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준비하던 시기에 회사 일정 때문에 우리 둘 다 너무나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결혼식 전날도 남편은 야근을 했을 정도니까. 그래서 신혼여행 준비에 많은 신경을 쓸 수 없었다. 그는 하와이로 가서 놀거리를 즐기길 원했고, 나는 발리 같은 곳에서 휴양을 하길 원했다. 결론적으로 내가 신혼여행 장소로 선택한 곳은 태국이었다. 그 당시에 내 머릿속은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고, 태국은 비용적인 면에서 굉장히 매력적인 여행지였다.
항공은 내가 직접 예약하면 되었고, 간략적인 스케줄과 고를 수 있는 숙소 리스트를 받았다. 007 섬 투어, 2인용 배 탑승, 사원 답사, 마사지 등의 고정 스케줄이 정해져 있었고, 자유시간에 선택사항으로 원하는 일정을 맞춰 넣을 수 있었다. 내가 제일 하고 싶었던 것은 스노클링이라 자유시간에 스노클링을 하겠다고 선택해 넣었다.
언급을 안 할 수 없는 최악의 실수는 비용을 좀 줄여보겠다고 저가 항공을 예약한 일이었다. 알다시피 저가 항공은 좌석 간 간격이 너무나 좁아서 키 작은 사람이 앉아 가도 편히 가기 어려운 구조다. 그래도 생각해서 추가 요금을 내고 비상구 쪽 좌석을 선택하긴 했었다. 비상구 쪽 좌석은 혹시라도 사고가 난 경우 승무원을 도와서 승객들의 탈출을 도와야 하는 좌석인데 일반 좌석에 비해 간격이 조금 더 여유가 있고, 미리 신청하면 추가 요금을 내고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키가 183cm이고, 나는 키가 169cm인데 우리 둘 다 팔다리가 긴 체형이다. 더군다나 비행시간은 6시간 가까이 되었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종일 거의 먹지도 못한 상태로 너덜너덜해져서 저녁 8시부터 새벽 2시에 비행기에 꼬깃꼬깃 구겨져 있던 남편은 그날 이후 저가 항공 트라우마가 생겨버렸다.
“여행을 가려고 하는데 저가항공은 10만 원이고, 대0항공은 200만 원이야. 가격 차이가 스무 배거든. 그럼 어떤 거 탈 거야?”
“대0항공!”
다시는 저가 항공을 타지 않겠다는 의지가 결연하다.
태국에 도착하니 한국인 가이드가 우리를 호텔까지 데려다주었다. 우리 말고 신혼부부가 한 커플 더 있는데 선택사항이 서로 달라서 따로 움직이고 공동 일정만 함께 하게 될 거라고 했다. 거의 시든 시금치가 된 우리는 호텔에 도착해서 씻고 3시가 넘어서야 잘 수 있었는데 아침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서 정말 눈만 붙였다 일어나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피곤해도 호텔 조식은 놓칠 수 없었다.
호텔 조식 뷔페는 분위기도 좋고, 맛도 있고, 여행 온 외국인도 많이 보여서 여행 온 기분이 났다. 식사 후에 호텔 로비에서 가이드를 기다렸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가이드가 오질 않았다. 연락처라도 받아 뒀어야 했는데 우리가 현지에 너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정신이 없어 가이드 연락처도 묻지 못했다. 어쩔 도리가 없어서 로비에서 30분 정도 기다렸나? 처음 보는 태국 현지인이 와서 아는 척을 했다. 당연히 한국인 가이드가 픽업 올 줄 알았는데 한국말을 전혀 못 하는 태국인 가이드가 와서 너무나 황당했다. (우리도 영어를 못한단 말이에요!)
