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지만 자존심은 구기고 싶지 않아
점심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여자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삼삼오오 급식실로 향했다.
“오늘도 안 가?”
“응, 나 다이어트하려고”
누군가가 왜 급식실에 가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다이어트 중이라고 답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이었다.
난 친구들 사이에서 다이어트를 위해 급식을 참는 아이였다.
사실 급식비를 낼 수가 없어서 고3 시절 내내 급식을 먹지 못했다.
음, 내게 친구들이라고 해봤자 몇 명 되지 않았다. 몇 명 되지 않는 친구도 과연 친구라고 불러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었다. 여전히 친구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답하기가 어렵다.
나는 당시 교실의 과반이 넘는 아이들로부터 조용하게 따돌림을 당하는 중이었다. 은따는 생각보다 편했다. 수업 시간, 쉬는 시간 따지지 않고 수능 기출문제를 풀었고 우선순위영단어를 외웠다.
놀 친구가 없는 아이라는 걸 굳이 티내고 싶지 않아서 책 속에 더욱 빠져들었던 것이다. 또한 졸업 이후에도 나를 싫어했던 친구들을 마주칠까봐 더 멀리 떠나기 위해, 공부에 매달렸다.
멀리 떠나고 싶었다.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아이들이 모두 급식실로 떠났을 무렵, 삼선슬리퍼를 그대로 신은 채 학교 정문으로 터벅터벅 걸었다. 교무실에선 아마도 내가 보였겠지만, 왜 점심시간마다 나가는 것이냐고 붙잡는 이는 없었다. 우선 관심을 받을 만한 성적과 외모를 가지지 못했다. 반대로 심한 말썽을 일으키지도 않아서… 굳이 거들떠 볼 필요가 없는 아이였다.
정문 건너편 골목으로 두 블록 정도 걷다 보면 고깃집이 나왔다.
부모님, 아니 엄마가 야심차게 시작한 고깃집.
식당 컵에는 엄마가 쓴 시가 적혀있었다. 엄마는 카운터만을 지키지 않았고 손님들에게 맛의 여부와 안부를 물었다. 하지만 맛의 문제였을까. 서비스와 마케팅 문제였을까. 고깃집은 그닥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나는 고깃집에 딸린 쪽방에서 수험생 시절을 보냈다.
고깃집 옆 쪽문으로 들어가면 김이 오르는 주방이 나왔다. 주방을 벗어나 복도 옆 미닫이문을 열면 작은 야외정원이 나왔다. 그 곳에서 나는 엄마가 끓여주는 평양냉면을 먹었다.
가끔은 손님이 먹다 남은 냉면을 먹기도 했다. 아마 입맛에 도저히 맞지 않아 남겼을 냉면이었다. 난 손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당시 내 최고의 반찬은 허기였으므로 곧잘 아무거나 잘 먹었다. 하지만 맛을 따지는 사람에겐 엄마의 평양냉면은 이해할 수 없는 맛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조용히 냉면을 건네주고 마주 앉아 블랙커피를 마셨다. 오늘 오전 학교는 어땠냐고 묻지 않았다. 안부를 도저히 물을 수 없을 정도로 내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귀에는 늘 이어폰이 꽂혀 있었고, 웃는 날이 거의 없었다.
간단하게 허기를 채우고 믹스커피를 한잔 마시고 나면 얼추 시간이 맞았다. 학교로 천천히 걷다 보면 수업이 시작할 무렵이 되었다. 수다나 산책을 함께 할 친구가 없었기에 언제나 수업 시간이 다 되어서야 교실로 들어갔다.
대학 입학을 위해 서울로 올라온 촌뜨기는 여름마다 평양냉면 맛집을 찾아다니는 도시 여자가 되었다. 한 여름엔 오후 3시여도 긴 줄을 자랑하는 허름한 냉면집은 어느 새 건물을 확장했다. 값은 만이천원을 돌파했다.
돈이 아깝단 아쉬움에 빠지지 않기 위해, 나는 여름마다 자칭 냉면 평론가로 분해 국물 한 방울 한 방울 음미를 해 본다.
늘 허기지고 가난했던 19살 나의 점심을 책임졌던 평양냉면이 생각난다. 엄마는 직접 육수를 우려냈고 면을 직접 뽑았다. 하지만 여사장의 정성을 알아주던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엄마가 여전히 살아 있어서 다시 냉면을 판다면 우리의 가세는 덜 기울어졌을까.
엄마의 냉면보다 더 슴슴하고 양이 적고 훨씬 비싼, 이 냉면은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