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학 후, 혼자 살 방을 구해야 할 때 엄마가 건넨 말이었다. 나 혼자 어떻게, 어딜, 무엇을 알아서 봐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친엄마 맞나?
다른 집 자식들은 부모님이 먼저 대학가에 와서 집을 찾아본 뒤 계약하고 오신다는데, 나는 왜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할까? 빈 속에 레몬즙을 들이켠 것 같이 속이 아팠다.
나를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겠지만 일하는 엄마에게는 회사에서의 업무처리가 더 중요한 과업이다. 그리고 방을 구하는 것은 내 인생에 주어진 일이었다.
무섭지만 대학가 원룸단지를 돌아다니고 떨리는 마음으로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고 또 방을 구경했다. 이런 일을 혼자 하다니! 화는 났지만 어렵고 멋졌다.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조그만 방 한 칸에 ‘몇 천만 원이라는 보증금이 필요하구나’, ‘월세는 얼마구나’ 하는 사실을 배웠다.
생각보다 방이 비쌌다. 이 돈을 부모님께 달라고 해도 되는지 무서워졌고, 생각하지 않았던 기숙사 지원책을 다시 한번 알아보기 시작했다. 찾아보니 일반 기숙사는 불가능했지만 외국인과 함께 방을 쓰는 기숙사는 지원할 수 있었고, 다행히 원룸 대신 학교 기숙사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달팽이가 자신의 집을 스스로 만드는 것처럼, 대학교 4학년 때의 원룸도, 취업 후 작디작은 LH행복주택도, 그리고 첫 집을 장만하면서도 더 이상 부모님께 기대지 않게 되었다. 구석구석 찾아보고 알아서 달팽이집을 지어나갔다. 가끔 이 집이 맞는지 무섭기도 했고 잘못될까 봐 두려웠다. 누군가 결정을 대신 내려줬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건 나의 달팽이 집이었다.
“이모들에게 카카오톡으로 동영상 보내 주려면 어떻게 해?”
“홈쇼핑 이 바지 사고 싶은데 좀 사 줘”
“은행이 고장 났는데, 와서 확인 좀 해 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엄마의 처음에 내가 있었다.
이 쉬운 것을, 버튼을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무조건 물어보는 것이 아닐까?
집을 선택하는 것에 비해 참 간단한 질문들이었다.
처음에는 하나하나 알려드렸지만 나중에는 화가 나서 “잘 찾아봐!” “지난번에 알려줬잖아, 기억 안 나?” 하며 볼멘소리를 하였다.
왜 엄마는 기억을 못 할까? 왜 엄마는 해 볼 생각을 안 하는 걸까?
컴퓨터 버튼 하나 누르는 것을 계속 망설이는 엄마에게 이유를 물어봤고, 엄마는 대답했다.
“혹시 고장 나면 어떡해”
아! 엄마도 무서운 거였구나. 시도가 무서운 게 아니고 고장 날 까봐, 잘못될 까봐 무서운 것이었구나.
그때부터 교육방법을 바꾸었다.
일명 ‘아무 버튼이나 아무렇게나 눌러보기’.
‘우측 하단에 있는 비행기 모양의 전송 버튼을 눌러봐’ 대신 ‘어떤 걸 눌러야 할 것 같아?’ 물어보기.
아무거나 만져도 껐다 켜면 살아나는 컴퓨터를 보여주기.
유튜브에서 원하는 영상을 찾는 방법이 아니라 유튜브 화면 어디를 눌러도 상관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잘못된 버튼을 눌러도 고장 나지 않고 문제가 없다는 것을 수십 번 알게 된 엄마는 이제 말한다.
“일단 엄마가 찾아서 막 눌러볼게”
작은 스마트폰을 만지는 것은 집을 선택하는 것에 비해 참 시시한 문제 있은 줄로만 알았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여전히 엄마도 엄마의 달팽이집을 짓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