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콤말이 Mar 10. 2023

괜찮은 주부의 조건

 본격적인 우리의 결혼생활이 시작되었다.     


 36살이 되도록 부모님과 떨어져 지낸 건 십여 년 전 어학연수 다녀온 6개월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 바쁜 남편은 새벽 5시 반에 일어나서 6시쯤 집을 나서고 한밤중이 되어서야 들어왔다. 출근하려고 눈을 뜨면 남편은 이미 없고, 퇴근하고 와서 잘 준비를 마치면 그때 볼 수 있었다. 결혼생활이라기보다는 자취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한동안 남편이 일어나서 씻고 출근 준비하는 동안 나도 같이 일어나서 토스트를 만들고, 과일을 갈아서 주스를 만들어 주었다. 남편은 그럴 필요 없다고 했지만 뭔가 아내로서 그 정도는 해주고 싶었다.   

   

 하숙집처럼 집에서 잠만 자고 나가는 남편은 살던 집이 바뀐 것뿐이었겠지만 나는 좀 달랐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 엄마가 차려주는 저녁을 먹고, 먹고 나면 설거지도 엄마가 해주고, 엄마가 세탁해 준 옷을 입고 출근을 했으나 결혼 후에는 그 모든 것들이 나의 몫이었다.

 매일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겉옷을 벗자마자 청소기를 들었고, 세탁기라는 것도 처음 돌려 보았다. 낮엔 늘 비어 있는 집인데도 매일 청소기 먼지 함에 먼지가 차는 게 보였고, 매일 세탁기를 돌려도 남편이 퇴근하고 나면 세탁 바구니에 다시 세탁해야 할 옷이 차올랐다. 세탁된 옷을 옷걸이에 널어 건조하고, 건조된 세탁물은 다시 예쁘게 개어서 정리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엄마가 그렇게 흰색 옷을 싫어하셨구나 깨달았다.

 흰색이나 아이보리색 밝은 옷은 금방 더러워지고, 오염이 되면 잘 지워지지도 않았다. 엄마가 밝은 계열 옷을 사면 좋아하지 않아서 나중에 결혼하면 흰옷을 잔뜩 사서 입어야지 생각했는데 결혼 후엔 더 사지 않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남편이 흰색 옷을 사면 내가 먼저 눈살을 찌푸렸다.     

 

 결혼 전에도 남편이 본인은 저녁을 먹지 않으니 결혼 후에도 저녁은 따로 챙기지 않아도 된다고 했었는데 저녁 시간에 남편이 집에 없으니 어차피 저녁을 차려 먹을 일이 별로 없었다.

나는 냉동실에 있던 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엄마가 보내주는 반찬으로 대충 때우거나 라면을 먹는 날도 많았다. 어쩌다가 남편이 일찍 퇴근하는 날(저녁 9시쯤)이면 배달 음식을 시켜 먹었다.


 난 음식을 해본 적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주말에 함께 밥을 먹을 때면 남편이 밥을 해주었다. 밥은 한 번 할 때 넉넉히 해서 주중에 내가 먹을 수 있도록 한 그릇씩 밀폐용기에 담아 냉동실에 넣어주었다. 남편이 해준 밥과 요리와 엄마표 반찬으로 주말은 함께 식사를 했다. 자연스럽게 청소, 빨래, 설거지는 내 담당이 되었고, 요리는 남편 담당이 되었다.      


 엄마, 언니, 동생은 요리를 참 잘한다. 그런데 유독 나만 재주가 없다. 우리 집은 외식이나 배달 음식 같은 걸 먹어 본 적이 거의 없다. 그 흔한 치킨을 시켜 먹는 일도 없었다. 늘 엄마가 요리를 해주고, 엄마가 없으면 언니나 동생이 먹을 것을 만들어 주었다.      

 “아니 어릴 때부터 엄마가 음식 만드는 걸 봤으면 대충 어느 정도 감이라도 잡히지 않아? 대충이라도 뭘 넣으면 되겠다, 어떻게 끓이면 되겠다 눈에 보이는데 그게 안 돼?”

 동생이 종종 이해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데 엄마가 음식 만드는 걸 눈여겨본 적도 없고 눈썰미도 없다. 항상 내가 뭔가 요리를 만들면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예전 학생일 때 친구 집에 놀러 가서 카레를 만들어 먹기로 한 일이 있었다. 친구들에게 맛있는 카레를 만들어 주고 싶어서 내가 하겠다고 자청했다.

 “볶음밥 만들게?”

 “아니, 카레 만들고 있는 거잖아.”

 “카레 안 먹어봤어? 누가 카레 만드는데 채소를 이렇게 죄다 다져놔?”

 “먹어는 봤는데 야채 크기를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오늘 중에 먹을 수는 있는 거야?”

 “응, 거의 다 돼가.”

 거의 다 돼가는 카레를 완성하려면 채소를 씻고 자르는데 한 시간, 가루를 넣고 끓이는데 또 한 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다들 굶주림에 지쳐 쓰러져 갈 때쯤 완성된 카레를 맛본 친구들이 이렇게 말했다

 “야, 치킨 시켜”     


 이런 내가 괜찮은 주부가 될 수 있을까? 대학 가면 예뻐지고 남자친구가 생긴다는 어른들 말이 다 거짓말이라고 했지만 나는 정말 대학 가서 예뻐지고 남자친구도 생겼었다. 그래서 결혼하면 당연히 어른이 되고, 주부가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결혼한다고 어른이 되고, 주부가 되는 건 아니었나 보다.


 과연 괜찮은 주부의 조건은 무엇일까?


결혼하고 처음 며느리로써 아버님께 상을 차려 드렸다. 이 중에 내가 만든건 하나도 없다.


이전 13화 고민하지 말고 신혼여행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