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ESG- 엄마는 몰라. 엄마가 하는 일은 나랑 다르잖아.
“엄마랑은 다르지, 그래도.”
보고서와 발표자료를 작성하다가 잘 풀리지 않아 엄마에게 하소연을 했다.
엄마는 비슷한 사례에서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알려주었고, 나는 부아가 치밀었다.
나는 회사인데, 엄마는 마트였다.
나는 무려 본부 보고이고,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 지표라서 발표 할당량도 상당했는데 엄마는 아니었다.
‘엄마는 뭘 몰라. 아무렴 내가 엄마랑 상황이 같아?’ 하는 말은 삼켜 두었다.’
아침 출근길은 늘 그렇듯 반듯한 카라가 달린 옷을 갖춰 입고 아메리카노를 쪽 들이켜며 우리 팀, 내 자리, 내 책상으로 향한다. 여름에는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 매서운 겨울에는 히터의 보호를 받으며 따뜻하게 말이다.
여기서 나의 일이란 손가락을 꼼지락 대며 마우스를 흔드는 그런 일이다.
사실은 내가 잘하니까, 노력했으니까 얻은 자리라고 생각했다. 수능, 대입, 인적성, 면접, 이직 등등 여러 관문을 어렵사리 통과해서 얻은 안락한 내 책상.
보통이 되는 것이 이리도 어려운가 싶을 만큼 보통의 일하는 여성의 삶은 달콤했다.
내가 잘 했으니까, 포기 않고 끝까지 노력한 만큼의 월급도 달달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엄마보단 내가 더 뛰어난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도 한때는 나와 같이 셔츠를 다려 입고 출근을 했다. 엄마의 팀에서 전화를 받고, 컴퓨터 앞에서 키보드를 톡탁거렸다. 그러다 자연히 아빠를 따라 삶의 터전을 옮겼고, 그때부터 나와 언니들의 초등시절을 내내 지켜 주셨다.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 엄마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십 수년이나 가정을 지켰던 어머니들에게 허락된 일자리는 드물었다. 어머니들을 위한 어머니들의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게 바로 마트 판촉 일이었다.
“엄마가 해 주신 밥 맛, 그대로 느껴보세요.”
처음 맡은 업무는 즉석밥 행사였다. 엄마는 어떤 말을 해야 손님을 불러 모을 수 있을지 연구하였다. 입이 쉬면 정적이 흐르고 부끄러울 수도 있기에 여러가지 말마디를 외워 가셨다. 손님이 흘깃 바라볼 수 있도록 멘트를 구성하고 손짓도 맞추어 갔다.
그렇게 엄마는 엄마의 새 일터에서 날개를 달았다.
엄마에게 허락된 일이 마트 일이었을 뿐, 엄마의 도전은 훨씬 더 진득했다. 신제품을 공부하고 현장에서 마케팅을 체감하고 고객관리를 이어 가셨다.
집안 일은 잘 기억하지 못해도 누가 언제 무슨 제품을 사갔는지, 어디 회사에서 오신 큰 고객인 줄은 다 알고 있었다.
셈이 약해 매번 아빠에게 물어보는 엄마였지만, 카드할인, 40%행사, 10+1행사에는 몇 개를 사 가야 고객이 이익인지 누구보다 빠르게 계산했다.
엄마에게 대충은 없었고, 설, 추석 행사마다 전국 1등, 경인지역 1등 실적을 매년 냈다. 회사에서 포상으로 다녀온 연수는 셀 수 없었고, 주부사원에게 없는 명장, 과장이라는 칭호도 1호로 받게 되셨다.
엄마의 일은 정말로 나와 달랐다.
나는 운 좋게 또는 그 시기에 할 만한 장소에서 할 만한 일들을 보통의 직장인만큼 하고 있었다. 반면 엄마는 허락된 자리를 점점 넓혀 나갔고 때로는 전사 직원들 앞에서 성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엄마가 되면 주어지는 일들이 있다. 내가 아직 직면하지 않은, 일과 가정의 양립에 대한 갈등이 바로 그럴 것이다.
젊음이 그냥 주어지는 것처럼 젊은이에 대한 양질의 일자리도 마찬가지이다.
그동안 나는 왜 엄마의 일보다 내 일이 더 대단한 줄로만 알았을까?
일을 대하는 태도는 오히려 엄마가 더 고귀했는데 말이다.
요즘은 시대가 많이 달라져서 맞벌이가 기본이라고들 하지만, 혹시나 일을 그만 두고나서 엄마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어땠을까?
과연 그 자리에서부터 다시, 아니 새롭게 일하는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일하는 엄마는 참으로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