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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북스 김희영 Jun 19. 2022

당신이 뭔데 우리 아이를 판단해?

선생 같지도 않은 선생을 만났던 이야기

2019년 여름의 이야기다.


으누에게 여러가지를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하는 다양한 문화센터 수업을 들었다. 평일에는 시간을 낼 수 없었기 때문에 '주말 특강' 하는 곳을 찾아서 인천의 곳곳을 다녔었다.


그 당시에는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주말마다 여기저기 바깥활동을 하려고 해도 당시의 미세먼지는 최악의 대기질을 자랑했었다. 그나마 실내가 낫겠지 싶어서 문화센터 수업을 선택했다. 


엄마랑은 여러 가지 경험을 할 수 있는 촉감 수업을, 아빠랑은 몸을 쓰며 놀 수 있는 체육수업을 들었다. 매일 집에 혼자 있는 아이라서 '집보다는 낫겠지...'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다녔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느리고 감각이 예민한 으누에게는 불편했을 것이다. 으누는 사람이 많은 곳, 시끄러운 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 으누의 기질을 더 빨리 파악했다면, 불필요한 돈을 쓰면서까지 문화센터 수업을 찾아다니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이게 최선이었다.


우리 으누는 예나 지금이나 혼자 노는 것이 제일 재밌고, 혼자 놀 때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아이다. 혼자서 잘 노는 아이들이 상상력과 창의력이 풍부하고 똑똑하다고 하던데, 우리 으누도 아마 그런가 보다.






여러개의 문화센터 수업을 들으면서 다양한 경험을 했고, 다양한 선생님을 만났다. 그중에서 유난히 잊히지 않는 선생님이 계셔서 그때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홈플러스 연수점의 주말특강 문센수업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촉감놀이를 접목한 미술 수업이었다.


역시나 다른 친구들은 미술 가운을 입고도 옷이 엉망이 될 만큼 열심히, 신나게 즐겼다. 우리 으누는 그저 멀찍이서 친구들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촉감에 예민한 아이였기에 손과 발에 묻히는 것을 싫어했다. 느리지만 으누만의 속도로 물감을 탐색하고, 으누만의 방법으로 물감과 친해지고 있었다. 난 그저 으누의 속도를 응원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담당 선생님께서 으누를 보시더니 억지로 활동에 참여를 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중하게 막아서며 부탁을 드렸다. 



"저희 아이는 지금 충분히 즐기고 있는 거예요. 

저희 아이만의 속도가 있으니 재촉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이제부터는 선생님 소리도 아까운 그분께 선생이라고 지칭하겠다.)

나의 말을 들은 그 선생이라는 사람이 큰 소리로 이렇게 이야기했다.



"어머~ 애가 엄청 예민한가 봐요. 

그렇게 예민하게 키우면 안 돼요! 엄마가 잘못하는 거예요! 

다른 애들 보세요. 저렇게 무던하게 키워야지 성격이 좋죠. 

너무 예민하면 나중에 사회생활 어떻게 해요?  엄마가 깔끔쟁이인가 보다. 

그러니까 애기가 예민하고 까탈스럽죠"



순간 황당하였다. 저 여자가 미친 거 아닌가? 싶은 마음과 함께 울컥했다. 더 이상 그런 사람과 같이 있기도 싫어서 주섬주섬 아이 옷을 챙겨 입히고 교실을 나가려고 일어서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당신이 뭔데? 우리 으누에 대해서 무얼 안다고 그렇게 함부로 말을 하는 건지 짜증이 올라왔다. 울컥 눈물도 났다. 평소 같으면 그 자리가 드러워서 그냥 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아이를 그렇게 말한다는 것이 참을 수 없어 그 선생을 불러 세웠다.



"저기요, 아이들 대하는 사람이 그렇게 말해도 되는건가요?

당신은 아이마다 성향이 다르다는 기본적인 상식도 없나요?

당신이 뭔데 오늘 처음 본 우리 아이를 그렇게 말하시나요?


우리 아이가 다른 상황에서는 얼마나 활동적인지,

얼마나 오랜 시간을 집중력있게 책을 보는지,

다른 분야에서는 얼마나 두각을 나타내는지 아시나요?


이까짓 물감 하나 못 만진다고 왜 그렇게 말하시나요?

성격이 어쩌고 사회생활이 어쩌고? 어디서 애한테 악담이야?"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울컥한다. 3년도 더 된 일인데 화가 난다. 어떻게 저런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저런 말을 서슴치 않고 내뱉는 사람이 아이 교육업에 종사하는 거지? 더 망신을 주고 나왔어야 했는데 후회가 된다.






3년이 지난, 5살이 된 으누는 물감놀이를 즐긴다. 하지만 여전히 온 몸에 묻히고 노는 것은 싫어한다. 절제된 난장이라고 할까? 절제된 물감놀이를 좋아한다.


역시 아이의 타고난 기질은 변하지 않나 보다. 나의 어린 시절과 어쩜 그리 똑같은지 모르겠다. 


물감을 온 몸에 범벅을 하지 않더라도, 그 안에서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워 나가는 우리 으누의 방식을 나는 응원한다. 촉감이 예민한 만큼 더 섬세한 아이로 자랄 것을 나는 믿는다. 


다른 사람 모두가 세상의 잣대로 우리 으누를 평가하더라도, 나만은 으누의 속도를 응원해주는 엄마가 되어야 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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