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문해력

배려하는 커뮤니케이션 절실..[D-29]

by 약방서가

정부기관을 상대하는 대관업무를 하다 보면, 같은 말을 다른 의미로 쓸 때가 종종 있다. 예컨대, 우리는 "타임라인 알려주세요-"라는 말을 두 가지 의미로 쓴다. 하나는, 프로젝트 매니저로서 여러 상황을 고려하여 전략적으로 짜 놓은 허가 일정을 말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규정에 근거한 보고 기한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두 가지를 말해야 하는 상황이 대개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적어도 이 일을 조금 해왔다면 "타임라인"을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헷갈리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 그렇다. 오랜 시간 동질 한 집단에 속한 탓에 앞뒤를 찬찬히 설명해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동등한 지위에서 일해야 하는 상대방에게 같은 정도의 경험이 없을 수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 임상시험 중 안전성 정보를 보고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이런 경우에는 보고 기한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나는 당연히, "타임라인 같이 알려주셔야 할 것 같아요"라고 이야기했다. 그녀가 정말로 '제출하고 싶은' 날짜를 써서 보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우리가 허가 등록 일을 한다고 말은 하지만 실상 독자적으로 생산하여 제출할 수 있는 문서가 거의 없다 보니 이런 경우 백이면 백, 부메랑이 날아오기 일쑤다. 당연히 본사는 황당+짜증+분노를 숨기지 않았고, 훈계조에 가까운 메일을 한 바닥 써서 보냈다. 황급히 수습은 하였으나 이런 인상은 오래 남을 것이다. 내가 잘못 보낸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얼굴이 홧홧 달아오르는지. 매끄러운 커뮤니케이션이 무엇보다 중요한 직무에 이런 일은 커다란 스트레스다.

애덤 그랜트의 책 <오리지널스>의 말미에 보면, 한국식 의사소통의 특징이 나온다. 한국어는 특이하게 청자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시킨다는 것이다. 서구의 언어가 화자의 분명한 표현을 강조하는 것과는 반대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청자가 사랑받는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사실 찰떡같이 알아듣지 못하는 이유는 개떡같이 말했기 때문이 아닌가. 누가 알아듣지 못하면 멍청하게 잘못 알아들었다고 화를 낼 일이 아니라 나의 설명이 불친절하지 않았는지 돌아보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의사소통은 폭력적이기 쉽다. 무의식 중에 "타임라인"이라는 말을 그냥 썼던 것처럼 내 머릿속에만 정리를 잘해두고는 차근차근 표현해주지를 못했다. 듣는 이는 나의 논리와 가정을 채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해하곤 했다. 나는 속으로 그것도 한 번에 못 알아듣는다고 성질을 냈던 적도 많았다. 뒤늦은 자기반성이다.


글을 쓰기 시작할 때마다 읽고 또 읽게 되는 은유 작가님의 <쓰기의 말들>에 마침 이런 글이 있기에 옮겨 적는다.


상대방이 내 말을 쉽게 이해할 것이라고 착각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글쓰기는 시작되어야 한다. -김대중

세계는 복수다. 우리는 같은 언어를 쓰고 있지만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상대방의 '말귀'를 알아듣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다 알고 있으니까 남도 알겠지 하는 생각은 금물이고 착각이다. 전 국민이 독자가 될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배경 지식을 넣으면 더 많은 독자를 아우를 수 있다. 내가 학인들에게 자주 하는 말은 이거다. "나만 아는 업계 용어를 쓰지 말자." 언론계에 통용되는 원칙도 있다. '독자는 아무것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