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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백 Feb 13. 2021

모호한 경계

“집을 겁나 비싸게 주고 샀구마. 부엌바닥에 물도 나는디 어짜까….”

회관에 모인 어르신들이 혀를 끌끌 찼습니다. 내가 그 집에 여섯 번째 주인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걱정에도 마음은 부풀어 올랐습니다. 드디어 고향 가까이 올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수리를 마치고 집과의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도시 생활을 접고 오려면 몇 년은 더 있어야 하지만 마을주민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집성촌에 찾아든 외지인을 선뜻 받아들이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내가 태어난 곳과 같은 면소재지라 해도 토박이인 그들에게 나는 낯선 이방인일 뿐입니다. 이 먼 곳까지 왜 왔느냐며 의구심이 가득한 눈초리를 보냅니다. 먼저 살던 부부처럼 금방 갈거라 생각 하는 것 같습니다.


회관과 마주하고 있는 집은 동네 한가운데 있습니다. 담장 없이 사방이 뚫어져 휑합니다. 찬바람이 부는 곳에 맨 몸으로 서 있는 것 같습니다. 마음의 벽돌을 쌓는 대신 대나무로 울타리를 치기로 했습니다. 고개를 내밀면 안과 밖을 건너다 볼 수 있도록요. 마을 사람들과의 가림막은 아니지만 허전한 마음을 채우는 울타리라 해야 할까요. 


마을에는 대나무가 많습니다. 재료를 지천에 두고 이웃마을에서 구해왔습니다. 나무를 자르고 쪼개며 씨름을 했습니다. 일정한 길이로 잘라 발을 짜듯 엮었습니다. 미루나무에 앉았던 새들이 폴짝 날아와 대나무 끝에 앉았습니다. 고개를 빼고 넘겨다보던 사람들도 구경삼아 집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오메오메, 뭣한가 했더니 민속촌 같이 멋지게 만드네. 대나무 필요하믄 멀리 갈 것 없이 우리 집 뒤에서 베다 쓰씨요.”

마침 재료가 바닥난 걸 어찌 알았을까요. 후덕해 보이는 부녀회장님은 비닐하우스 파이프까지 내주며 지주대로 쓰라 했습니다. 이왕이면 동네 사람한테 줘야 한다는 말이 어찌나 따듯하게 들리던지 와락 끌어안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은 참새처럼 그냥 앉아 있다 가는 것이 아니었나 봅니다. 도둑 없는 마을이라 담장이 없어도 된다는 어르신들 말에 야박한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내친김에 톱과 낫을 들고 동네 대숲으로 갔습니다. 이왕이면 튼튼한 경계를 치기위해 팔뚝만큼 굵은 대나무를 붙잡고 톱질을 했습니다. 원형의 빈 공간에 세월을 묻고 있는 나무는 실랑이를 벌이고 나서야 뽀얀 속살을 내보입니다. 대나무가 휘지 않고 똑바로 자랄 수 있는 것은 중간 중간 매듭을 지어주는 마디 때문이라 합니다. 성장을 멈춘 후에는 안으로 밀도를 높이는 시간을 보낸다 하지요. 나도 도시에서의 생활을 접고 이곳에서 시간의 밀도를 높이는 마디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토록 원하는 고향땅에 왔지만 때로는 갑갑증이 일 때가 있습니다. 벗어나고 싶어 떠나온 도시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이 입니다. 그럴때면 넉넉하게 품을 내주는 앞산도, 아침마다 날아드는 새들도 심드렁합니다. 가로등뿐인 동네에서 푸른 신호등이 그립고, 사람들과 뒤섞여 지내던 집 앞 사거리 카페도 그립습니다. 별빛이 반짝이는 하늘을 보면 어두워질수록 생기가 도는 먹자골목 단골 술집이 생각납니다. 내가 쳐 놓은 울타리에 갇혀 무료함인지 허허로움인지 분간할 수 없는 감정이 휘젓고 지나갑니다. 마음은 이쪽과 저쪽의 경계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갈팡거립니다. 


마을 사람들은 내가 좋으면 어디서든 다 좋다고 합니다. 시시때때로 옆 집 할머니가 담장너머로 뜨끈한 음식이 담긴 양푼을 건네줍니다. 아침이면 누가 놓고 갔는지 울타리에 찬거리가 걸려 있곤 합니다. 눈치를 보며 어슬렁거리는 고양이처럼 나는 아직 경계를 풀지 못하고 있는데 그들은 내가 쳐 놓은 울타리가 길인 것 마냥 무시로 넘나듭니다. 


대나무 울타리는 수명이 거개 삼 년이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비바람 눈보라에 색이 변하고 엮은 줄이 풀어져 모양이 일그러질 것입니다. 울타리를 따라 사철나무를 심어 놓았습니다. 대나무가 삭아갈 즈음이면 나무들이 자라 자리바꿈을 하겠지요. 그때쯤이면 나도 이곳에 마음의 뿌리를 내릴 수 있지 않을까요. 안과 밖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울타리는 모호한 경계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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