귀를 활짝 열고 들어보니 ‘악시단트’라는 단어가 들렸다. 오다가 사고가 나서 늦었다는 모양이다. 그리고 한국인 가이드는 우리보다 먼저 도착했던 다른 커플 일정을 소화하는 중이라 긴급히 본인이 투입되었다고 했다. 너무 오랜만에 듣는 영어라 처음에 매우 당황했으나 귀만 잘 열고 들으면 의사소통은 가능할 것 같았다. 나중에 다른 커플을 만나보니 28세 동갑내기 아주 어린 부부였는데 그들은 영어를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아마도 그러한 이유로 현지인 가이드가 우리에게 온 것 같았다.
둘째 날은 잠들었다가 갑자기 호흡곤란이 와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를 했다. 다른 나라에 와서 몹쓸 병에 걸렸구나 덜컥 겁이 났는데 호텔에서 제공한 웰컴프룻을 먹고 체한 거였다. 아침에 일어나 컨디션이 안 좋은 상태에서 스노클링을 하러 갔는데 1시간 스노클링을 하기 위해 왕복 4시간(차량+배)을 이동해야 했다. 배 타고 가는 동안 차라리 자는 게 낫다고 이드가 준 멀미약을 먹고 기절해서 배에서의 기억은 전혀 없다.
오후엔 2시간 정도 자유롭게 투어를 하라며 어딘가에 내려줬는데 길거리 음식은 절대 먹지 말라고 해서 태국까지 가서 그 흔한 쌀국수 한 젓가락 못 먹어 보고 왔다. 여행이라기보다는 빡빡하게 짜인 일정에 맞춰 스케줄을 소화한 느낌이 더 크다.
수목원은 어찌나 덥고, 습하고, 벌레가 많던지. 코끼리 타고 도는 구간은 코끼리 발밑이 똥 밭이라 혹시나 굴러 떨어지면 다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똥밭에 구르게 될까 봐 겁이 났다.
결정적으로 태국까지 가서 굳이 한국 식당에서 삼겹살을 먹고 와야 했는지 지금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마지막 날은 그냥 풀빌라 안에서 식사도 해결하고, 수영도 하고, TV에서 방영해 주는 태양의 후예만 실컷 봤다.
여기까지만 적어도 우리의 신혼여행이 얼마나 별로였는지 더 나열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냥 하와이 갈걸. 하와이 다녀와서 별로였다는 사람 못 봤는데. 다음에 또(?) 아니면 다음 생에 신혼여행 갈 일 있으면 꼭 저가 항공은 피해서 하와이로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결혼식에 들어가는 비용은 아끼더라도 신혼여행 경비는 아끼지 말아야 했다.
한국에 오기 전 가이드가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라텍스 쇼핑센터였다. 우리와 함께 왔던 어린 커플은 라텍스 침대를 사고 있었다. 헉!! 여기서 사도 한국까지 안전하게 배송을 해준다는 말에 본인들 아직 침대 구입도 못했다며 구매확인서를 적고 있었다. 괜... 괜찮은 걸까?
그들이 구매확인서를 적고 있는 동안 여자 판매원이 우리에게도 접근을 했다.
“저희는 필요한 거 없어요. 괜찮아요.”
“당장 필요한 게 없으면 아기 침대라도 사가세요.”
“지금 있지도 않은 아기 침대를 사라니요. 애가 생길지 안 생길지도 모르는데요!”
“어머 무슨 그런 말을. 어차피 나중에 아기 낳으실 거잖아요.”
“제가 나이가 많아서 임신이 될지 안 될지, 출산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몰라요!”
“그럼 목베개라도 사 가세요.”
좀 어이가 없어서 판매자와 약간의 실랑이를 했다. 사고 싶지도 않은 라텍스 쇼핑센터에 억지로 들어와서 당장 있지도 않은 아기 침대를 사 가라니. 몇 번을 더 찔러보던 판매원은 이 여자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는지 후퇴하고 젊은 커플들에게 붙어서 이것저것 추가 판매를 권유했다.
아주 가끔 신혼여행을 떠올리면 그 커플 그 침대 잘 사용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