등록이 말소된 끝에 만난 나와 동생, 그리고 무직 남편.


어쩌면 엄마는 우리를 인생의 마지막 속죄를 위한 소재로 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무신론자라고 자신을 소개했지만,

우리와 함께한 날이 쌓일 수록 장독대 위에는 촛불과 물그릇이 놓이기 시작했다.

손바닥을 비벼 데우며 기도하던 엄마의 입속에서는

하나님, 부처님, 알라, 천지신명… 수많은 신의 이름이 뒤섞여 흘러나왔다.


엄마가 다신론자로 변하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는 매우 무기력했고 우울해했던 것 같다.

텃밭을 돌보고, 가축에게 먹이를 주고, 세 끼 밥을 챙겨 먹는 일 외에는

일말의 의욕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계절은 부지런히 바뀌었고, 엄마가 유독 애정하던 등나무 정자에도 꽃이 피었다.

등나무에선 보라색 꽃이 주렁주렁 매달리며 피어났고 바람에 흔들거릴 때마다 향이 퍼져 나갔다.

비가 내리지 않는 날이면 엄마는 정자에서 점심이나 저녁을 먹자 했다.


꽃이 바람에 산들거리는 어느 여름날, 엄마는 점심으로 비빔국수를 끓였다.

그날도 누군가 찾아올 것 같다는 마음으로 넉넉히 끓였던 모양이다.


비빔국수 양념장 냄새에 발이라도 달린 듯, 뒷집 아주머니가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언니.”

“들어와, 국수 먹어.”


아빠는 이상하리만큼 그 아주머니와 겸상하길 꺼렸다.

결국 엄마와 나, 그리고 아주머니 셋이서 국수를 먹게 됐다.

면치기 몇 번 만에 아주머니의 그릇은 바닥을 보였고, 두어 번 리필을 한 뒤에야 식사가 끝났다.


나에게 비빔국수는 모스트 페이보릿 음식이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잔치국수보다 비빔국수를 더 좋아한다.

상추와 오이, 양파를 듬뿍 썰어 넣고 초장과 참기름을 섞어 비벼 먹는 국수를.

적당히 익은 김치를 총총 썰어 들기름에 비벼 먹는 국수를.

푹 익은 김치를 살짝 씻어 썰고, 체에 건져낸 김칫국물과 함께 비벼 먹는 국수를.

그리고 그 위에 반숙 계란 하나를 얹는다면… 그보다 완벽한 한 끼는 없었다.


그날의 비빔국수는 유난히 맵고 시원했다.

그리고… 국수를 다 먹은 아주머니는 울먹이며 말했다.


“언니, 나 좀 도와줘. 우리 남편, 다방 레지랑 놀아나는 것 같아.”

“그래, 어디야. 내가 잡으러 갈게.”


그 무렵, 거구의 아주머니는 셋째를 임신 중이었다.

불룩한 배와 부풀어 오른 가슴의 경계는 모호했다.

멀리서 다가오는 모습은 발이 보이지 않아, 마치 커다란 구가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애니메이션 <빅히어로>의 풍선 같은 캐릭터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 날 어린 나에게 다방 레지라는 말은 잊히지 않을 만큼 자극적인 단어로 남았다.

아주머니보다 세 배는 날씬한 남편이 약간은 동정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엄마와 아빠 역시 그 남자의 바람을 어쩔 수 없는 일처럼 받아들이는 듯했다.


하지만 바람의 대명사였던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내가,

누군가의 바람을 동정하다니—아이러니였다.


당시 엄마는 시내 출입이 잦았다. 맘만 먹으면 아주머니가 말한 그 다방에 금세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엄마는 정말 ‘우정의 힘’을 발휘했을까?

다방 레지와의 스캔들은 사실이었을까?

아마 그 스캔들은 백 퍼센트 진실이었을 것이다.

누군가 현장을 덮쳤다 한들, 그들의 스캔들은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그 시절, 시골 마을엔 그런 이야기가 흔했다.

누군가에겐 퉁쳐도 되는 아픔이 아니었지만…

다방은 남자들의 숨구멍이자, 여자들의 수다의 단골 주제였다.


그리고 어린 나는, 그 국수 냄새와 수런거림 속에서 어른들의 세계를 처음으로 엿보았다.


엄마가 아끼던 정자에는, 거구의 뒷집 아주머니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머물다 갔다.

어느 날은 스님 옷을 입은 아저씨가 대문을 열고 들어와 손금과 관상을 봐 주겠다고 했다.


“이혼할 팔자예요. 명도 짧네.”


아직 꽃다운 나이에 듣는 단명과 이혼 팔자는 내게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그 말은 지금도 귀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며칠 뒤, 엄마는 소의 생간을 사왔다. 그리고 그것을 내게 먹였다.


엄마는 샤머니즘에 깊이 빠져 있었고, 그날 홀연히 나타났다가 사라진 스님의 말을 진심으로 믿은 듯했다.

지금의 나라면 대장균 수를 근거로 들어 절대 먹지 않겠다고 우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엄마에게만큼은 순종적인 아이였다.


피 냄새가 코끝에 남은 채, 나는 간을 꾸역꾸역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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