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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약방서가 Jan 16. 2024

이만하면 되었지 뭐..

타국살이는 현실이다.

입국심사대로 가는 길에 온갖 걱정으로 발을 질질 끌었다. 여행이나 출장이라면 한국인에게 매우 관대한 입국 심사따위 웃으며 넘기면 그만인데 내 스터디 퍼밋으로 아이들 동반비자에 나를 도와주려 입국하시는 친정엄마의 방문비자까지 문제 없이 받아야하는 상황이라 스트레스가 말도 못했다. 그.런.데. 스윗한 반전매력의 캐네디언은 서류만 보고도 이렇게 말했다.


"오우- 유오브티! (University of Toronto) 너는 공부하고 그동안 니네 엄마가 애들 봐준다는거지? 애 둘?"


입을 벙긋할 새도 없었다. 이런 한국인이 얼마나 많으면, 싶어 실소가 나왔다. 긴장이 풀리며 뒷목께에 피가 도는 것이 느껴졌다. 캐리어 8개를 이고지고 나오니 이제부터 진짜다.


그닥 내세울 것 없는 내게도 자랑할 건덕지가 하나 있는데, 그건 20세 이후부터 경제활동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내 신용에 문제가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남의 땅에서 느끼는 첫 설움은 그것이었다.


신용도 제로. 


핸드폰 요금도 신용 제로에 거주 불안정으로 30%쯤 더 비싸다. 은행 계좌 하나 여는데도 증빙 서류가 한움큼이라 한시간 반을 훌쩍 넘긴다. 압권은 집을 구하는 순간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9군데를 돌아 겨우 정한 집의 집주인은 거주도, 신용도 불안정한 세입자에게 렌트를 주기 싫어했다. 캐나다는 일단 계약서에 사인 되는 순간부터 세입자가 갑이라 심지어 생활이 곤란하여 월세를 내지 못해도 강제로 퇴거시킬 수 없다고 들었다. (아닐 수도 있음- 설마 집세 안내면 내쫓지 않을까.) 그래서 보증금으로 1년치 월세를 다 준다고 해도 요구하는 서류가 끝이 없다. 한국 통장 잔고에 우리 신랑의 사업자 증명과 수익까지 다 오픈해내라고 난리를 쳐서 나도 서울에 집 있다는 말이 턱끝까지 치받쳤다. 집값만 볼래? 우리집이 더 비싸- 20년 된 콘도에 왜이리 유세야 버럭! 할 수야 없었지만. 그러나 막상 집에 입주하고 보니 집주인은 공부하며 애 보기 힘들지 않느냐며 아이들 도시락통, 간식에 청소기까지 사다 안기는 여장부였다. 집 나오는 날까지 월세 한푼도 안올려 얼마나 고맙든지. 외국인은 돈 떼먹고 나간다는 말에 걱정되어 그랬겠지, 지금은 그렇게 이해한다.


유학원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파워 J는 처음부터 그냥 시작하지 않았다. 분명, 내가 원하는 부분들-아이동반 교육이 가능한가, 졸업/수료 후 PGWP (일정기간 교육 이수 시 취업비자 신청) 가능한가-에 대해 사전 컨설팅을 했고, 당연히 메일로 주고 받아 서면으로 남겨놓았는데. 막상 교육청에 가니 내 스터디 퍼밋은 기간이 짧아 무상교육 대상이 안된다며 선을 그었다. 궁지에 몰리면 영어가 마구 나온다는 사실을 그 때 알았다. 내가 등록한 학교에서 과정에 대한 설명을 받아 추가로 제출하겠다고 사정사정 하여 다음 날 책임자를 만나기로 하고 헤어져 오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유학원도 정착서비스 지원업체도 팔짱만 끼고 어떡하나 보고만 있으면서, 어학 과정을 추가로 등록하라는 (최소 700만원) 이야기들만 해댔다. - 이 외 더 내뱉고 싶은 말들은 한숨과 함께 행간에 숨긴다. (...) 애들은 한국 학교에 유학서류도 다 냈는데 돌아가야되면 어떡하나 싶어 최악의 상황들만 머릿속에 챗바퀴를 돌았다. 집 앞 공원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 앞에서 내색도 못하고, 나만 믿고 오신 친정엄마를 불안하게 할 수도 없으니 태연한 척 표정은 숨겼으나 속에선 위가 다 뒤틀렸다. 다행히 이 해프닝은 내가 등록한 학교에서도 캐네디언 답지 않은 속도로 스피디하게 서류를 보충해줬고, 교육청 담당자도 흔쾌히 받아주어 하루만에 해결되었다.


뭐랄까. 신실하지 않은 나도 신의 섭리를 느끼는 순간이었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적어도 이 낯선 나라가 나를 내몰지는 않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타국에 정착하며 크게 배운 것이라면, "그래, 이만하면 되었지 뭐" 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사방이 막힌 집 있고, 아이들이 집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학교에서 환영받았다. 정말, 이만하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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