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불장군과 주관, 그 사이
불특정 다수를 만날 수 있는 독서모임이 하고 싶었다. 나의 거취에 관련해서는 꽤 심사숙고하는 편이긴 한데 이상하게 모임을 만드는 일에 한해서는 "일단 시작"이 잘 되는 편이라고나 할까. 외부에서 명사(?)를 모시고 진행하는 독서모임에 몇 번 갔었는데 어느 순간 독서모임에서 다루는 책에 질려버리는 바람에 문득 생각하게 된 것이 발단이었다.
혼자 슥슥 읽어도 충분한 책을 왜 굳이 함께 읽을까?
고민할 법 한 문제가 아닌가. -물론 좋은 발제로 이야기할 거리가 많지만 읽기에는 어렵지 않은 책들은 제외다. 이를테면, 그 당시에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참고 삼아 읽는 책들은 그냥 읽고 참고하여 실행하면 충분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향인의 특징이 두드러지는 순간이었을 수 있다. 으레 내향인들은 외부 자극을 받고 나면 소화시키는데 시간이 필요한 법이니까. 어찌 되었든 한 번 시작된 물음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었고, '에라 모르겠다. 그럼 1년만 딱 해보지 뭐.'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처음 도서의 목록을 주욱 늘어놓았을 때 주변 모두가 기함했다. 세상에 <이기적 유전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려 드는 사람이 있겠느냐고 물었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인용문의 원전으로 되돌아가 읽는 행위를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줄은 그때 처음 알았다. 나와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조차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일 때는 인간적인 마음이 잠깐 서운해하기도 했었으니까. 사실 서운함은 둘째고 내 주변에서 3명 이상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야 시장성이 있다는 누군가의 조언을 떠올리게 되었다. 하지 말까- 라고,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이다. 처음부터 동력이 확실하지 않은 경우 주변 사람의 반응은 Go or Not을 결정하는 큰 요인이 된다. 마치, 느릿느릿 걷다 돌부리에 걸린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구어체에서 자주 쓰이지 않으나, 내가 의도적으로 즐겨 쓰는 관용구이다. 이 말은 내게 핑계 대지 않을 강단, 시작해 볼 용기, 그리고 주변 사람의 말들을 잠시 잠재우는 수단이 된다. 일단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지금부터 1년 정도 전의 일이니, 그때는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이 끝난 직후였다. 자화자찬 삼아 "사피오 섹슈얼"이 유행이라고 대문짝만 한 캡션을 달아 유통시켰던 프로그램이라 해당 프로그램에 언급된 책들이 순위를 역주행하는 일도 심심찮게 벌어졌었다. 심지어 김영하 작가가 언급한 책은 절판 상태였던 것이 재출간되기도 했었으니까. 모든 사람이 그 프로그램을 본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암암리에 영향을 받았으리라 짐작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다 비슷하였던 탓인지 그 시기쯤에는 책을 읽어준다는 프로그램이 대거 등장하기도 했었다. 아마 다 읽기는 싫어도 내용을 알고는 싶었던 듯.
"사피오 섹슈얼"에 "문해력"이 얹어진 이 분위기에서라면
누가 등 떠민다면, 읽겠다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평소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 도서 리스트라면, 호기심이 동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이런 책은 함께 읽으면 끝까지 읽는데 분명 도움이 될 텐데. 괜찮지 않을까?
무엇보다,
한 명만 와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질문에, 나 자신이 YES!라고- 망설임 없이 답해주었기에 시작할 수 있었다.
그저 내가 재미있을 것 같아서 시작하였으므로, 정말로 한 명만 와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도 진심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덕분에 3개월 단위로 모집을 하면서 모객에 스트레스받아본 적은 없었다. (음, 솔직히 말하면 한 명만 와도 나는 즐겁게 읽겠지만 원활한 토론을 위해 세 명 정도는 되었으면 한다고 바라며 공지문을 정성껏 작성하기는 한다.) - 또, 뭐.. 감사하게도 늘 예상한 인원보다 더 많은 분들이 와주시기도. :)
막상 공지를 올리고 나서는 주변의 반응과 180도 다른 '다수의 반응'에 놀랐다. 일단 시작해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일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책을 또 다른 곳에 있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한 번쯤 읽어보고 싶던' 책이라고 반겨주었다. <이기적 유전자> <랩 걸> <침묵의 봄>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식사 혁명> <오래된 미래>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총, 균, 쇠> <코스모스> 이렇게 11권을 함께 읽을 동안 과반의 구성원이 1년 내내 함께해주었다. 1년 동안 10권의 책을 통해 인류의 탄생부터 시작하여 (나름) 종말에 이르는 여정을 다루어보고자 했던 건, 여기서 처음 밝히는 비밀. (왜 10권이냐면, <식사 혁명>은 영양사이신 지인과 협업한 쉬어가는 코너였기 때문이다.)
재미있던 것은, 부러 고르고 골라 가을 무렵으로 기획한 유발 하라리 인류 3부작을 두고 대부분의 지인이 '그 책들을 3개월 동안 스트레이트로 읽으러 올 사람은 웬만해선 없을 거라는' 걱정 아닌 걱정을 던졌으나 어느 분기보다 빠르게 마감되었었다는 사실이다. 세 권을 모두 읽은 내 입장에서는 인류 3부작 전체가 하나의 흐름을 이룬다고 보았기에 포기할 수 없어 냅다 고! 를 외쳤어야 했던 분기였다. 다시 한번, 내적 갈등 앞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세웠어야 했지만.
김영하 작가도 <대화의 희열>에서 '주변인'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작가에게 등단은 평생 따라다니는 것이니 신춘문예가 아니면 안 된다고 말렸고, 이미 등단한 작가가 투고를 해서는 안된다고 말렸고, 심지어 <살인자의 기억법>을 쓰기 전에는 70대 노인의, 더구나 치매 이야기는 시장성이 없다며 말렸다고 했다. 김영하 작가는 등단했고, 투고한 그곳이 하필(?) 주류 of the 주류 출판사로 성장한 '문학동네'였고, 치매에 걸린 70대 노인이 주인공인 <살인자의 기억법>은 이제껏 출간한 소설 중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다고 한다.
독불장군이 되라는 것은 아니다. 주변인의 조언은 소중하고, 대개는 정말로 (본인의 경험에 비추어) 나를 생각해주는 마음들이라 믿는다. -당연히 그중에는 걱정으로 위장한 다른 마음도 있을 수 있음을 안다.- 그러니 어떤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의견을 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어는 봤지만 읽어보지는 못한 책 함께 읽기'를 기획하며, 나는 개인의 주관을 지키는 일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지금껏 얼마나 많은 삶의 순간을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이기지 못하고 흘려보냈는지 모른다. 솔직히 말해, 아깝다. 아니, 아까워 죽겠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라 해야겠지.
.. 깨달은 후에도 주제넘은 조언을 하는 내 입이여, 그 입 다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