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세이 쓰는 부지런함에 대한 존경 [D-30]
"이직한 이후 매일 오늘의 운세를 보게 돼요."
동료가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회사라 매일 오늘 나에게 무슨 일이 또 떨어질까 두렵다는 것이다.
사실 줄곧 외국계 회사에만 다녔기 때문에 비교하기는 어려우나, 겉모습을 대충 보았을 때 외국계 회사의 가장 큰 특징은 조직의 층위가 얇다는 것이다. 운영진에게 프로젝트 담당자인 내가 그대로 드러난다. 사내 누구라도 A일이 특정 직원 담당인지 바로 알 수 있다. 잘해도 바로 티가 나지만, 구멍이 생기면 더 확대되어 보이는 구조다. 한국 내 법인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회사라서 일까. 이전에는 스텝 바이 스텝 해결되던 일에서조차 매일 새로운 질문이 쏟아졌다. 심지어 이 얇은 층위의 조직에서 누군가 맡아 들기 애매한 일들까지 갑자기 나에게 떨어지는 일도 허다했다. 급 수습을 해야 하는 그런 일. 목이 졸리는 것 같은 스트레스도 종종 느낀다.
휴직하기 전 일정 기간 동안은 출근하자마자 준비 없이 '어떤' 메일과 마주하게 될까 두려웠다. 두려움이 점점 커져 새벽녘에 핸드폰이나 아이패드로 미리 누구한테 뭐라고 메일이 왔는지 살짝 살펴보고 난 후 컴퓨터를 켜는 날이 늘었다. 결국에는 새벽 두세 시쯤 실눈을 뜨고 메일함을 열어보는 습관으로 정착했다. 시차 때문에 중요한 메일들은 그 시간 즈음 쏟아져 있으니 당연히 수면의 질이 바닥까지 떨어졌다. 어제 무슨 일을 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고 (어제도 뭔가 수습하고 달리고 메꾸고 꾸역꾸역 해내느라 애썼을 것이다.) 오늘 새로운 일들이 샘솟듯 생겨나 정신이 혼란하다. 하나 끝나며 숨을 고를 줄 알았는데 한 숨 쉬고 나면 다른 일이 또 생긴다.
오늘의 운세라니. 박장대소와 함께 오조오억 번 공감할 일이 아닌가.
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5년, 10년도 계획하는 마당에 오늘 하루 무사히 지낼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날들이 좀 버겁다. 아니, 버거웠다. 은근슬쩍 과거형으로 바꿔본다.
업세이라는 장르를 쓰는 사람은 필시 매일을 기록하는 부지런한 -나와 천만 광년 거리의- 사람이거나 기억력이 비상한 -이것도 역시 나와 매우 다른- 사람일 것이다. 시간 팔이 노동자는 일과 중 다만 한 시간도 평온을 예약할 수 없으므로. 오늘 생각했던 '글 쓸 거리'가 분명히 있었겠지만 내일이면 그 일은 저 과거로 멀어지고 또 새로운 애씀으로 동동거려야 했을 테니까.
앞으로 약 30일 남짓, 중력, 아니 관성을 거스를 수 있을까?
아.. 그러고 보니 갑자기 궁금하다.
시간이 지나면, 오늘의 운세를 확인하는 버릇도 없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