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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에달리 Jun 02. 2023

묵언으로 전도하기(엄마의 건강습관 편)

엄마와 ESG - 말하는 것은 말 뿐이니까

교수님 눈에 띄지 않도록 창가 구석을 자처하는 나와 달리 가장 앞자리에서 열심히 필기하던 친구가 있었다. 나는 술을 마시고 늦잠으로 자체 휴강을 했고 시험기간이 되면 벼락치기로 날밤을 새웠다. 그녀는 술은 마시지 않았고 평소에는 도서관에서 만날 수 있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기 때문일까? 그녀는 내게 ‘재미를 모르는 지루하고도 독실한 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몇 년 후, 나는 취업을 했고 친구는 대학원에 갔다.

술을 줄였고 학교 공부에 소홀했던 것을 후회했다. 매일 조금씩 성장하는 기쁨을 알게 되었다. 그제야 그녀의 지루한 일상이 참 근사한 날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친구를 닮고 싶었다. 성실하고 온화한 모습이 부러웠다.

교회를 가면 그녀처럼 될 수 있을까?


“너와 같은 모습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할 수 있을까? “

나는 친구에게 교회를 가보고 싶다고 했고, 무더운 여름날의 교회 수련회에도 참여해 볼 수 있었다.

친구는 나에게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얘기도, 차근차근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는 얘기도 하지 않았다.

교회를 같이 가자고 하지 않았다.

그저 자기의 리듬대로 살았고 그녀의 뜻대로 삶을 이어왔다.


좋은 모습을 유지했을 뿐인데 다른 사람들로부터 감응을 일으켰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때로는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되는 것이었다.




엄마의 건강습관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엄마는 다이어트 영광 사례 보유자이다. 20대 시절, 며칠을 굶어서 20kg을 뺐다는 무용담 속에는 언제든 다이어트를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도 함께 있었다.

“엄마가 마음을 안 먹어서 그렇지, 빼려면 금방 빼! 일단 시작하면 굶어서 바로 뺄 수 있어.”



30대, 40대가 되었고 여전히 엄마는 통통했다.

50대 엄마는 굶지 못한다.

콜라비와 양상추와 배추와 버섯을 산처럼 쌓아 놓고 먹다가 물리면 다시 참외, 사과, 배 등을 “살이 안 찌는 음식”이라며 양푼 한가득 깎아 오신다.

건강한 음식으로 잘 참다가 문득 윤기 흐르는 고열량 음식들의 폭식도 예삿일이었다.



엄마의 식습관이 걱정되었던 언니는 “그만 좀 먹어!” 하며 잔소리를 시작하였다.

“병원 좀 가!” 당뇨와 고지혈당을 염려하였다.

“좀 움직여!” 휴일마다 누워서 꼼짝 않는 엄마를 일으키려 하였다.


허사였다. 다이어트의 영광된 기억은 점점 무거워져만 갔다.


그랬던 엄마가 바뀌었다. 다이어트 ‘결심’을 하지 않았는데도, ‘그 영광’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는데도 건강한 습관으로 살을 뺄 수 있었다.


비결은 바로 나의 무관심이었다.

나는 내가 제일 중요했고, 내 몸매가 중요했다. 운동을 즐기지만 엄마와 함께 나가진 않는다. 혼자 운동하고 혼자 건강해졌다. 운동하러 가자고 엄마를 꼬시는 것은 그야말로 효도 중에 효도였다. 나는 할 수 없는.


나 홀로 운동 4년 차, 운동을 권유하지 않은 것도 4년 차.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다. 엄마는 스스로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별다른 노력 없이 7kg을 감량할 수 있었다.


내가 아침 운동을 시작한 첫 해에, 엄마는 날더러 참 독하다고 하였다. 어쩜 이렇게 별나고 수고스럽게 사느냐고 하였다.


그다음 해에는 같이 나가자고, 엄마도 아침에 깨워 달라고 하였다. 깨우는 것도 운동 갈 준비를 기다리는 것도 시간이 아까웠기에 여전히 나 홀로 운동을 하였다.


3년 차, 한 번도 운동을 데리고 나가지 않으니, 이제는 엄마가 알아서 나가기 시작했다. 한 번 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4년 차, 나보다 더 일찍 일어나고 더 오래 걷기 시작했다.

아침은 쓸 수 없는 시간인 줄 알았는데, 이 시간을 알게 해 주어 고맙다고 하신다.

운동이 힘든 것인 줄 알았는데, 해보니 즐거웠다고 하신다.


나는 결코 엄마에게 어떤 말도 해 준 게 없었다. 그저 보여줬을 뿐.

엄마가 애써서 나에게 오면 그제야 함께 달려줬을 뿐.



어떻게 운동을 스스로 하게되었냐고 물어보면 엄마는 말한다.

그냥 그게 좋아보였어. 네가 좋아보였어.


알고 보면 나도 참된 전도자였나 보다. 묵언으로 엄마의 건강습관을 전도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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