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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북스 김희영 Dec 25. 2021

본인만의 속도로 자라는 아이

느린 아이 키우는 엄마의 기다림 (2)

안녕하세요, 으누맘입니다 :)


저는 느린 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이제 곧 5살이 되는 아이를 키우며, 아이의 속도를 기다려 주는 것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언제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네요.


다른 친구들보다 첫걸음마를 늦게 (18개월 무렵에) 뗀 대신, 단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완벽하게 뛰던 아이! 본인이 완벽한 자신감이 생길 때까지 다리 힘을 기르고 기르던 아이! 본인 만의 시기가 오면 잘 해내는 아이!


그런 아이가 우리 아이인 걸 경험했음에도 초보 엄마는 실수를 반복합니다. 다음 발달 과업인 '말하기'는 더더욱 긴 기다림을 필요로 했고, 그 과정에서 다시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엄마로 돌아갔거든요.





우리 으누는 말도 참 느리게 트였어요. 아가 시절 기본적인 옹알이도 거의 없던 아가였습니다. 늘 조용조용, 본인만의 시선에 집중을 하는 조용한 아가였어요.


아무리 느리다고 해도, 36개월(4살)이 될 때까지 기본적인 '엄마, 아빠'도 못할 줄은 몰랐습니다. 엄마와 맘마의 중간인 '왐마' 정도가 유일하게 내뱉는 말이었어요. 다른 말들은 일절 없었습니다. 느려도 정~말 느리지요?


영유아 검사를 갈 때마다 진지하게 상담을 받았어요. 기본적인 눈맞춤이나 호명 반응도 좋고, 무엇보다도 인지능력이 뛰어난 편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워낙 신중한 아이라서 느린 것뿐, 똑똑한 아이니 금방 트일 거라고 위로를 해주셨어요. 다만, 36개월 이후에도 지금과 같다면 정밀검사가 필요하다는 말씀과 함께요.


그래서 저는 36개월까지 기다려보기로 하였습니다. 그 시기 동안은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우리 아이를 믿고 응원해주기로 다짐을 하였지요. 하지만 그 기다림의 시기가 너~무 힘들었을 뿐 아니라,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을 하였습니다.


1) 3살에 찾아온 위기


두 돌이 지나자, 아이는 본인만의 생각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게 되었어요. 본인의 생각과 고집이 분명한데, 말로 표현이 안 되니 본인은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엄마, 우유 주세요~'라는 기본적인 표현도 안 되니 원하는 것이 생길 때 떼를 쓰기 시작했어요. 제 입장에서는 영문을 모르는 상태로 떼가 심해지는 것을 받아주다 보니, 육아가 참 힘들어졌습니다. 아이는 날이 갈수록 떼가 점점 더 심해지고, 저는 점점 육아 자존감이 낮아지는 악순환이 계속되었습니다.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을 때,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때리는 등 폭력적인 성향도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순둥순둥 순둥이로 알고 키워왔던 아이가 한순간에 변하니 당황스러웠어요. 아이를 혼내는 날이 많아졌고, 아이의 행동은 날이 갈수록 더 심해졌습니다.


나의 육아법을 탓하며, 모두 내 잘못이라고 자책하는 날들이 길어졌어요. 매일 밤 오은영 박사님의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며 눈물로 지새웠습니다. 많은 영상과 육아서를 보며 공부를 해도, 하루하루 나아지지 않는 막막한 내일이었어요. 그렇게 질풍노도의 3살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2) 4살에 찾아온 위기


으누는 4살(32개월 무렵)에 처음으로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오래 끼고 있던 만큼 적응을 힘들어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아이는 하루 만에 적응을 하고 어린이집이 좋다고 하더라고요. 주말에는 바깥은 내다보며 빨리 어린이집에 가고 싶다고 조를 정도였어요.


그렇게 즐겁게 잘 다니는 줄로만 알았던 어린이집에서도 서서히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역시나 말이 느린 것이 문제가 되었어요. 본격적으로 말이 트이기 전이라서, 또래 친구들에 비해서 1년 이상 느렸습니다. 특히나 으누네 어린이집은 여자아이가 8명, 남자아이가 으누 포함 2명이었어요. 여자아이들은 말과 행동이 더 빠르니 우리 으누는 더더욱 어울릴 수가 없었겠지요?


