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번갯불에 양손 콩볶기 시전
사람을 16가지로 갈라치는 MBTI에 따르면 나는 '인간미가 없으며' '돌직구로 마상을 입히는' ISTJ로, 파워 대문자 J형이다. 인생의 행로를 바꾸는 거대한 프로젝트 앞에서 엑셀부터 켜는 것이 타당한 순서이다. 그런데 나무를 공부하기에 앞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있었으니, 캐다는 10개의 주로 이루어진 연방국가라 일단 주 (province)를 정해야 다른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실상 주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해서, 주를 넘나들어 이사하면 거의 나라를 이동하는 것과 맞먹는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특히 나같이 면허를 취득해야 밥벌이가 가능한 직종에서 주 정부 정책은 절대적이다. 게다가 코로나19 시국으로 국경이 막힌 상황. 영주권자/시민권자를 제외하고는 적법한 취업비자, 학생비자, 그 외 다른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야만 입국이 가능했다. 충분한 정보가 없더라도 어디로든 결정은 해야 했기에 자꾸 속이 타들어갔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간다는 브리티시컬럼비아주 (BC주)와 온타리오주를 놓고 열심히 비교했다. 사실 약사 면허를 취득하는 과정만 보면 지금 살고 있는 온주가 아니라 BC주 조건이 모든 면에서 나았다. 나의 문제는 단 하나, BC주가 요구하는 브릿징 과정 (*캐나다/미국 외 다른 국가 약사 면허 소지 시, 캐나다에서 약사로 일하기 전 의무적으로 수료해야하는 단기 과정)은 1년 미만이라 아이 동반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홀로 날아가 시험치고 과정 수료하고 인턴까지 해버리면 자부 흉내도 그럴듯 하고 더없이 좋으련만 그렇게 1년이 미뤄지면 첫아이는 (놀랍게도 북미가 반학기 빨라) 4학년이나 되어야 단풍국 땅을 밟을 터였다. 잘하는 아이들은 바다에 내던져도 절로 헤엄치는 법을 안다는데 내 눈에는 한없이 아기같고 뭘 해도 어설픈 첫째라 고학년이 되기 전에 움직이겠다는 욕심이 앞섰다. 오로지 이것 하나 때문에 온타리오주로 결정했고, 두고두고 후회하는 중이라는 후일담.
주를 결정하였으니 이제 코스 시작일로부터 역산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일만 남았다. 코로나19를 빼놓고는 할 이야기가 없는 2020-2021년 이 시기에는 안 그래도 느렸던 캐나다 정부의 일처리가 말도 못 하게 더 느려져 스터디 퍼밋 하나 받는데 4개월, 심하면 6개월도 걸린다고 했다. 그나마 한국 사람은 쉽게 나오는 편이라 3-4개월 이라던가. 코스 시작일까지 빠듯하게 4개월 남은 달력을 보니 한숨만 나왔다. 그래도 9월 초, 안되면 10월 전에는 들어가야 아이들이 학기 초에 맞춰 시작할 수 있으니 오랜만에 한 번 달려보자.
출국 4개월 전, 영어성적 받기
십수 년 전 취업할 때 토익 한 번 보고 다시 그 비슷한 것도 볼 일이 없었는데 당장 IELTS라는 영국 출신 영어 능력 시험 7.0 이상을 받아야 한다고 해서 당황했다. 사람마다 다른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공인 영어시험공부는 정말이지 못하겠다. 뭘 해야 점수가 더 잘 나오는지 솔직히 모르겠기도 하고. 그나마 외국계 제약사라는 업무 특성상 외국인이 두렵지 않고 영어를 자주 접하니, 그냥 냅다 한 번 쳐보자는 마음이 앞섰다. 리스닝 첫 문제부터 주관식이 있어서 눈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토익은 문제만 많았지 다 객관식이었던 기억인데 아닌가?! 뭐가 뭔지 모르고 쳤으나 턱걸이지만 원하는 점수 넘겼으니 패스.
출국 3.5개월 전, 스터디 퍼밋 신청
동반가족이 셋이나 되어 제출 서류가 엄청났다. 신체검사, 바이오매트릭, 은행 서류에 가족 관련 각종 증빙까지 단시간 안에 준비해야 되는 줄도 미처 몰랐다. 도대체 뭘 알고 이 엄청난 일을 벌이기로 한 것인지 자존감에 금이 갈 지경이었다. 내가 회사에 근무 중이라 평일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점도 한몫했다. 지금에야 코로나가 때문이기도 덕분이기도 하다고 우스갯소리를 하는데, 코로나 '덕분에'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랄지. (*코로나19 기간 중 정신적/육체적/금전적으로 고통을 겪으신 분들의 어려움을 가벼이 여기려는 의도는 없으며, 개인적인 상황에 대한 표현이니 너른 마음으로 양해부탁드립니다.)
출국 2개월 전, 미친 중고거래와 함께 짐 싸기
우리 집에는 책이 심하게 많았다. 나도 책벌레고 첫째 도토리도 꽤나 책벌레 2세라 40평대 아파트 거실에 전면책장만 두 개에 방마다 책꽂이가 서너 개 있었다. 안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했다. 과유불급이 이런데 쓰는 말은 아닐 텐데, 아무튼 둘째까지는 책벌레 이력을 전해주지 못하였으니 책이 많아도 읽을 놈만 읽는다 싶어 과감히 정리했다. - 그러고도 친정집에 남겨둔 책들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인간이 죽으면 몸뚱이도 남지 않을 것인데 뭔 물건이 그리 많았나. 버리고, 팔고, 주고, 비운다고 비웠는데도 여전히 '무엇인가'가 많았다. 지금 이방인으로 잠깐 엉덩이 붙이고 사는 것처럼 살다 가자 하는데도 늘어나는 짐을 어찌할 수 없는 것을 보면 인간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딱 맞다.
출국 1개월 전, 사직서 제출
다시는 돌아가지 않으리라 홀가분히 마음먹고 사직서를 냈다. 십수 년 같은 일을 했고, 그 일을 하는 나를 꽤 좋아했는데 아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렇지만 앞에 둔 일들이 거대하다 보니 아쉬움은 대개 상쇄되고 덜컥 무서워졌다. 사직서를 내는 비법이란, 더 큰 사고를 치는 것이 아닐까? (음?) 이렇게 한국에서의 밥줄은 뚝 끊었는데.
"애 둘 데리고, 나 잘할 수 있겠지?"
아이들 방문비자만 받으면 여행허가는 없어도 되는 줄 알고 (캐나다-한국은 무비자 입국이지만, 여행허가인 'ETA'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서류만 단디 챙겼다가 공항 가는 길에 혼비백산한 건 이제와 밝히는 비밀. 그나마 3시간 안쪽으로 모두 발급되어 가슴을 쓸어내렸다. 대한민국 만세! 그러고 보면 파워 J라며 잘난 체할 처지가 못된다. 미국 출장길에도 출국 당일 공항버스에서 ESTA를 신청한 이력이 있다. <여행의 이유>에서 김영하 작가님이 중국 입국에는 비자가 필요한 것을 모르고 중국에 갔다가 그 길로 추방(?) 당했다고 썼던 글이 생각나 위로가 되었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