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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에달리 May 21. 2023

엄마를 배우는 시간

엄마와ESG_환경만 ESG가 필요한게 아니라 모녀관계도 ESG가 필요하다

‘모녀 사이가 참 애틋한가 봐요.’

엄마에 대해 글을 쓴다고 하면 나오는 반응은 딱 두 가지이다.

애틋함 또는 효심이 깊다.


효녀인 척, 착한 딸인 척 얌전히 긍정해도 되겠지만 효녀라는 말은 귓속 털들이 바짝 설만큼 싫어하는 통에 가만 듣고만 있을 수는 없다.



사실을 이실직고해 보자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하는 질문에 아빠가 좋다고 대답할 만큼 어린 시절의 나는 아빠바라기였다.


부끄럼 없이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한다거나, 덤 좀 더 달라는 물색없는 모습이 진절머리 났던 사춘기 소녀이기도 했다.


그리고 냉장고 속의 정리 안된 반찬, 너절한 화장대, 꾸미지 않는 무성(無性)의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던 여대생이었다.


나아가 취업 후 따로 나와 살면서 자연히 부모님 댁에는 자주 가지 않았던 그야말로 깍쟁이 중에 깍쟁이 막내딸이었다.

그리고 선언하였다. 집에는 다시 가지 않겠다고.



갈 때마다 답답하고 화를 낼 만큼 나와 맞지 않는 그 집. 한 때는 우리 집이었던 그 집.

그 집에 들어가지 않고서야 나는 엄마와 처음으로 친해질 수 있었다.



집 밥이 아닌 식당 밥을 먹으며, TV가 아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대화라는 것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엄마의 살림을 보지 않아도 되었고 엄마는 나에게 집안일을 시키지 않아도 되었다.


서로의 거리를 지켜주고 나서야 엄마와 나는 서로를 인간 대 인간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같은 집에 있을 때는 엄마가 시키는 것은 하기 싫어도 해야만 했고, 나 역시 엄마에게 짜증을 부리며 이런저런 잡일을 미뤘다.


밖에서 마주하는 우리는 서로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고 들어주고 싶은 부탁만 기꺼이 들어준다. 


사랑을 주는 게 서툴렀던 엄마는 “밥 먹을래?”하고 하루에도 세네 번씩 밥을 권했지만, 밖에서 보는 엄마는 나에게 커피를 사 줄 수 있음에 감사한다.

매번 집 밥을 거절했던 나 역시 풍경 좋은 카페로 엄마를 데려갈 수 있음에 감사하고 일부러라도 기분 좋게 엄마의 한 턱을 촐싹대며 감사히 여긴다.




엄마는 나 하나를 키우기 위해 마을의 힘을 빌리고, 가족들의 도움을 받고, 육아, 심리 등의 서적을 물론이고 무수한 교육 세미나를 참여했을 텐데 왜 자녀들이 엄마를 배우는 내용은 없을까?



효녀는 아니지만 엄마에 대해 쓰고 싶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와 같은 불효녀들에게 일방적인 희생 말고 서로 인간 대 인간으로 엄마와 친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딸부자 집의 막내딸, 그리고 사랑을 받아야만 하는 이기적인 셋째 딸인 만큼 나만 주는 관계는 없다. 엄마가 우리들을 배웠던 만큼 이제는 엄마를 배우고 엄마와 상생하고 엄마와 협력해 보려고 한다.



시대가 변했다.

좋은 환경과 풍부한 영양 속에서 우리들은 앞으로 최소 40년 이상을 부모님과 함께 살아가게 될 것이다. 환경에만 ESG가 필요한 게 아니라 부모자식 관계에도 공존하며 상생하고 협력하는 ESG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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