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켄 리우
꽤나 잡식성 다독가라서 (엣헴) SF 소설도 좋아하며 읽는 편이다. 독서모임 책으로 선정하기까지는 적잖이 갈등하였으나. 추천받아 읽고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던 단편선이라 모임까지 기대가 컸다. 우리는 책을 선정한 사람이 발제까지 이어가는 형태로 모임을 운영 중인데, 장표를 만들고 프레젠테이션하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부러 일을 벌여가며 네 명 모임에 ppt도 꾸리고 질문도 그럴듯하게 정리해서 올린다.
모임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작가 켄 리우는 중국에서 태어나 11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고 한다. 대표작인 <종이호랑이>가 생계로 바쁜, 그러나 영어는 서툰 이민 1세대 엄마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던 어린 시절을 그린 내용이다. 또 다른 '이민 1세대 엄마' 역할을 하고 있는 나와, 비슷한 나이에 캐나다에 온 큰아이를 대입하니 더 마음이 갔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겠다. 여하튼 배경이 그러하다 보니 동양적인 소재를 차용하여 쓴 글도 있다. 음양오행이나 오장육부의 상호작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읽으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SF 소설이면서 어딘가 현실에서 있을 것 같은 경계를 미묘하게 타고 넘는 것도 작가의 강점이다. 이 책의 첫 편인 <호> 는 호모 데우스에서 지적한 바로 그 부분, 인간의 신체를 조작하여 노화를 멈추는 것이 가능해지는 기술 발전을 다룬다. 빈부격차가 상대적인 빈곤감에 머무르지 않고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여겼던 시간의 흐름까지 다르게 조정할 수 있다는 설정이 무게감 있게 다가온다. 우리는 물론 현실의 인류답게 무한의 생이 주는 권태를 원하지 않는다는 답을 주로 나누었다. 당연히 노화가 진행되며 생명이 연장되는 것 (aka 유병장수)은 형벌이라고 답했다.
작가가 가장 공들여 아낀 작품이라는 '싱귤래리티 3부작'도 인상 깊다. 궁금하여 찾아보니 싱귤래리티 (singularity)는 '기술 발전의 속도가 너무 빠르고 거대해서 인류의 삶이 완전히 변화되는 시점'을 의미한다고. 전 세계를 여행하며 엽서를 보내오던 동생 리즈가 불현듯 자기 뇌를 조각조각 스캔해서 데이터화하는 작업에 지원한다고 했을 때 남은 가족은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이것은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것일까, 아니면 영생을 갈구하는 것일까? 나는 적어도 신체가 가진 감각이 유지될 때 살아있다고 느낄 것 같다. 이를테면 운동한 후 뻐근한 몸을 따뜻한 물속에 이완시켰을 때 느껴지는 차이를 감각으로 오롯이 경험할 때 살아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나의 정신이 온전히 유지될 때' 살아있다고 느낀다면 혼선이 올 법 한 지점. 각자가 가진 가치관과 태도를 교묘하게 가로지르며 일어날 법한 소재를 흥미롭게 전개하니 한 번 펼치면 끝까지 읽게 될 것이다. :)
우리는 SF를 왜 읽을까? (- 물론 재미있으니까.)
어떤 분들은 SF가 과학기술 발전을 견인한다고 혹은 예견한다고 표현한다. 실제로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물건들 중 이전에 SF 장르물에 등장했던 것들이 꽤 있다. (예, 스마트폰) 켄 리우는 조금 다른 시선을 지녔다. 그는 SF에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어휘'가 등장하는데 그것들이 앞으로 다가올 시대를 심정적으로 대비하게끔 해준다고 답했다. <1984>/조지 오웰에 등장하는 신언어(newspeak)처럼. 일견 수긍할 만하다. 이전부터 꾸준히 등장한 개념들이 우리를 이만큼 적응하게 해 준 것일지도? 그렇다고 내 생전에 뇌를 스캔해서 내 정신을 차원 그리드에 가두는 기술 따위를 보고 싶지는 않지만.
세계 곳곳에서 삶이 영원히 이어졌지만, 사람들은 전보다 더 행복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함께 나이 들지 않았다. 함께 성숙하지도 않았다. 아내와 남편은 결혼식 때 한 선서를 지키지 않았고, 이제 그들을 갈라놓는 것은 죽음이 아니었다. 권태였다. <호>
나는 리즈를 제대로 추모할 수조차 없다. 리즈가 멀리에, 다른 대륙에 위치한 기계의 데이터 그리드 간극 속에 고정되어 있는 채로는, 그럴 수 없다. 보나 마나 로고리즘스는 점점 더 정교해지는 자기네 신경망 속에서 리즈를 되살리려고 몰래 시도했을 테고, 보나 마나 리즈는 몸도 정신도 없이 영겁의 고독을 곱씹는 고통을 몇 번이고 겪었을 것이다. 그 복사본들 가운데 어떤 것이 내 동생일까? 나는 어떤 복사본을 위해 추모해야 할까? <카르타고의 장미/싱귤래리티 1>
나는 우리 아래로 지나가는 세상을 내려다본다. 전에는 겨우 3차원밖에 안 되는 세계는 납작하고 지루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이곳의 색채는 내가 지금껏 보았던 어떤 색보다 더 생생하고,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아름다움이 곳곳에 무작위로 깃들어 있다. 하지만 일단 내 눈으로 이 세계를 봤으니까 나중에 아빠랑 같이 수학적으로 재창조해 볼 수 있을 테고, 그렇게 재창조된 세계는 전혀 다르지 않은 느낌이 들 것이다.
나는 이 생각을 엄마와 공유한다.
“하지만 스스로는 그게 진짜가 아닌 걸 알잖아.” 엄마가 생각한다.
“바로 그것 때문에 모든 게 완전히 달라지는 거야.”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