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마무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의료 조력 존엄사'를 가까이에서 본다면.

by 약방서가

출근하자마자 부고를 들었다.


"우리 고모부 의료 조력 존엄사를 선택했다고 내가 말했던가? 그게 엊그제였어.

그런데 오늘 우리 고모도 돌아가셨대." (*호칭이라고는 uncle과 aunt 뿐이라 매우 부정확)


뜻하지 않은 비보에 동료이자 친구이자 이모 같은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막상 당사자는 매우 덤덤했지만. 고모부와 고모 모두 올해 95세로 그동안 충분히 즐겁고 행복하게 사셨다는 것이다. 게다가 고모부는 삶의 마지막까지 스스로 선택하셨으니 이보다 좋겠냐고 했다.


여기에는 약간의 로맨스도 섞여 있다.


고모부는 엄밀히 말하면 '새'고모부셨다. 고모의 첫 남편은 이십여 년 전 작고하셨다고 한다. 남편이 돌아가시고 나서 고등학교 때 종종 데이트하던 어린 시절 첫사랑을 다시 만나 고인이 83세 되시는 해에 결혼을 하셨다고 했다. ('date out' 하던 상대였다고 해야 좀 더 귀여운 느낌인데!) 83세에 만나셔서 나랑 지금 우리 남편이 결혼한 기간만큼 함께하셨다니 놀라울 따름. 얼마나 애틋하고 행복하셨을까!


한국에서는 아직 멀고 먼 일인 것 같은 '의료 조력 존엄사'가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는 일부 합법이다. 매우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의료법 하에 허용된다는 이야기. 줄여서 MAID (Medical Assistance In Dying)이라고 하는데, 각 주의 의료 지원을 받는 거주자여야 하고 (관광객 x), 의학적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질병상태의 18세 이상 성인으로서 각자의 건강에 대해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는 정도의 지각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신청할 수 있다. (Informed consent는 '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동의'라는 뜻이다.) 이렇게 신청된 건에 대해 2인의 독립적인 의사가 의료적으로 진단하여 적부를 판단한다. 스위스의 디그니타스 병원에서는 환자가 약을 투여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니면 환자 가족) 온타리오주에서는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내 동료의 고모부가 어떤 상황에서 MAID를 선택하셨는지까지는 알지 못했지만 설명을 들으면서 그때 그 장면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가까운 가족들이 모두 모여서 고인의 딸이 준비해 온 쿠키를 나눠먹으며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옛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병실에는 각자의 원 배우자와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모두 함께했다고 들었다. 몹시 캐나다스럽다. (웃픈 이야기는, COPD로 인해 산소호흡기를 끼고 계시는 고모께서 이 쿠키를 먹다 사레에 들리신 뒤로 일어나지 못하셨다는. 당연히 상실증후군과 노환이 큰 원인인 줄 안다고 말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며 웃었다.)


아주 제한적인 환경에서 발생하는 일이지만 어쨌든 약물을 조제하는 일이 약사의 역할에 포함되기 때문에 캐나다에서 약사시험을 준비할 때 관련 케이스를 접한 적이 있다. 당시 본 케이스 스터디는 종교적인 신념으로 해당 약의 조제를 거부하는 종료에게 어떻게 조언하면 좋을지였는데(Peer level coaching은 매우 흔하다.) 시험의 정답은 물론, 나의 종교적 신념과는 별개로 약사의 의무를 다하여 조제 거부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도 나는 확실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필요한 사람이 있으리란 것을 알면서도 그 경계선을 어디에 그어야 할지 알지 못하는 탓이다. 일명 '미끄러운 비탈길 (slippery slope)' 이론처럼 점점 더, 조금씩 더 범위가 넓어지며 남용될지도 모르는 현실은 어떡하지,라고 염려하고 있는 쪽이다.


"You don't get it, Clark. I don't want to go there in this-this thing." He gestured at the chair, his voice dropping. "I want to be in Paris as me, the old me. I want to sit in a chair, leaning back, my favorite clothes on, with pretty French girls who pass by giving me the eye just as they would any other man sitting there."..."The day we go and I'm in this bloody contraption, all those memories, those sensations, will be wiped out, erased by the struggle to get behind the table..." <Me Before You>


한편으로는 소설 <Me Before You>처럼 누구도 시간을 되돌려 줄 수 없고, 어떤 의학적 처치도 그를 움직이게 할 수 없을 때 누군가는 적절한 시점에서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나 싶을 때도 있다.


지금도 이미 '긴 병에 효자 없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논의를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 갈 길이 멀 것 같기는 함. (-_-) -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첨예한 대립이 예상되는 논제라 감히 던져보진 못해도 가끔 궁금하다.


우리나라와 가장 다르다고 느껴지는 '장례' 문화는 다음 글에.


참고: https://www.canada.ca/en/health-canada/services/health-services-benefits/medical-assistance-dy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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