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ESG_나이듦에 대한 예행연습
어린 시절 머리가 아프다고 칭얼거리던 나에게 엄마는 ‘TV 많이 봐서 그래’라고 얘기했고, 속이 답답하다고 얘기해도 ‘TV 많이 봐서 그래!”라고 꾸중을 하셨다.
만일 눈이라도 나빠졌다면, 아니 아침에 늦잠을 자기라도 하면 ‘엄마가 그랬지! TV 많이 봐서 그렇다고!’ 하는 잔소리는 듣지 않아도 귀에 선하다.
어린 딸의 모든 잔병치레가 TV 때문이라고 여긴 엄마와 같이, 이제는 내가 엄마의 모든 약해짐을 ‘운동 안 해서 그래’라고 쉽게 얘기하고 있다.
사실 나는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가 있듯 마음이 어리고 생각이 젊으면 되는 거지,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래' 하고 얘기할 때마다 그저 ‘쉬고 싶으니까 그런 마음이 드는 거야’ 하며 움직이자고 끌어당기던 딸이었다.
그런데 나이가 든다는 것은 느끼고 싶지 않아도 몸으로 먼저 알아차릴 수밖에 없다고 한다.
부끄럽지만 아이를 낳으면 요실금이 생긴다는 사실을 몰랐다. 출산 여성의 40%가 요실금을 겪는다니, 이런 사실은 왜 어디서도 알려주지 않는 걸까? 모든 대다수의 아이를 낳은 엄마들은 엄마만의 노화의 세계가 따로 존재하고 있었다.
철부지 딸에게는 요실금이라는 단어는 상상만으로도 존엄한 나, 컨트롤이 가능한 나라는 존재가 흔들리는 사건이었다.
반면 엄마는 그런 말을 하면서 씨익 웃어버렸다. 주책없이 웃는다고 생각했다. 좀 우아하질 못하고 그런 말을 하다니, 생각도 했다. 그런데 그건 나의 미래이기도 했다. 케이트 윈슬릿도 세 아이를 낳고 난 뒤부터는 요실금 증상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젊은 나의 자신감은 어찌 보면 생생하고 건강한 몸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생리현상을 의지로 참고, 활력 있게 움직이는 젊음은 아직 오지 않은 엄마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었다.
큰 소리를 내면 안 되는 도서관에서 헛기침이 나올 때 창피한 것처럼, 내 몸을 컨트롤할 수 없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도 어렵고 함께 살아가는 것도 매일매일 수련이 필요한 일이었다.
갑자기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고 수면장애를 겪는 갱년기 현상도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부족해서라고 한다. 나는 그동안 엄마보고 운동을 하라고 얘기했다. 수시로 비타민을 챙겨 먹으라고 닦달했다.
엄마의 몸이라는 세계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오한과 발환, 수면장애, 골다공증, 우울 등 도미노처럼 이어지는 엄마들의 몸의 변화. 엄마들의 세계.
이젠 엄마가 신체적으로 좌절감을 느낄 때마다 이젠 ‘운동 안 해서 그래!’라는 다그치지는 않으려고 한다. 그보단 ‘운동하면 조금 좋아져!’하며 살살 꼬드겨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