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캐나다 문화 - "Celebration of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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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부와 고모가 불과 나흘 차이로 세상을 떠나셨다. 한국에 있었다면 집안은 곡소리와 상복으로 가득 차, 삼일장을 두 번 치르느라 숨 돌릴 겨를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동료는 담담히 말했다.
“우리 장례식은 안 하기로 했어. 대신 가족끼리 모여 추억하는 시간을 가지려 해.”
그 한마디가 가슴속에 파문처럼 번졌다. 장례식을 ‘하지 않는다’는 선택. 내가 당연히 의무라 여겼던 의식이 여기서는 하나의 선택지에 불과하다니.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소식이 전해졌다. 환절기 탓인가, 다른 동료의 할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셨다는 것이다. 그녀의 할머니이자 우리 약국의 환자이셨기에 급속도로 병환이 진행된 과정을 모두 알던 터였다. 고인은 올해 87세로 '알지만 알지 못했던 이별'인 셈이다. 이번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조의를 표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도 funeral 대신 celebration of life를 가진다고 했다. -이곳에서라면 장례식도 마찬가지이지만 더욱이 celebration of life에는 가족과 친구만 모인다.
고인의 유골은 화장을 마친 뒤 도기 그릇에 담겨, 평생 머물던 집 주방 한편에 놓여 있다 했다. 병원 침대보다 주방이 더 그분다운 자리라며 가족들은 차를 끓이고 식사를 나누며 유골함 곁에서 담소를 이어간다 했다. 추수감사절 즈음엔 멀리 사는 자녀들이 모여 유골함에 늦은 인사를 올린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원하는 이는 유분을 조금 나누어 간직할 수도 있다고. 고인의 마지막에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한 그녀는 목걸이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추운 겨울은 그렇게 지나 보내고 봄이 오는 4월쯤에나 할아버지 곁에 나란히 묻히실 것이라고 들었다.
처음엔 낯설었다. 죽음을 두고 ‘삶을 축하한다’니. 그러나 차츰 깨닫게 되었다. 한국의 장례가 ‘떠나보냄’을 위한 의식이라면, 이곳의 celebration of life는 ‘남겨진 삶을 기억하는’ 의식이라는 것을.
곡소리로 가득한 빈소 대신, 여기서는 추억이 목소리를 낸다. 고인의 생애가 차분히 펼쳐지고, 잊혔던 조각들이 모여 이야기를 이룬다. 당장만 해도 그렇다. 평생 간호사로 헌신했던 할머니가 임종 직전에 묘지 관리 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생전에 묻힐 자리를 또렷이 정해 두었다는 이야기, 언니가 재봉틀을 서둘러 가져가 바느질을 시작했다며 주먹을 쥐고 분해하는 그녀의 말투에 슬픔보다는 추억이 묻어난다. 눈물이 아닌 기억이, 상복 대신 웃음이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이다.
곰곰 떠올려본다. 나는 어땠더라. 준비 없이 아빠 장례를 치르던 때, 날짜에 따라 정해진 절차는 급했고 부고를 돌린 후에는 인사하느라 바빴다. 외할머니의 임종에도 그랬다. 미국에 사시는 외삼촌은 상주 자리를 지키기 위해 가장 빠른 비행기를 잡아(?) 타고 헐레벌떡 달려와 넥타이도 매지 못한 채 입관 절차에 들어가셨다. 그 외삼촌이 오시기 전까지 하나 남은 딸인 우리 엄마 홀로 빈소에 남아 달리 누구를 붙잡고 추억한다는 말도 하지 못했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네 장례도 세월 따라 달라져 왔다. 삼년상은 머나먼 옛이야기일뿐이고, 삼일장이 표준이 되었다. 떠난 이를 정성껏 보내야 한다는 믿음은 이어졌으나, 형식은 점점 간소해졌다. 때로는 슬픔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도 하고, 꽤 자주 절차를 따르느라 추모를 잊기도 한다. 이제는 더 넓게 바라볼 때가 아닌가 싶다. 길어진 평균 수명만큼 죽음을 마주하는 방식도 다채로워져야 하지 않을까. 이별을 단지 무겁고 슬픈 통과의례로만 두지 않고, 고인의 삶을 함께 웃으며 기리는 축제의 자리로 바꾸는 것. 그것이야말로 남은 이들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하는 길일지 모른다. 죽음이 떠남의 끝이 아니라, 삶을 기억하는 또 다른 시작일 수 있음을, 다른 문화를 통해 조금씩 배운다.
오해금지! 가족의 성향과 상황에 따라 장례식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만난 친구는 백혈병으로 아이를 하늘나라에 보냈는데, 친구의 종교에 따라 가톨릭 장례미사를 치렀다. (8세 아이의 죽음 앞에 'celebration of life'따위를 붙일 수는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요는 선택이라는 것!
조의는 카드와 꽃으로 표할 수 있다. 우리는 약국에서 과일바구니를 선물했다. (돈을 주는 문화는 없으니 주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