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깨지는 습성

by 동백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요.”


아들은 말을 잇지 못하고 기침을 해댔다. 무리한 운동으로 어깨가 뻐근하다며 주사를 맞고 온 직후였다. 걷기마저 힘들어하는 아들을 부축해 병원을 다시 찾았다. 의사는 촬영한 사진을 살펴보더니 당장 종합병원으로 가라했다.


‘별일이야 있을라구.’

지금까지 병치레 한 번 없던 아이였다. 임신 초기 자리를 못 잡아 자궁 밖으로 미끄러질 뻔했던 일과 막달에 태아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의사 오진으로 놀란 것은 태어나기 전 일이었다.


종합병원 응급실은 여러 개의 문을 통과해야 했다. 아들의 얼굴은 찌그러진 깡통마냥 갈수록 일그러져 갔다. 수속을 하는 사이 침대에 실린 아들이 투명한 유리문 안으로 미끄러지듯 사라졌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고 쓰인 유리문 앞에서 나는 발목이 잡혔다. 한쪽으로 웅크리고 누워 있는 아들은 초점 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서른 해 전, 태아를 살릴 가망이 없다는 산부인과 의사의 말을 들을 때처럼 불안이 덮쳐왔다.


“‘기흉’입니다. 키가 크고 마른 젊은이에게 주로 생기는 병입니다. 일명 모델병이라고도 하지요."


아들은 몇 달째 재취업 준비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는 눈치지만 뜻대로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티브이에서 청년 실업이 심각하다는 뉴스가 나오면 행여 들을세라 괜스레 볼륨을 낮췄다. 내 염려를 달래려는 듯 이럴 때일수록 체력 단련을 해야 한다며 매일 헬스장으로 향했다.


욕심이 지나쳤던 것일까. 의사는 외부자극으로 인해 뚫린 폐에서 빠진 공기가 흉강 내에 뿌옇게 차 있어 수술이 시급하다 했다. 간단한 수술이라 했지만 생살을 째는 일이 말처럼 쉬울까. 거울 앞에 서서 웃통을 벗고 울뚝불뚝한 제 근육을 만져 보라던 오늘아침이 아득했다. 머리에 하늘색 캡을 쓰고 맨살에 얇은 시트를 덮은 아들이 수술실 안으로 멀어져 갔다. 이미 진단은 내려졌지만 태중에 있던 때처럼 오진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문 앞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거렸다. 수술실을 드나드는 간호사에게 보호자 대기실로 쫓겨 와서야 의자에 불안한 마음을 붙잡아 앉혔다. 환자 이름이 줄줄이 적힌 전광판만 망망대해를 비추는 등대처럼 대기 중, 수술 중, 회복 중으로 바뀌면서 반짝거렸다. 예상 시간을 훨씬 넘기고 나서야 보호자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침대에 실려 문 밖으로 나온 아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늘어져 있었다. 여기저기 상처 난 가슴에 치자물 같은 노란 소독약이 잔뜩 발려 있었다. 움직일 때마다 바람을 빼내는 긴 호스가 내장처럼 덜렁거렸다.


졸지에 중환자가 된 아들은 해수기 있는 노인네같이 쇳소리 나게 숨을 몰아쉬었다. 간호사들이 부산하게 병실을 들랑거렸다. 이러다 잘못 되는 것은 아닐까. 병실은 산소가 부족한 수족관처럼 답답했다. 나는 불안한 마음이 들 때마다 휴게실을 찾았다.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공원에는 사람들이 사지를 흔들며 걷고, 달리고, 또 걸었다. 유리에 갇히기 전 나도 저 무리에 섞여 있었다. 살아가는 일이란 유리 같은 것인지, 유리의 본성을 망각하고 지내다 느닷없이 날아든 돌멩이에 평온한 일상이 순식간에 깨져 버렸다.


유리에 금이 갈 때는 제 수명이 다 된 때문이라고 한다. 미세하게 가 있던 잔금에 조금만 충격을 가해도 깨지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 사이에서도 사소한 일로 갈라서는 관계는 이미 그런 요인들이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아들도 지금이 깨지고 싶었던 시기는 아니었을까.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아들은 링거대에 구부정한 몸을 의지한 채 휴게실을 오갔다. 유리창 너머로 햇살이 따스하게 비쳐들었다.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던 아들이 불쑥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지금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아.”


무엇이 그렇다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그 말이 쭈그러진 허파에 바람이 찼다는 말처럼 들렸다. 내 바람은 오로지 내 새끼가 제대로 숨을 쉬는 것이었다. 나도 내일이면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보이는 지금이 나쁘지 않았다.


온실 같은 유리 안에서 예상하지 못한 낯선 바람에 휩쓸려 한순간 중심을 잃고 말았다. 일층 응급실로 뱅글뱅글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구급차가 쉼 없이 들어왔다. 공원을 걷는 사람들은 탑돌이 하듯 같은 길을 반복해 돌고 있었다. 어둠이 내린 창가에 아들과 내 모습이 그림자처럼 어릿거렸다.


유리는 안과 밖의 경계를 훤히 드러내고 있지만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깨지기 쉬운 습성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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