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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에달리 Feb 11. 2022

달삼쓰뱉: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다들 어려워서 돌아가는데 정면 돌파하는 쾌감, 그리고 난이도에 얻어터지지

달삼쓰뱉, 달삼쓰뱉. 하루에도 몇 번씩 곱씹는 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감탄고토(甘呑苦吐)라는 어엿한 사자성어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나에겐 달삼쓰뱉의 음율이 딱이다. 달싹달싹 안달 난 모습 같기도 하고 퉷 하고 뱉어내는 모습이 그려져서 단어의 뜻이 명료하게 느껴진다. 물론 내가 줄여버린 근본 없는 말일 뿐이지만.

이전에는 좋은 약이 입에 쓰다라는 생각으로 힘든 것을 억지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고등학교에서 문/이과를 선택할 때도 다들 꺼려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이과를 선택했다. 수능 볼 과목을 결정 할 때도 마찬가지로 물리 점수가 썩 좋지 않았지만 물리2를 골랐다. 

늘 선택의 순간에는 내 기준에 조금 더 도전적이고 어려운 것을 선택했다.  당시에는 이왕 하는 것이니 좀 더 어려운 걸로, 어려운 길로 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어려운데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봤을 때가 좋았다. 좀 더 멋져 보였다. 내가 잘 해내는지의 여부와 관계 없이, 좋은 점수와 관계없이 “나 이과야, 나 물리2 공부해” 하며 어려운 길을 가고 있다고 얘기하는 것 만으로도 존재가치가 올라갔다. 다들 어려워서 돌아가는 데 정면 돌파하는 쾌감, 그리고 난이도에 얻어터지는 동안에도 정의감이 샘솟았다.


돌이켜보면 이 선택들을 내 삶을 좀 더 어려운 방향으로 이끌었던 것 같다.

운전 면허를 딸 때도 똑같았다. 사실 1종 면허는 내게 필요 없다. 2종만 따도 일반적인 운전이 모두 가능하다. 그런데 스틱 운전이 어려운 것이니까 1종 면허를 따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한편으로는 스틱 운전을 전혀 할 일이 없기도 하니 이번만큼은2종을 따는 것이 맞을 것 같았다. 그렇게 1종이 아닌 2종 취득을 결심했고, 무력하게 느껴졌다. 운전 센스나 기계를 다루는 능력이 뛰어나지 않다는 것을 알리는 것 같아서 자존심도 상했다. 처음으로 달삼, 달게 삼켰다. 달았지만 삼키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쓰기만 한 길을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쉬운 길이 있으면 쉽게 가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인생이 조금은 편해졌다. 가볍게 2종을 땄다. 즐겁게 운전을 했다.


꼭 어려운 길을 갈 필요는 없더라고. 

나에게 맞는 길, 내가 즐거운 길을 가면 되는 거였다.

어려운 길로 들어서서 치열하게 애쓰지 않으면 잘못 살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쉬운 길을 더 잘 가면 되는 거다. 어쩌면 나에겐 쉽고 누군가에게는 어려운 길일 수 있다. 쉬운 길이 나쁜 길은 아니다. 남들보다 조금 더 나에게 맞는 길일 수 있다. 쉬운 길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등불을 밝혀줄 수도 있다.  

사실 어떤 길이든 길게 가다 보면 언제나 장미가시는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첫 발자국은 달삼쓰뱉. 

나에게 맞는 길로 달삼쓰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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