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덧하는 흙

by 동백

꼿꼿하게 서 있던 무 잎이 허망하게 꺾여있다. 추위를 이겨내지 못하고 하루 사이 푸른빛이 사라졌다. 몸집이 커진 무는 땅에서 불쑥 올라와 바람이라도 불면 뽑혀 나갈 것만 같다. 땅속에 뿌리를 단단히 묻고 있더니 흙과의 밀당에서 밀려난 걸까, 아니면 떠날 때를 알고 미리 빼 올린 것일까.


더위가 가실 무렵 씨를 뿌렸다. 씨앗이 흙에 묻혀 썩지나 않을까 이랑을 따라 얕게 묻었다. 일주일 후 드문드문 꽃 몽우리 피어나듯 싹이 올라왔다. 흙을 파면 영락없이 움츠리고 있던 싹이 보였다. 여린 잎은 바람 불고 비 오면 스러졌다 해가 뜨면 다시 꼿꼿이 일어섰다. 어쩌다 내리는 빗물을 받아먹으며 쑥쑥 자랐다.


하루가 다르게 잎이 진해지고 몸이 불어났다. 몇 번을 솎아내도 내 계산법은 자라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서로 방해받지 않게 멀찍이 거리를 둔다 해도 얼마 후면 자리가 턱없이 모자랐다. 서로 부딪혀 덧니처럼 어긋난 후에야 다시 뽑아내곤 했다. 그때서야 숨통이 트인 무는 마음껏 몸을 부풀렸다.


바람이 불면 무성한 이파리가 파도처럼 일렁였다. 그럴 때마다 밑동이 초록으로 짙게 물들어 갔다. 제 몫을 할 날이 머지않아 보였다. 얄팍하게 썰어 끓인 뭇국, 생선과 큼지막하게 지진 조림, 채 썰어 개운하게 볶은 나물, 톡 쏘는 맛을 내는 동치미, 빨갛게 담근 무 쪽 김치, 밥상에 단골로 오르는 깍두기, 노랗게 물들인 단무지, 무말랭이… 셀 수 없이 많지만,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생채와 고추 젓지가 먼저 떠올랐다.


바다와 가까운 고향에 봄이면 은빛 멸치를 실은 장사들이 마을을 돌았다. 그날은 집집마다 궤짝을 들여와 한해 먹을 젓갈을 담갔다. 소금을 듬뿍 머금은 멸치는 꽁꽁 동여맨 항아리 안에서 여름을 보내며 곰삭았다. 뚜껑을 열 즈음이면 가을이 깊어갔다. 진갈색으로 변한 젓갈에 텃밭에서 갓 뽑아 올린 무를 채 썰어 버무리면 비릿하고 고소한 내가 진동했다. 부뚜막 위 식초를 떨어뜨리면 맛이 더 살아났다. 솔가지로 주둥이를 막아놓은 식초 단지는 마르지 않은 샘물 같았다. 뒤꼍에 묻힌 젓갈 항아리와 부뚜막 위 식초 단지는 오래도록 제 자리를 지켰다.


결혼 후, 새 살림을 시작한 부엌에는 새우젓과 참기름이 자리를 대신했다. 남자와 나는 다른 것 투성이었다. 생각이나 성격, 취미, 하다못해 식성까지 달랐다. 무엇이든 다 해줄 것 같던 남자의 환상에서 깨어났다. 기름을 듬뿍 넣은 생채에 밥을 비벼 입이 미어지도록 숟가락질을 해댈 때면 더욱 그랬다. 나는 생채에 겉도는 기름처럼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다. 낯선 땅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나는 뱃속에서부터 타고난 내 입맛을 포기했다. 다른 문화에 적응해 가다가도 때때로 비릿하고 새콤한 음식이 당겼다.


임신을 하면서 잊혀가던 음식들이 되살아났다. 손가락 길이만큼씩 넙적하게 썬 무에 삭힌 고추와 젓갈을 듬뿍 넣어 만든 고추 젓지가 간절하게 생각났다. 어린 시절 겨울에나 먹었던 별미였다. 새콤하고 알싸한 국물에 밥을 비벼 먹으면 메슥거리는 속이 개운해질 것 같았다. 아이는 어미의 뿌리를 찾아가듯 그 시절로 나를 끌고 갔다. 입덧이 한창일 때는 여름이었다. 나는 과거 속으로 달려가 냄새를 맡고 맛을 음미하며 헛구역질을 가라앉혔다. 태중의 아기가 수시로 속을 휘정 그려 놓을 때마다 고추 젓지 항아리가 놓인 뒤안을 찾았다.


겨우 입덧이 잦아질 무렵 갑자기 태동이 멈추었다. 유산 징후가 있어 산 송자처럼 몇 달을 누워 지내야 했다. 밤낮으로 부른 배 위에 손을 얹고 아이의 움직임을 기다렸다. 불안한 마음 때문인지 얼굴에는 거뭇한 기미가 잔뜩 내려앉았다.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났다.


살아가는 일은 여전히 뒤집히고 가라앉는 입덧 같다. 무와 흙처럼 뒤섞여 남자와 함께 뿌리내린 세월이 쌓여 가지만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서로 좁혀지기도 하고 넓혀지기도 하는 불안전한 공간에서 거리를 가늠하지 못하고 울끈불끈 하다가도 감정을 솎아내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품어 안기를 반복한다. 인생의 텃밭에서 이제는 누가 흙이고 무인지 경계마저 모호하다. 그사이 입맛도 두루뭉술해졌다. 때로는 식초와 참기름이 어우러져 새로운 맛을 내기도 한다.


무를 뽑아 올렸다. 석 달 하고도 사흘 동안 여문 몸을 순순히 내주었다. 흙과의 동거를 끝내고 둥글 길쭉 매끈한 나신으로 여기저기 스러졌다. 절기 따라 색을 바꾸던 밭은 움푹움푹 패인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가느다란 뿌리로 마지막을 버티고 있었던 무도, 그것을 붙잡아 준 흙도 참 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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