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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에이 Feb 03. 2021

'촛불끄개'를 아시나요?

│귤껍질 어떻게 벗기나요?


귤을 대하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껍질을 벗길 때 알맹이를 감싸고 있는 하얀 껍질을 일일이 벗겨내는 사람과 그냥 먹는 사람, 나는 후자다. 하얀 껍질, 하얀 가루, 하얀 것이라 되는대로 불리지만 사실 이름이 있다. '귤락'이라는 어엿한 이름인데 귤껍질 안 쪽의 하얀 그물망 섬유질로 정의된다. 펙틴이 많아서 장기능에 좋고 변비와 소화불량 해소에 그만이란다. 나는 귤락을 떼지 않고 그냥 먹는 편이다. 귀차니즘에게 식감은 사치니까.


귤락처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사물이 많다. 빵 봉지를 묶는 노란색 철사가 들어간 끈은 트위스트 타이, 운동화 뒤 고리는 풀 룹스, 커피를 젓거나 마시는 얇은 빨대는 십스틱이라는 어엿한 이름이 있다. 분명 존재하고 쓰이고 있으나 눈여겨봐주는 사람이 적어 무명의 물건이라 해도 무방한 존재들, 문득 마음이 쓰인다.


│촛불끄개를 아시나요?


날이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이면 초를 켜곤 하는데 얼마 전 이케*에 갔다가 신박한 물건을 발견해서 데려온 것이 있다. 촛불을 끄는 도구인데, 이름은 스너퍼(snuffer) 양초 심지를 자르는 사람, 촛불을 끄는 도구를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말로는 '촛불끄개'로 불린다. 사실 입으로 불어서 끄면 그만일 초 끄기에 굳이 번잡스럽게 촛불끄개씩이나 동원해야 하냐고 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필요 유무를 따지는 일' '자리 잡지 못한 존재' 촛불끄개가 꼭 그런 것 같다.

필수재는 아닌, 가끔씩은 오히려 더 불편하기도 하고 사용빈도가 적어  쓸데없다는 구박을 받는데  사라지지 않고 꿋꿋하게 존재하고 있는 물건. 효율과 실용의 논리에서는 사람도 과감히 손절당하는 시대에 이러한 물건들에 감정을 이입하는 것은 쓸데없이 감상적인 것일까? 김영하 작가가 말한 인생의 즐거움은 무용함에서 나온다는 말처럼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즐거우면 되니까. 자고로 사람은 도구를 쓰는 사람이니까.

호흡 한 번 아끼고 무명의 도구에게 소용의 가치를 준다. 나에게 촛불끄개는 쓸데없이 필요하다.   




당신은 쓸데없이 필요한 물건이 몇 개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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