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받고 싶지 않은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날인데 한 시간가량을 무사히 잘 견뎌 낼 수 있을까?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결혼식의 주인공이 신부인 나 같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그날의 배경이었다. 가장 많았던 손님은 나도 알지 못하는 부모님 손님이었고, 이제 경조사가 아니면 얼굴도 보기 힘들던 친구들에겐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회포 풀기에 바쁜 날이었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샵에 갔다. 태블릿을 보여주며 오늘 원하는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을 고르라는데 눈썰미가 별로 없는 나는 보여주는 사진들의 다른 점을 모르겠다. 그냥 내게 어울릴 것 같은 스타일로 알아서 잘해주면 될 것 같은데 다른 신부들은 요구사항이 많은가 보다. 어차피 화장해서 예뻐 보일 나이도 아니고, 이미 먹어버린 나이를 숨길 수도 없다. 대부분 이런 아리송한 선택의 순간에 도움을 주는 건 동생이다. 피부결 신경 써주고 헤어는 다운업으로 단정히 올려달라는 주문을 해줬다. 메이크업을 받으려는데 메이크업 실장님과 동생이 고등학교 때 같은 동아리 친구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둘이 나란히 수다를 떨게 내버려 두고 난 얌전히 메이크업을 받았다.
식장에 도착한 이후 내가 해야 할 일은 신부대기실에서 1시간 동안 오시는 손님들과 사진을 찍는 일이었다. 똑같은 표정과 똑같은 자세로 1시간 내내 사진을 찍었고, 그 시간이 정말 1시간이 맞았나 싶을 정도로 순식간에 흘렀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망각할 정도로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있는데 이제 신부 입장할 시간이 되었다고 닫혀있는 문 앞에 서라고 했다. 그제야 퍼뜩 정신이 들었다. 저 문이 열리고 나면 모든 사람들 앞에서 그의 신부가 되기를 맹세하고 36년 만에 부모님의 품을 떠나 독립을 하게 된다. 그 문 앞에 서 있는 5분 동안 가슴 한가운데서 뭔가 팍 하고 터지면서 뭔지 모를 무언가가 울컥 뿜어져 나올 것 같았다. 그토록 바랬던 결혼이며, 내 마음으로 고른 사람이고 내 의지로 하는 결혼인데 주체할 수 없이 마음에 지진이 난 것 같았다.
갑자기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질 것 같았다. 눈물이 한번 흐르기 시작하면 그냥 흐르는 눈물이 아니라 그대로 주저앉아서 오열을 할 것만 같았다. 정말 짧은 찰나 나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절대 이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
바들바들 떨고 있는데 식장 문이 활짝 열렸다. 모든 시선이 내게 집중된 가운데 감정을 잡고 아빠 손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 울음을 참느라 계속 어깨가 들썩거렸다. 속에서 물이 차오르는데 눈에서 흐르지 않으니 콧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 무엇보다 손수건이 너무나도 절실히 필요했다. 특히나 이 결혼식은 주례가 없는 대신 신랑, 신부 혼인 서약을 각자 읽기로 되어 있었다. 서약서를 읽는 내내 눈물을 참느라 울먹울먹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눈물 대신 나오는 콧물 때문에 계속 훌쩍훌쩍 코를 먹어가면서 겨우겨우 간신히 끝냈다.
예식 전에 절대 어떠한 이벤트도 없이 최대한 간결하고 빨리 끝낼 수 있게 해달라고 사회를 보던 친구에게 미리 부탁해 두었다.
소용돌이치던 감정의 원인이 뭐였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결혼 안 한다고 구박받던 지난날의 설움이 주마등처럼 스침과 동시에 더 좋은 조건의 사람과 결혼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송함, 그리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야 한다는 생각이 내 영혼을 마구잡이로 흔들어 놓은 것 같았다.
“우리 결혼식에 축가는 자기가 불러줘.”
“내 결혼식은 나도 축하받아야 하는 자리 아니야?”
“다른 사람들 결혼식마다 축가 부르고 다니면서 나한테만 안 불러준다고 하면 내가 너무 서운하지. 그러니까 꼭 자기가 불러줘.”
이 남자는 약간 츤데레 스타일이다. 안 해 줄 것처럼 굴면서 결국엔 내가 원하는 대로 해 준다. 그 대신 정말 본인의 스타일대로.
성시경 노래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선곡까지 콕 집어 줬는데 생전 처음 들어보는 노래를 불러주었다. 지금까지도 난 그 노래가 무슨 노래였는지 알지 못하고, 그 노래를 불렀던 본인조차 무슨 노래였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축가를 부르고 있는 남편 사진은 있지만 영상 촬영은 따로 하지 않아서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 전혀 알 수 없다. 혹시라도 그때 핸드폰으로라도 찍은 영상을 간직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꼭 받고 싶다.
결혼식 당일에 남편의 회사가 너무 바쁜 나머지 경영팀을 제외한 전 직원이 출근을 하는 바람에 경영팀을 제외한 회사 동료들이 아무도 참석하지 못했다. 아쉬움이 없지 않았지만(나와 친한 사람들도 좀 있어서) 신랑이 출근 안 하고 식장에 와서 본인 자리를 지켜준 게 어디냐 싶었다.
예식이 끝난 후 식당을 돌며 와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를 다녔는데 처음 뵙는 아빠 지인이 “어째 신랑이 더 이쁜 것 같네.”라며 가슴에 비수 꽂는 말씀을 아무렇지 않게 하셨다. 내 귀에 생생히 꽂힌 그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 걸로 봐서 이 상처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쭈욱~
‘36살 노처녀랑, 32살 새싹이랑 결혼하는데 어떻게 모양새가 같겠냐고요!! 나도 32살에는 꽤 괜찮았답니다!!!’라는 말을 누른 채 다소곳하게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름 훈남이었던 그 사람은 더 이상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와 함께 혼인 서약을 했던 그 훈남은 대체 어디로 사라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