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을 읽자, 우리의 교실에서

-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by 달밍


‘근친상간’과 ‘살부(殺父)’. 이 두 가지의 키워드는 세상의 그 어떤 잘못이나 범죄 행위보다도 참혹한 것으로 여겨지며 오랜 시간동안 인간의 금기로서 작용해왔다. 그런데 소포클레스의 희곡 <오이디푸스 왕>에서는 이와 같은 금기가 이야기의 주요한 소재로 다루어진다. 이러한 점 때문에 <오이디푸스 왕>은 학생들에게 교육 자료로 사용하기에는 지나치게 유해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작품을 교실에서 다루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까? 나는 작품 속 현실보다도 더 비극적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오이디푸스 왕>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017년의 대한민국에 ‘나’의 자리는 더 이상 없다. 존재가 놓여야 하는 자리에는 돈·직장·집과 같은 물건들이 들어섰고, 국가는 우리를 인간으로 대우해주지 않는다. 시들어버린 삶, 사람이 없는 삶. 내일의 찬란한 희망보다는 눈앞의 끔찍한 절망을 믿을 수밖에 없는 세상인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실존’에 관한 논의가 대두되기 시작한 것이 세계 대전 직후라는 사실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전쟁으로부터 비롯된 물질 만능주의와 인간소외에 지친 사람들은 실존에 관한 담론을 내놓기 시작했다. 수많은 실존 철학은 학자 개인별로 혹은 국가별로 그 세부적인 형식이나 내용에 있어서 차이를 보이지만, 국가가 심각한 위기 상황에 당도했을 때 이와 관련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는 것만은 공통적이다. 전쟁보다 황폐한 마음 속 폐허를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실존이며, 그러한 실존의 문제를 치열하게 다루고 있는 작품이 바로 <오이디푸스 왕>이다.


테베이의 영웅으로 존경받던 오이디푸스. 그는 비극적인 운명과 스스로의 오만함으로 인해 한 순간에 근친상간과 살부를 저지른 죄인으로 추락하고야 만다. 그러나 그는 생(生)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결과에 묵묵히 책임을 지는 실존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스핑크스의 물음에는 순식간에 답변을 내놓았으면서도 스스로가 누구인지에 관해서는 대답하지 못했던 오이디푸스가, 삶의 부조리를 담대하게 직면함으로써 진정한 삶을 새로이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오이디푸스의 모습에서 치열한 자기 탐색에의 과정, 그리고 그로 인한 결과를 의연하게 마주하는 숭고한 인간의 노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인간의 유한함과 허약함을 모두 받아들이면서도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주체성과 실존의 세계를 엿보게 된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무엇’이 아닌 ‘나’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준다. 삶과 죽음, 부조리와 실존의 문제, 지나간 날들과 다가올 날들에 대한 이해,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온몸으로 맞이하게 될 나 자신에 대한 물음. 이 모든 것들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답해야만 하는 질문들이다. 소포클레스의 희곡 <오이디푸스 왕>이 가지는 교육적인 가치는 바로 이 지점에서 드러난다. 경쟁과 압박 속 혼란한 시기를 겪으며 자아 정체감을 확립해나가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를 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게 하는 <오이디푸스 왕>과 같은 작품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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