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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라스 Jasmine Oct 05. 2024

N잡러의 끝판왕

동시에 7개의 잡이 있다구요?

학교에서 가장 꿀잡 중의 꿀잡은 도서관이다. 도서관 중에서도 안내 데스크에서 일하는 것인데 학생들이 오지 않으면 앉아서 숙제도 할 수 있고 자유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연히 도서관에서 일하는 건 하늘에 별따기처럼 어렵다. 한번 들어가면 나오지 않고 나올 때도 친구를 추천하기 때문에 빽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빽도 없고 영어도 어눌한 나는 그래도 도전해 보기로 했다. 도서관에 찾아갔더니 자리가 없다고 했다. 나는 다음날도 찾아갔다. 역시 자리가 없다고 했다. 나는 다음날도 또 찾아갔다. 매일매일 찾아가니까 자리가 나면 알려줄 테니 더 이상 오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하루 걸러서 하루 걸러 도서관에 찾아갔다. 그러기를 한 달. 드디어 운명의 여신이 내편을 들어줬다.


도서관 사서는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나에게 자리를 줬는데 2층 안내 데스크는 아니었고 1층에 있는 도서관 책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카트를 끌면서 책을 다시 꼽고 정리하는 일이라서 앉아서 숙제를 할 수는 없었지만 일단 도서관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게 어딘가! 그리고 1년 후 나는 안내 데스크로 옮길 수 있었다!

내 보스는 Ms. Peggy Miley였는데 요즘도 페이스북을 통해 서로 안부를 전하고 생일 축하도 해준다. 이미 은퇴를 하셨는데 연세가 있으셔서 계속 병원 신세를 지셔서 걱정이다.


나의 또 다른 알바는 Chick Fil A라는 한국에는 없는 패스트푸드 점인데 치킨이 위주인 맥도널드나 버거킹보다는 레벨이 높은 미국 엄마들한테 가장 인기가 있는 패스트푸드점이다. 치킨도 순살 치킨을 재료로 해서 다른 패스트푸드점보다 더 비싸고 건강상으로도 덜 해롭다. 우리 학교 졸업생이 CEO라서 학교 카페테리아 안데 Chick Fil A가 있었는데 나는 처음에 부엌에서 햄버거를 만들고 설거지를 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서 캐시어에게 햄버거를 전달해 주는 일을 하다가 한 달이 지나 캐시어가 되었다. 학교에서 수업으로 영어를 배우는 것보다 실제로 일을 하며 현장에서 영어를 더 배울 수가 있어서 나에게는 꿩 먹고 알 먹는 셈이었다.

내가 새침하고 얌전한 천사 캐릭터인 줄 알던 알바 동료들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 있었는데 내가 손님에게 콜라를 주려다 실수로 바닥에 쏟으면서 커다란 소리로 'Shit '쉿을 외친 거였는데, 순간 일제히 나를 바라보며 그들이 한 말은,


Jasmine! You can Curse?

쉿은 직역하면 똥이지만 한국말로 치면 숫자 18 정도쯤 되는 욕이었고 난 정말 꿈에도 몰랐다.

내 룸메이트가 걸핏하면 쉿! 쉿! 하는 바람에 나도 버릇이 되어서 쉿! 이 입에 베인 거였다.

카페테리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눈이 나를 향했고, 동료 학생들은 천사 같은 줄만 알았던 내가 공공장소에서 욕을 했다는 게 너무나 신기하고 재밌는지 나를 에워싸고 웃었다. 내 얼굴은 아마 한 가을 잘 익은 사과빛보다 더 빨갛게 무르익었을 터였고 정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뾰로롱 하고 도망치고 싶었다. 그 사건 이후로 나는 쉿을 더 이상 외치지 않았다.


대학원에 들어가면서 목표로 했던 건 학비를 면제받을 수 있는 조교자리였는데 첫 학기에는 자리가 없었다. 도서관의 사서의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게 만들었던 것처럼 이번엔 학장님의 사무실을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갔다. 나는 정말 정말 조교 자리가 필요하다고 거의 떼를 쓰다시피 사정했고 학장님은 그때마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기가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정말 다음 학기에 학장님은 무슨 수를 쓰셨다. 내게 대학원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웹마스터를 해 볼 수 있겠느냐고 여쭤보셨고 나는 내 남자친구가 만들어 준 내 홈피를 보여드렸다. 그렇다. 대학원에 들어갈 즈음 나에겐 남자 친구가 생겼다. 파란 눈에 금발의 미국인은 아니었고 머리숱이 아주 많은 까만 머리에 100% 한국인 남학생, 그것도 거제도에서 온 순 토종 한국 학생이었다. 남자친구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계속하기로 하고 컴퓨터 공학도였던 남자친구가 만들어준 내 웹사이트가 이렇게 요긴하게 쓰일 줄은 몰랐다. 내 홈피를 보신 학장님은 내게 대학원 홈피 웹마스터 조교자리를 주셨고 나는 그 순간부터 남자 친구를 졸라 홈페이지 만드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학장님 닥터 Diebolt 하고도 소셜미디어를 토해 아직도 연락을 주고받는다. 내 인생 최고의 은인 중 한 분이시기도 하다. 내 의지를 높게 사셨는지 참 많이 예뻐해 주셨다.


나의 또 다른 직업은 학교 잡지 기자였다. 지루한 MBA 공부가 성에 차지 않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공부 저널리즘을 학부에서 부전공으로 동시에 공부하는 무리수를 뒀지만 저널리즘을 공부하지 않았으면 학교를 어떻게 다녔을까 싶다. 공부가 이렇게 재밌는지 저널리즘을 하면서 알게 됐던 것 같다. 늦깎이 동양학생이 자신 체구만 한 무게의 책들을 안고 다니면서 공부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기특해 보였는지 난 저널리즘 교수님들의 사랑을 독차지해서 질투를 받기도 했다. 시험지를 제출할 때 다는 미국 학생들이 겨우 한 장을 메꿀까 말까 할 때 난 2장 이상을 써 내려갔고 그때마다 과 친구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내게 귀여운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인도 아이를 입양하신 여교수님은 내게 본인이 맡고 계신 학교 잡지사 Reflector에 기자를 해보라고 추천해 주셨고 교수님 덕분에 내가 쓴 글이 잡지에 실리기도 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또 다른 나의 알바는 회계학과의 설문지를 번역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우리 학교에서 어학연수를 하다 SBS 방송국에 취직한 동생을 소개받았는데 그녀를 통해 미국에서 새로 시작되는 예능 프로그램이나 리얼리티 프로그램, 드라마 등 모든 새 프로그램의 내용을 정리해서 기획서를 쓰고 녹화해서 한국으로 보내는 통신원을 하게 되었다.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해서 정리하는 게 힘들긴 했지만 적성에 맞고 재밌었다. 얘기를 듣자니 이런 통신원들이 세계에 흩어져 있었고, 곱게 말하면 벤치마케팅이었지만 때로는 외국 프로그램을 베끼는 수단으로 쓰였다고 한다.


이렇게 나는 낮에는 저널리즘 대학생, 밤에는 MBA 대학원생, 대학원 홈피 웹마스터 조교, 도서관, 패스트푸드점, 학교 잡지사 기자, SBS 통신원까지 총 7개의 잡을 가진 화려한 N잡러의 인생을 걷고 아니 날아다니고 있었다. 학교에서 제일 바쁜 학생이 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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