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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에달리 May 29. 2023

거절은 거절합니다

엄마와 ESG - 감사를 가르치는 시간

비싼데 뭐 하러 사!

“파스타는 엄마가 만들어먹는 게 제일 맛있어!”

“쓸데없는 거 하지 마”


수원과 용인 그리고 평택까지, 생계형 독립을 해 낸 세 딸 덕에 우리 가족이 모두 모이는 날은 일 년 중 두 세 차례에 불과하다. 휴가가 일정한 직장인 딸과 돈 버는 날이 일하는 날인 사업자 딸이 있기에 명절날도 오랜 시간을 함께하진 못한다.


애틋한 마음만큼 모이기만 하면 속 시끄럽고 귀 아픈 온 가족 상봉날에는 ‘그래도 맛있는 것 먹어야지’, 하는 딸들과 ‘집에서 해 먹는 것이 더 싸고 맛있어’라고 말하는 엄마가 있다.



집 밥 말고, 며칠을 꼼꼼히 찾아보고 예약 한 식당으로 향하는 루틴은 아래와 같다.

1. 여기 정말 맛있대

2. 사진 찍어서 이모들한테 자랑해 

3. 집에서 먹으면 또 집안일해야 하잖아

어르고 달랜 뒤 한 마디를 더 덧붙여야 한다.



 

윤여사, 그냥 사 줄 때 드시지?

놀라운 사실은 먹을 때는 누구보다도 많이 드신다는 것이다. 그러다 입 한가득 우물거리다 한마디 툭 내뱉는다. “엄마가 집에서 똑같이 만들어줄게”

그래도 함께 모인 시간이 좋지 않느냐며 빵빵한 양 볼과 함께 소담한 얘기들을 나누다 보면, 기분이 좋아진 큰 언니는 엄마에게 옷이나 화장품을 사주기 위해 ‘이건 어떤지, 저건 어떤지’하며 의중을 물어본다.


“이런 것 엄마는 필요 없어.”


그랬다. 엄마는 세 딸들이 엄마를 위해 준비한 음식도, 옷도, 화장품도 모두 ‘쓸데없는 것’이라고 일축해 버렸다. 늘 그랬듯 말이다. 

큰언니가 칼을 빼 들었다.

“엄마, 그렇게 말하면 앞으론 못 해줘. 우리가 엄마에게 대접하고 싶고 사주고 싶은 것도 다 싫다고 하면 이젠 없어.”


“아니, 비싸니까 그렇지” 서둘러 덧대는 엄마에게 “그래서, 맛있었어? 맛없었어?” 하고 재촉하니 그제야 맛있었고 고맙다고 말을 이어간다.


거절은 거절할게, 앞으로 해준다고 하면, 그냥 고맙다고 해. 잘 받는 것도 능력이야. 엄마는 말로 복을 다 걷어차고 있어. 앞으로 필요 없다 하면, 이젠 진짜 끝이야”




몇 차례의 혹독하고 매서운 큰언니의 반복학습을 거치고 나니, 일단 엄마는 고맙다고 얘기한다. 이전에는 대충 아무거나 로션 남는 것 달라고 하던 엄마였지만 이제는 콕 집어 수분크림을 사달라고 얘기하신다.

함께 운동을 시작한 뒤에는 러닝화를, 타이즈를 사 달라고 얘기하신다. 실내의 작은 카페보다는 대형카페가 좋다고 카페 취향을 얘기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너무 좋아! 정말 고마워. 딸들.”


엄마는 알게 되었다. 해 줄 수 있는 것들만 딸들이 해 준다는 것을. 그러니 엄마에게 뭔가 대접할 때 기꺼이 받아도 된다는 것을. 분명히 원하는 바를 요구하고 충분히 고마워하면 된다는 것을.




엄마도 배워야 한다. 내리사랑 말고 이젠 받는 법도 배워야 한다. 감사를 배워야 한다.

수십 년을 주기만 해서 받는 것이 어색할 수 있다. 괜히 자식들 지갑 안 쓰게 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다. 그렇기에 꼭 자녀들이 알려줘야 한다. 


싫다고 하는 사람에겐 좋은 것이 돌아가지 않는다.

밥 먹기 싫은 아기들에게 한 숟갈이라도 더 먹이려고 애쓰는 엄마 말고는 지속해서 꾸준히 내 사랑을 받아달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받을 줄 모르고 기뻐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앞으로도 죽 아무것도 필요 없는 사람으로 인식될 뿐이다. 오늘은 한 번 엄마에게 감사를 알려줘 보자. 받는 사람의 애티튜드를 가르쳐줘 보자.




고백하건대, 자식들이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은 부모님만큼 깊고 넓지 않아서 해 줄 수 있는 것만 말한다. 그것도 얄팍한 수준이다. 그러니 어머님들이여. 감사히 받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주세요. 더 좋은 건 이미 자식들이 먼저 다 했답니다. 더 좋은 곳은 이미 친구들끼리 다 다녀왔답니다.




최근 외할머니를 반나절동안 모실 일이 있었고, 나는 ‘여자를 단박에 기쁘게 만들 수 있는 꿀팁’인 네일아트를 함께 하러 갔다.

“네 엄마가 신신당부하더라. 무조건 고맙다고 하라고. 할머니는 이런 것 모르는데, 일단 해주면 고맙다고 하라더라.”

앗, 분명 할머니가 네일아트를 좋아하시는데, 이렇게 시큰둥한 반응이라고? 엄마에게 교육을 받아서 고맙다고 말하는 거라고? 내가 알고 있던 사전지식과는 달랐다.


잠시 아찔했지만 알게 되었다. 엄마는 할머니를 빼다 닮은 거였구나.

할머니는 꼼꼼하게 꽃이 그려진 디자인과 진분홍 색과 반짝이까지 칠해달라고 요구하신 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매장을 나가셨다. 일주일 내내 노인정 사람들에게 손톱을 자랑하셨다.


엄마도 엄마의 엄마에게 감사 교육을 시켜줬구나.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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