소꿉놀이, 역할놀이를 즐기는 여자아이들 틈에서 말과 행동이 느린 으누는 겉돌기 시작합니다. 말이 안 통할 때마다 몸이 먼저 나가던 아이였으니, 그 과정에서 친구를 밀치는 등의 행동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불려 가 여기저기 사과를 하는 날이 많아졌고, 아이의 자존감은 낮아졌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렇게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으누는 어린이집에 흥미를 잃어가고, 아침마다 등원 전쟁을 벌이게 되었어요.


그렇게 으누는 3개월 만에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다시 가정보육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본인만의 속도에만 집중하는 행복한 아이로 돌아왔어요. 아이의 미소만 보아도 엄마는 알 수 있지요. 우리 아이가 정말 행복한 상태라는 것을요 :)


3) 주변의 말에 흔들리는 엄마


하지만, 가장 큰 위기는 바로 엄마인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우리 아이만 바라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아이인데 또래 친구들과 비교를 하면 많은 문제들이 보였어요. 말 하나 느린 것뿐인데, 전체적인 행동과 인지능력까지 낮은 아이가 되어버렸거든요. 적어도 남들이 보기에는 말이에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조용한 곳을 선호하는 아이의 성향에 맞춰서 양육을 하고 있을 뿐인데, 아이가 책만 봐서 말과 행동이 느린 거라는 주변의 말 한마디에 흔들리는 제 자신이 싫었습니다. 엄마가 말을 많이 안 해줘서 말이 느린 거라는 오지랖 어린 조언 한 마디에 얼마나 상처를 받았던지요. 그런 말들에 신경이 곤두서는 날이면, 모두 다 '내 탓'을 하며 엄마로서 한없이 작아지곤 하였답니다.


매일 밤 맘 카페를 뒤지는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어요. 주변의 상담센터를 알아보고, 어떤 검사를 받아야 하는지 매일 밤 검색하였습니다. 주변 느린 아이 키우는 엄마들에게도 조언을 구했어요. 모두들 조언해주시는 내용은 달랐지만, 느린 아이 키우며 겪는 마음고생을 공감받는 것만으로도 좋았습니다.






그렇게 약속했던 36개월이 되어도 아이는 말이 트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더 이상 늦추는 것은 안 되겠다 싶어서 상담센터를 예약하기로 하던 바로 그때, 갑자기 방언 터지듯 아이가 말이 트였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다 담아놨던 건지 정확한 문장 구사력으로 한국어, 영어, 중국어를 한꺼번에 내뱉기 시작했어요. 그동안 책을 읽으며 담아뒀던 내용들을 쏟아내며 척척박사 급의 말솜씨를 뽐내게 되었습니다. (물론, 도치맘의 시선이니 과도한 자식 자랑 이해해 주세요~^^)


현재 44개월, 으누는 아직도 또래 친구들과 비교하면 1년 이상 말이 느립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조해하지 않아요. 그것이 리 아이만의 속도임을 알기 때문이에요. 이제 더 이상 또래 친구와의 비교가 아닌 내 아이의 어제와 비교를 하는 엄마가 되었답니다.


우리 아이는 아직 말이 느리지만, 그 누구보다 예쁜 언어들로 시를 쓰고 있어요. 바쁜 엄마와 오랜만에 밤바다 산책을 간 날, 아이는 세상 그 어떤 시보다 예쁜 사랑고백을 전한답니다. "엄마랑 같이 보니 바다가 반짝반짝 더 예뻐요. 엄마 내일도 엄마랑 같이 올래요~"


본인의 속도로 잘 크는 아이를 믿어주는 일, 엄마로서 가장 중요한 일이지만 쉽지 않은 일임을 또 한 번 느낍니다. 기다림의 과정은 너무 길고, 그 과정에서 혹시나 내 잘못은 아닐까?라는 엄마로서의 자책감이 들기 때문이에요.


그럼에도 '우리 아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엄마'라는 자부심을 갖고, 주변의 말들에 더 이상 흔들리지 않기로 다짐을 해봅니다. 이렇게 또 한 번, 초보 엄마는 아이에게서 인생을 배웁니다. 남들보다 느리지만 포기하지 않는 그 끈기를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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