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25일
한 달 정도 준비하고 떠나온, 급작스러운 제주살이!
코로나의 영향으로 원래 계획보다 2주 정도 미뤄지긴 했지만 우리 가족은 무사히 제주에 도착했다. 3살 아기와 강아지까지 함께 타는 비행기였던지라 긴장을 많이 했었다.
혹시나 으누가 한 시간 내내 울면 어쩌지?
달콤이가 계속 짖거나 낑낑거리면 어쩌지?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놓고, 잔뜩 긴장한 채로 비행기에 탑승했다. 하지만 나의 걱정은 이내 무색해졌다. 으누는 비행기에 타자마자 잠에 들어 한 시간 내내 잤고, 달콤이는 탄지도 모를 만큼 조용하게 잘 있어주었다.
너희 여행 체질이구나?
약간 쌀쌀했던 인천의 날씨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제주는 완연한 봄이다. 공항 근처의 왕벚꽃 나무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아... 너무 예쁘다...'
인천항에서 보낸 우리 차는 내일 도착한다. 그래서 렌터카로 숙소까지 이동을 했다. 살짝 낯선 렌터카 덕분에 여행 느낌이 났다. 인천과는 다른 제주의 분위기가 살짝 설레게 한다.
마냥 신났던 우리와는 달리, 서운한 기색이 역력하셨던 친정부모님... 부모님과 공항에서의 작별인사가 생각이 나서 약간 마음이 찡해 온다. 제주의 아름다운 바깥 풍경을 보며 속으로 울음을 삼킨다.
한참 벌어야 할 30대 중반의 딸 부부가 갑자기 사표를 내고 제주로 간다고 했을 때, 우리 부모님은 박수까지 치며 응원해주셨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다 그렇게 즐기며 산다고, 너희는 역시 똑똑해서 이런 결정도 척척 하는 거라고. 너무너무 잘 한 결정이라고 환영해 주셨다.
"너희는 복이 많은 아이들이라 그 어디를 가더라도 잘 살 거야.
아무 걱정도 하지 말고, 재밌게 잘 놀다 오면 되는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부모님은 너무 멋지신 분들이다. 언제나 긍정의 말로 무조건적인 응원을 보내주신다. 우리 부모님의 긍정 주문 덕분에, 나는 세상이 두렵지 않았다. 그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결국은 잘 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제주로 도망치듯 떠난 오늘도, 우리 부모님의 그 말씀을 떠올려 본다. '어차피 모든 게 잘 될 놈'이라는 무모한 믿음으로 주문을 외운다. 정말 모든 게 잘 되었으면 좋겠다.
나쁜 일은 왜 한 번에 찾아오는 걸까?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위기, 신랑의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 부부 갈등으로 인한 이혼 위기...
이 모든 걸 감당하다가 펑 터져버린 나의 멘탈까지... 무작정 도망치고 싶었다.
그래 이혼보다는 낫겠지, 이혼보다는 경제적 파탄이 낫겠지.
이혼을 할 때 하더라도 우리 가족만의 시간을 진하게 보내보자.
그동안 일하느라 서로 바빠서 우리 가족만의 시간이 없었잖아?
마이너스 통장 2개를 들고 무작정 떠나온 철없는 부부. 돌아보니 참 무모했던 그날의 우리.
낯설디 낯선 이곳에서 앞으로의 석 달을 잘 지낼 수 있을지 왈칵 겁이 나기도 한다. 석 달 후, 과연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이 모든 위기를 잘 극복하고, 다시 행복한 일상을 찾을 수 있을까?
여행의 설렘과 동시에 공존하던 그날, 렌터카 속의 침묵의 공기. 그 공기가 아직도 생각이 난다.
숙소에 도착을 했다. 예산에 맞춰서 얻은 작은 마당이 딸린 낡은 펜션, 방과 주방이 분리된 1.5룸이다. 얼마나 비어져 있던 건지 집은 냉골이나 다름없었다. 빨리 따뜻해지기를 바라며 보일러를 틀어 놓고, 집안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인천에 있는 우리 집보다 좁고 열악한 집이지만, 왠지 모를 설렘으로 세상 그 어떤 집보다 좋아 보인다.
짐을 실어서 배를 태워 보낸 자동차는 내일 도착을 한다. 오늘 입을 옷만 간단히 챙겼기에 풀 짐이 없다. 아직은 집이 휑해 보인다.
으누와 달콤이도 신이 났는지 평소보다 텐션이 높다. 근처 제일 가까운 식당에서 돈가스를 포장해서 먹고, 동네 밤 산책을 나갔는데 엄청 깜깜하다. 인천에서는 저녁 8시더라도 세상 밝은데, 이 마을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내일을 기약하며, 우리 가족은 낯선 곳에서 잠을 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