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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백 Nov 17. 2021

남해 금산

  

                                                                                                                                                 

그곳에 가고 싶었다. 선뜻 나서지 못하고 그리움의 고향처럼 아껴 두었다. 그 그리움의 중심에 이성복의 시가 있었다. 돌 속에 묻힌 여자와 그 여자를 따라 돌 속으로 들어간 남자를 만나 그리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여러 번 계획을 세우고도 막상 때가 되면 주저앉곤 했다. 일곱 줄의 신화 같은 이야기 속에 오래도록 빠져있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무작정 길을 나섰다.


머물고 있던 고흥에서 세 시간 정도의 거리다. 전라도를 거쳐 경상도로 들어서니 바다의 느낌이 다르다. 돌 속에 묻힌 남자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다. 그러나 금산은 그곳에 있지 않았다. 예상대로라면 바다 어디쯤에 바위가 우뚝 솟아있어야 하는데 작은 돌마저도 보이지 않는다. 오던 길을 되돌아서 꼼꼼히 살펴보았다. 길을 잘못 들었나 싶어 지도를 확인해 보아도 목적지에 도착한 기계는 더 이상 길을 안내하지 않는다. 


사방을 살펴보니 바다 반대쪽으로 ‘금산’이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여러 갈래의 등산길이 표시되어 있다. 커다란 기암괴석들이 사방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말 그대로 산이다. 그런데 나는 왜 그곳이 바다라고만 생각했을까. 시인의 말처럼 '남'자와 '금'자의 그 부드러운 'ㅁ'의 음소로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착각이었던가. 아니면 산의 날카로움보다 바다의 유동성에 이끌려서일까. 울고 있는 남자가 어디선가 나타날 것 같은 미련을 거두지 못하고 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한려해상 국립공원 중 유일하게 산악공원인 이곳은 멀리 떨어진 남해의 섬 속에서 다시 아득한 섬과 바다를 눈앞에 두고 우뚝하게 솟은 돌산이다. 그러니 산보다는 바다를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다. 결국 산이면서 바다인 셈이다. 올라가는 길 곳곳에 자리한 돌들은 멀리서 볼 때보다 더 신비감을 주었다. 시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상사바위는 높은 절벽에 자리하고 있다. 상사병에 걸린 남자가 그곳에 올라 사랑을 풀었다는 이야기와 사랑을 이루지 못해 바위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었다는 두 가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어긋난 사랑이든 불같은 사랑이든 그들은 돌이 되어 마주 보고 있다. 보리암에 올라 아래를 바라보니 보일 듯 말 듯 가물거리는 섬들이 눈에 들어온다. 시인은 이곳에 서서 전설 같은 이야기를 건져 올렸던 걸까. 가만히 시를 읊어 보았다.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남해 금산' 전문)      


시인에게 저토록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은 무엇이었을까. 80년대의 시대적 상황으로 보자면 개별적 사랑만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짐작만 할 뿐. 사랑을 잃고 혼자 남은 남자의 그리움과 외로움에 같이 잠겼다. 홀로 떠나간 여자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지금은 눈물을 거두고 있을지도 궁금했다. 상상의 나래를 펴며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풍경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바다에 이르기 전까지 겹겹이 둘러진 낮은 봉우리들이 엄마 품처럼 포근해 보였다. 뜬금없이 산소에 묻고 온 내 어머니가 떠올랐다. 간 사람은 하루에 집채만큼씩 멀어진다는 말과는 달리 어머니의 부재가 커져가고 있었다. 보내드리지도, 붙잡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다시 시를 읊으며 구절구절이 어머니의 이야기가 되어 다가왔다.


돌 같은 세상에서 한 남자를 만나 다른 돌 속으로 들어갔네. 함께하자던 그 남자 떠나고 다섯 남매 끌어안고 울음을 삼켰네. 막막한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자식을 향한 사랑뿐. 차마 떠나지 못하고 돌 속으로도 들어가고 푸른 하늘에, 바닷물에도 잠겼으리라. 화석처럼 박혀있던 그곳에서 해와 달의 이끌음을 따라 이제야 떠나갔네. 


날개옷의 선녀처럼 미련 없이 떠나도 좋았을 것을 어쩌자고 그 세월을 붙잡고 있었는지. 베개가 젖도록 눈물 흘렸다는 밤과 떠나간 남자의 씨앗까지 거둔 심정이 어떠했을지. 미련한 사랑은 자식들에게 든든한 동아줄이 되기도 하고 올무가 되기도 했으리라. 자식들을 품에서 떠나보내고서야 당신의 길을 준비했다. 그리고 어느 날 소리 없이 이승을 하직했다. 


 불현듯 이곳에 오고 싶었던 것이 우연은 아니었던가보다. 아픈 이별도 사랑이라고, 슬픈 사랑도 아름답다는 것을 이곳에 와서 깨달았다. 바다를 바라보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남해금산 푸른 바닷물에 잠겨 하염없이 먼 곳을 바라보시던 어머니의 마지막 눈길에 나는 비로소 이별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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