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거울을 볼 때마다 머리카락 사이에서 반짝거림이 느껴진다. 가르마를 바꿔서 빗질을 할 때마다 반짝반짝... 자체발광일까?
자세히 들여다보니 흰머리다. 하... 흰머리라니? 새치라고 하기엔 많고 흰머리라고 하기에는 어색하다. 어쩌다 1~2개 발견되던 것이 이제는 수두룩하게 발견된다. 출산 후로 갑자기 흰머리가 늘어났다.
...
조금 당황스럽고 우울하다. 그뿐이다.
#2.
지난달에 친정부모님이 오셔서 며칠 머물다 가셨다. 머리를 감은 후 아무렇게나 틀어 올리고 있는데 엄마가 머리를 말려주셨다. 학창 시절의 바쁜 아침처럼.
늦잠을 잔 날이면 머리를 말리느라 아침밥 먹을 시간이 부족하곤 했다. 아침밥보다는 미모 관리가 더 중요했던 시절이라 나는 밥을 포기하곤 했었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가 국에다가 밥을 말아다 주셨다. 국밥을 퍼먹고 있노라면 엄마가 머리를 말려주곤 하셨는데...
오랜만에 엄마가 머리를 말려주시니 20년도 더 된 그때가 떠올랐다. 엄마 눈에는 내가 아직도 아이인가 보다.
그러다가 엄마가 흰머리 두어 개를 뽑아주셨다. 이마라인은 내 눈에 띄니 자주 뽑는데, 뒷머리는 그렇지 않아 제법 길었다. 긴 흰머리를 보니 느낌이 조금 달랐다. 그런데...
나보다 더 충격을 받은 우리 엄마의 표정에 웃음이 났다. 내 딸의 흰머리를 처음 본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3.
초등학교 2~3학년쯤이었던가. 아빠가 신문을 보고 계시면 나는 족집게를 들고 아빠 흰머리를 뽑아드렸다. 1개 뽑으면 20원. 5개만 뽑으면 100원이다! 매점에서 쫀드기를 사 먹을 수 있다!
한참을 고르고 골라야 나오던 아빠의 흰머리가 야속하기만 했다. 제발 내일은 아빠의 흰머리가 많이 나타나기를 바랐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흰머리 1개에 20원이 아니라 2000원을 드릴 테니 다시 까만 머리로 변했으면 좋겠다. 아빠가 천천히 나이드셨으면 좋겠다.
#4.
아직 서른 중반인 내 나이에 흰머리가 늘어나는 것은 서글프지만 나이가 먹어감은 서글프지 않다. 나이가 먹어가면서 얻는 것이 더 많으니까.
나는 지금의 내 나이가 좋다. 그리고 곧 마흔이 되는 나도 좋다.
나이는 먹어가되, 예쁘게 늙고 싶다. 몸도 마음도 성숙하고 예쁘게.
#5.
내년부터 만 나이로 통일된다고 한다. 36살 인생을 1년 더 살게 되었다.
내가 봤을 때 오빠가 최고의 수혜자다. 내년이면 마흔이라고 우울해하더니, 1년 더 늦춰졌다.
오빠와 함께 늙어가는 건 어떤 기분일까? 백발노인이 돼서도 지금처럼 하하호호 웃으며 손잡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