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 나는 상처를 보고 누군가가 운다 해도 내 손톱 밑의 가시가 더 아픈 법이다. 인간이기에 그렇다. 남들이 보기에 별거 아닐 것 같지만 그 가시가 목숨을 앗아갈 만큼 치명적일 수도 있다.
나는 손톱의 가시가 너무 아파서 버둥거리고 있을 때, 나에게 다가와 위로가 되어준 이들이 참 많다. 친구는 나의 얘기를 들어주었고, 어떤 날은 망고를 한 박스 사 와서는 오다가 주었다며 건네 주기도 하고, 퇴근길에 이웃 언니는 반찬을 너무 많이 해서 먹을 사람이 없다며, 가져가라고 문자가 오기도 한다. 아무런 말없이 건네며 보낸 눈빛 하나에 모든 것이 담겨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것들은 또 있다. 블로그에 쓰인 글들에 덧글에서도 위로를 받는 것을 보면, 인간은 작은 것에 울기도 하지만, 작은 것에 위로받고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한다.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 『대성당』에 나오는 단편 중에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내용이 실로 내가 느끼는 그 감정과 닮아있다.
토요일 오후, 앤은 제과점에서 아들 스코티의 여덟 번째 생일 케이크를 주문한다. 그런데 생일날 아침 스코티는 차에 치이고 결국 죽게 된다. 상황을 알 리 없는 빵집 주인은 케이크를 찾아가라고 연신 전화를 건다. 앤과 남편은 계속 걸려오는 전화에 화가 나서, 빵집으로 달려간다. 앤은 빵집 주인에게 막무가내로 화풀이하며 분노를 쏟아낸다. 그때, 그녀의 코끝을 스치는 따스하고 달콤한 냄새.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겠소. 내가 얼마나 미안한지는 하느님만이 아실 거요... 아마 제대로 드신 것도 없겠죠.” 뭔가를 먹는 게 도움이 된다오. 더 있소. 다 드시오. 먹고 싶은 만큼 드시오. 세상의 모든 롤빵이 다 여기에 있으니. … 그들은 롤빵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앤은 갑자기 허기를 느꼈는데, 그 롤빵은 따뜻하고 달콤했다. 그녀는 롤빵을 세 개나 먹어 빵집 주인을 기쁘게 했다. 그리고 그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신경 써서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지치고 비통했으나, 빵집 주인이 하고 싶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
그들은 이른 아침이 될 때까지, 창으로 희미한 햇살이 높게 비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는데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성당 중에서 주인공들은 서로 잘 아는 사람도 아니고, 조금 아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사람들은 생각해보면 우리 주변에도 많다는 것에 새삼 놀랄 것이다.
힘든 세상 속에서 위로란 어떻게 오는 걸까? 별것 아니지만 위로가 되는 별것 아니라서 위로가 되는 누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그것만으로 위로가 되지 않은가. 인간이 가지는 위로의 자세는 ‘먹여주는 것과 들어주는 것’ 바로 그것만으로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