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만 해도 내가 사표를 낼 줄 몰랐다.
그 즈음 아침에 와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사직서를 출력해서 내 이름 석 자를 적는 일이었다. 퇴사사유 란에 무미건조한 개인사정이라는 단어를 기입하고 오늘 날짜로 새로 갱신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언제라도 낼 수 있게 첫번째 서랍 가장 위에 넣어두곤 했다. 어제 작성한 사직서를 찢고선.
그 날 아침 10시, 나도 모르게 서랍을 열어 사표를 냈다.
다들 눈이 땡그래져서 갑자기 무슨 일이냐며 말을 더듬었다. 왜 하필 지금, 왜 하필 오늘 내냐는 말은 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상담을 했고, 원래 생각했던 일이라며 애써 말을 끊어냈다.
그 날은 우리팀에 있어 올해 가장 중요한 최종보고가 있던 날이었다.
평소와 같이 출근을 했고, 최종보고회 준비를 위해 서류를 챙기고 있었다. 내 업무는 거기까지였다. 그러나 팀장님은 갑자기 원래 진행을 맡았던 선배대신 나보고 사회를 맡으라고 하셨다. 하기 싫은 것은 둘째 치고 R&R이 아니었고, 모르는 업무였고 내 공이 아닌 선배의 공인데 가볍게 넘기는 것도 싫었고 사실 두려운 점이 제일 컸다.
지금 사표를 내지 않으면 두시간 뒤에 도살장에 있는 멍청한 소는 나일 것이 분명했다. 앞으로 이런 일들이 계속 되겠지라는 불합리함과 당혹감은 나를 첫번째 서랍으로 이끌었고 홀린 듯 내밀었다.
“사실은 저 못할 것 같아요.”
“아니 왜 못해. 무슨 일이야.”
“제가 할 일도 아니지만은 사후 관리가 안 될 것 같아요.” 쓱- 사표를 냈다.
정말 가볍고도 어이없는 사표제출과 수리가 이어졌다.
여러 상담이 있었지만 공부해서 약대로 편입해야 할 것 같다는 조악한 변명이 먹혔고 더 이상 크게 묻지 않았다.
나는 지옥을 탈출했다. 아주 사소하고 별 일 아닌 하루에 더 이상 못 해먹겠다는 마음이 더해졌을 뿐인데 나는 탈출할 수 있었다. 그동안은 아침마다 사직서를 쓰면서 버텼다. ‘아, 나 더 이상 못 참으면 이거 그냥 내버릴 거야.’ 하면서 무적의 마음이 되었지만. 그날은 참지 못했다. 그래서 내고 말았다. 한달 전 계약한 따끈따끈한 전셋집을 뒤로 하고,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
어린 친구들이 회사가 너무 괴로워서 자살했다는 뉴스를 간혹 보곤 한다. 아니, 30-40대 가장들도 안타까운 선택을 한 기사도 자주 접한다. 회사가 뭐길래.
행복하게 살기 위한 수단으로서 다니는 회사일텐데, 주변의 윽박과 위계질서에 마음이 응축되는 나날들이 커지면 사표 쓰는 것 보다 자기자신이 스스로 사라지는 것이 더 쉬워지는 현실이 아이러니하다.
회사에 있는 동안에는 회사가 전부이기 때문에 아주 사소한 일도 굉장히 큰 일로 다가오고, 못해도 되는 일들을 자책하게 된다. 지금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그 회사의 세계를 버리자. 나에게 맞는 세계는 따로 있다.
홧김에 쓰자. 어차피 아르바이트를 해도 지금보다는 행복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 행복하다. 너무 행복하고, 살아있고 나에게 맞는 회사를 찾은 것 같다.
사표가 수리되고, “회사 가기 싫어요.” “죽고 싶을 때”, “사라지고 싶어요”라는 최근 검색어를 삭제했다.
그리고 검색했다. “맛있는 브런치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