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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에이 Feb 01. 2021

나에게 다정한 '잔받침'



찬장에서 꺼내는 순간 엄마에게 등짝 스매싱을 당하는 것은?

정답은 커피잔 받침





엄마는 커피잔 세트를 찬장에 모셔두다 집에 귀한 손님이 오는 날에만 꺼내 사용했다.

찬장에 받침까지 한 세트로 진열된 커피잔이 근사하게 보여 나는 집에 혼자 있을 때면 까치발을 들어 잔을 꺼내는 수고를 마다 하지 않았다. 물을 팔팔 끓여 프리마 세 숟가락에 흑설탕 한 숟가락을 풀면 옅은 베이지색으로 풀어지던 '프리마'

영국의 귀부인이라도 된  듯 잔이 받침 접시에 부딪히며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흡족해했다.  우아한 표정을 지어보기도 하고 코끝에 매달린 달콤한 향기에 취해 호로록 마시면 몸 전체로 퍼지는 달달한 기운이 참 좋았다. 어린 마음에 나름의 공주 놀이였는데 문제는 이 공주 놀이의 끝은 늘 타박으로 끝났다는 거다.

곧장 설거지를 하고 깨끗하게 닦아 다시 넣어놨으면 좋았겠지만 프리마가 눌어붙은 커피잔을 그냥 그대로 싱크대 한편에 놓아두기 일쑤. 엄마에게 늘 타박의 빌미를 제공했다.


"머그잔에 타 먹지. 이걸 왜 꺼내? 씻어라도 두던가!"  

"사용해야 맛이지. 엄마는~ 치이~"


이후 이어지는 잔소리의 폭격. 그 잔해 속에서 잔받침이 있는 예쁜 커피잔은 아껴 쓰는 귀한 물건이라는 인식이 뇌리에 박혔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카페에서 잔 받침이 있는 커피잔에 커피가 나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주로 카푸치노나 카페라테가 그렇다. 아메리카노는 예외인 경우가 많은데 왜 아메리카노는 머그잔인가. 17세기에 영국에서 홍차를 마시며 티타임을  가지던 문화에서 출발한 잔받침은 미국으로 넘어오면서 선택의 영역으로 들어갔다. 실용적이고 모던함을 추구한다면 아메리카노는 머그잔이라는 공식, 대세가 되었다.


설거지거리를 늘린다는 오명 속 잔받침은 실용적인 면에서는 환영받지 못할 수 있지만 나에게 잔받침은 티타임이라는 여유로운 휴식이라는 형상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짝이 있으니 심미안적으로 완전체를 이룬다는 편안함과 번거로운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귀한 대접이기에 가심비와 결을 같이 한다. 사실 받침이 있으면 뜨거운 음료가 바닥에 흘러내려 테이블을 더럽히는 것도 막아주니 잔받침이 실용적이지 않다는 것도 다소 억울한 일이다. 여차저차 나는 커피잔을 살 때 꼭 잔받침이 있는 것을 고른다. 독립 살림을 꾸리고 있는 지금은 그날그날기분에 따라 찻잔세트를 고르고 아메리카노를 곱게 담아 보란 듯이 달그락 소리를 내며 마신다.



│어느 날은 꽃 프린팅과 어느 날은 심플한 화이트로 어느 날은 레트로

│어느 날은 영국에서 어느 날은 미국에서 어느 날은 일본에서 어느 날은 우리나라에서 들어진



뜨겁고 까만 액체가 담긴 찻잔을 보면

커피의 풍미도 달라지고 기분도 다르게 환기된다. 공통점은 스스로를 귀하게 대접하고 다정하게 돌보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

이게 뭐라고 엄마와 그렇게 투닥거렸을까.

방금 내린 아메리카노가 뜨거운 김을 내며

잔에 담겨있다.

잔을 들면 제법 묵직한 추억이, 잔을 내려놓으면 경쾌한 자존감이, 안녕이라고 말을 건넨다.





당신이 사랑하는 컵은 어떤 모양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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