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을 택하는 씁쓸한 이유 중에는

<이 지랄 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조승리

by 약방서가

사진설명: 어린이 대환영! 아이들보다 더 들떠 할로윈 캔디를 준비하는 이웃집 어르신들. 할로윈 장식만 확인하면 초인종 막 누르고 캔디를 받는다. :)


이런 글을 쓸 자격이 내게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문제를 떠올리기에 앞서 곰곰 생각해 본다. 한국에서 나는 어떠했더라. 여전히 내 마음에 가시처럼 박힌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그때 나는 의료봉사 단체에 속해 주말 약국으로 봉사를 나가던 길이었다. 서울사람도 길을 잃기 십상인 동대문 운동장 역에서 누가 나를 가만 잡았다. 지적장애우 형제님이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에스컬레이터가 몇 개씩 되고 어디로 가야 어떤 방향인지 모르니 얼굴이 울상이다. 5호선 저 끝으로 가시는 것 같았는데 길을 모르시겠단다. 나도 지금 가지 않으면 지각인데, 미리 약을 정리해두지 않으면 허둥지둥 실수가 생길 텐데. 눈을 딱 감고 말했다. "이쪽이 아니라요, 저기 왼쪽 끝 에스컬레이터로 가시면 돼요." 그러고 발길을 재촉했다. 끝끝내 나를 원망스레 쳐다보던 그 눈망울이 잊히지 않는다. 봉사를 하러 간다면서 승강장 끝 에스컬레이터로 데려다주는 그 수고가 뭐 그리 크다고 내 길만 재촉했을까.


한국 사회는 점점 더 바빠졌고, 바쁜 만큼 타인에게 인색해졌다. 저상버스에서 휠체어 승강장이 내려오는 몇 분이 아쉽고, 앞에 시각장애우가 지팡이를 정교하게 짚어가며 좁은 길을 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만 심박수가 빨라져 기어이 그를 앞지르고야 마는 것이다. 특수학교가 들어선다고 하면 민원이 엄청난데 또 같은 반에 느린 아이가 있으면 내 아이까지 피해를 본다고 화를 내는 사람도 보았다. (온라인상에서 익명으로 쏟아내는 감정을 그대로 믿어 탓하고 싶지는 않지만.) 캐나다에 와서 "왜" 이민을 오게 되었냐고 물어봤을 때 나의 간장종지만 한 인간관계의 꽤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케이스가 바로 이 '느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이다.


이 앞에 어떤 말을 붙여야 하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그냥 아이를 키우는 그 자체가 하루하루 퀘스트를 클리어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고단한 일인데, 느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은 오죽하랴. 학령기가 되면 그 어려움은 극에 달해, 행여나 학교에서 전화라도 올까 봐 노심초사하셨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환영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이가 가장 먼저 몸으로 느끼는 것이 안쓰럽다고도.


캐나다라고 더 뾰족한 수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여기는 휠체어를 타고도, 어딘가 조금 불편해도 길거리에, 마트에, 학교에 더 자주 나온다. 사실 버스는 안 그래도 느리고 (게다가 잘 안 오고, 거의 없고) 토론토 지하철인 TTC는 노선도 몇 개 안 되는데 같은 날 아침에만 두 번 세 번 멈춘다. (이유도 모름) 워낙에 느린 나라이니 누가 조금 늦게 움직인다고 하여 내 인생에 큰 침해가 되지는 않는다는 인식이 자연스레 생긴다. 학교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해 주는지까지는 잘 모르지만 여하튼 다소 늦게 따라온다고 하여 특별히 배재하지는 않는다. 대신 교사가 (담임교사가) 맡는 행정업무가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수업시간을 충분히 활용하여 소그룹으로 혹은 일대일로 일과 중에 맞춤 수업이 가능한 것 같다. -진도가 빠르면 빠른 대로, 느리면 느린 대로. - 무엇보다 본격적으로 과정이 어려워지고, 본인이 시간관리를 해내야 하는 시점이 오기 전, 공립학교 시절에는 이런저런 아이들과 섞여 놀고 밖에서 충분히 뛰어노는 것이 미덕이라 여기는 분위기가 한몫하는 것 같다.


느림의 미학이랄까. 느려서 답답한 점이 많은데 (특히 나처럼 행정업무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민원인 = 환장각) 또 느려서 다 같이 다소간 배려하고 가는 부분도 큰 것 같다. 적어도 아이를 키우면서 이 아이를 출산한 것이 나의 잘못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곱씹고 아이가 환영받지 못하고 자라날 사회에 대해 아주 일찍부터 고민하면서 예쁜 시기를 다 지나 보내는 것만 아니어도 좋을 텐데.

우연히 읽게 된 <이 지랄 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는 후천적 시각장애우 (희귀 질환으로 고등학생 무렵 시각 상실)의 산문이다. 나의 마음을 가장 먹먹하게 한 글은 같은 장애가 있는 친구들을 모아 해외여행을 떠난 경험을 풀어낸 것이다. 이국의 풍광도 없고 막상 할 수 있는 액티비티도 많지 않을 것이 분명한데 왜 굳이 길을 나섰을까? 여전히 그를 다 이해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눈이야 보이거나 말거나, 행복하고 즐겁고 싶은 그 마음만큼은 우리와 꼭 같지 않았을까 하고 넘겨짚는다. 행복한 인생을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을 누가 틀렸다고 할 것인지? 한 템포 마음의 속도를 늦추고 나도 타인도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 사회가 되기를. 어떤 부모가 아이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열네 시간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영어와 씨름하며 사는 삶을 택하지 않아도 되기를. - 아 물론, 나부터 잘해야지.


내가 물었다.

“장애아를 낳으면 죄인이 돼야 하나요? 그게 사회적으로 지탄받아야 할 사실인가요? 그럼 저는요, 저는 죄의 근원인가요?”

내 어머니는 시력을 잃어가는 나를 창피해했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원망했다. 부모가 나를 창피해한다는 사실에 나는 주눅 들었고 무기력해졌고 스스로를 부끄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극복’이라는 말처럼 오만한 단어가 있을까? 장애를 극복하고, 가난을 극복하고, 불합리한 사회를 극복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영원히 내 장애를 극복하지 못할 거라고. 나는 단지 자주 내 장애를 잊고 산다. 잊어야지만 살 수가 있다. 그래서 누구보다 빨리 체념한다. 그것이 나를 지키는 방법이다.


모든 이들은 행복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비록 제한적인 감각이라 해도 나는 들을 수 있고 냄새 맡을 수 있으며 낯선 바람을 느낄 수도 있다. 그것으로 행복하다면 여행의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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