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콤말이 Mar 15. 2023

서로가 잘하는 걸 하면 됩니다

나는 정말 일 잘하는 여자다.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지만 일을 잘하는 여자이기 때문에 결혼만 하면 살림도 잘할 줄 알았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미역국을 한번 끓여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퇴근하면서 집 앞 정육점에서 한우를 한 팩 샀다. 참기름을 넣고 고기를 달달 볶다 불려 놓은 미역을 같이 볶았다. 물을 넣고 팔팔 끊이고 엄마가 직접 만들어준 국간장을 넣었다. 미역국은 오래 끓일수록 더 맛있어진다고 해서 오래오래 끓였다. 

 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미역국은 첫맛은 싱겁고, 끝맛은 짰으며 미역의 맛도, 고기의 맛도 전혀 나질 않았다.      


 남편의 퇴근을 기다렸다가 내가 끓인 첫 미역국을 먹어보라고 했다. 정말 완벽한 미역국을 완성해서 남편을 놀라게 해주고 싶었는데 망한 미역국으로 남편을 놀라게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만든 미역국을 맛본 남편은 놀라지도 않았다. 사람이 먹을 게 못 되니 재료 아깝다고 먹지 말고 그냥 버리란다.

 “TV에서 보면 다른 남자들은 와이프가 만든 음식 진짜 맛이 없어도 맛있다고 하면서 끝까지 먹어주던데?”

 “그럼 다음에 또 그렇게 만들어서 안돼.”

 “내가 끓인 미역국은 뭐가 잘못된 거야? 분명히 순서도 다 맞는데. 저런 거 나 처음 먹어봐.”

 “그 미역국의 문제는, 당신이 끓였다는 거.”


 결국 나는 그 미역국을 버리지도 못하고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주말에 오신 엄마께 한번 맛을 봐달라고 했다. 우리 엄마로 말할 것 같으면 정말 살림의 여왕이다. 엄마 자체가 입맛이 매우 까다로워서 우린 식당에서 마음대로 외식도 못 한다. 생선 가게에 가면 절대 생선을 손질해서 오는 법이 없으셨다. 이유를 물었더니 남이 손질해 주는 생선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란다. 고추장도 직접 담그고 간장도 직접 담그신다. 김장 한번 하려면 고춧가루부터 말려서 사용하시고 절인 배추를 사는 일도 절대 없다. 남이 절인 배추는 역시 마음에 안 들고 믿을 수가 없으시단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본인의 손을 거쳐야만 한다.      


 “엄마 내가 미역국을 끓였는데 맛이 좀 이상해.”

 미역국을 맛보신 엄마는 고개를 꺄우뚱하셨다. 그리고 나를 보고 말씀하셨다.

 “살림하는 여자도 아닌데 반찬은 그냥 시장에서 사 먹어. 요즘 시장 반찬 잘 나온다더라.”

  엄마의 말씀에 같이 온 동생이 더 호들갑을 떨었다. 

 “언니 진짜 대단하다. 엄마 입에서 반찬 사 먹으라는 말이 다 나오게 하고. 이건 진짜 인정! 그리고 내가 예전부터 말했지? 언니는 컵라면에 물도 붓지 말라고. 요리 못하는 애들의 특징이 뭔지 알아? 중불로 20분 끓이라면 꼭 강불로 10분 끓이더라. 제발 본인이 판단하지 말고 레시피 대로만 그대로 따라 하란 말이야.”

 “레시피대로 따라 한 건데.”

 “앞으로는 레시피도 보지 마. 그냥 사 먹어.”     


 반강제적으로 요리를 할 수 있는 자격이 박탈되었다. 남편이 5분이면 끝내는 재료 손질이 내가 하면 30분 이상 걸렸다. 나름 빨리한다고 한 건데 전혀 속도가 나지 않았고, 마음인 급한 와중에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손이 베이거나 접시가 깨지거나 뭔가는 망가졌다. 자연스럽게 우리 집의 모든 요리는 남편이 맡게 되었다.


 그 대신 청소, 빨래, 설거지는 무조건 내가 했다. 내가 하면 시간은 좀 오래 걸렸지만 남편이 하는 설거지와 청소는 내가 믿지 못했다. 방금 청소를 마쳤는데도 바닥에 머리카락이 굴러다니는 걸 보면 남편은 청소를 한 게 아니라 그냥 청소기만 들고 왔다 갔다 한 거다. 설거지를 하고 나면 제대로 닦였는지 안심이 안 되었고, 싱크대에 물기도 흥건했다. 자연스럽게 청소, 빨래, 설거지, 분리수거와 같은 집안일은 내가 도맡아서 했다.      


 친구들은 남편이 밥 해주는 나를 너무나 부러워했다. 나를 아껴서 부엌일을 안 시키는 게 아니라 도저히 부엌일 하는 걸 볼 수 없어서 안 시킨다고 해도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남편이 밥을 해주는 그 자체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지난주에 7주년 결혼기념일을 맞이했다. 이제 결혼 8년 차 주부인데 아직도 나는 한 번도 밥을 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요리를 못해서 나랑 사는 게 불편하거나 힘든 적 없었어?”

 “다른 사람들 같으면 불편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 근데 나는 그 부분이 그렇게 크지 않아서 딱히 힘든 점은 없었어. 그냥 우린 각자 서로가 잘하는 걸 하면 되는 거야.”

 “나는 결혼하면 정말 엄마처럼 완벽한 주부가 될 줄 알았다?”

 “의외네. 난 이 여자랑 결혼하면 내가 고생 좀 하겠구나 생각했는데.”

 “정말? 어째서?”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결혼하면 완벽한 주부가 될 줄 알았다고 말하면 내 주변 사람들 모두가 깜짝 놀란다.

 - 무슨 근거로?

 - 대체 왜 그렇게 생각했는데?

 - 나는 너 살림 못할 줄 알겠던데?

 그리고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한다

 “너 진짜 주부랑 하나도 안 어울려. 그냥 평생 회사 다녀.”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을 통틀어 내가 나를 가장 몰랐다. 


 그래도 결혼 전엔 날이 맑으면 ‘놀러 가고 싶다~ 어디든 떠나야 하는 날이네’ 싶었는데 살림이라는 걸 한 이후로 볕이 쨍한 날이면 ‘오늘 같은 날엔 빨래를 했어야 됐는데. 이 볕에 이불 말리면 얼마나 보송보송하게 잘 마를까.’라고 생각한다.      


 친정 아빠는 아직도 남편 밥도 안 해주는 나를 못마땅해하신다. 그래도 괜찮다. 그냥 서로가 각자 잘할 수 있는 걸 하면 된다.



취미로 그림 그리고 글씨 쓰는 동생의 작품.  아마도 나중에 이 아이를 주제로 써야 할 글이 많을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