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꽁무니를 붙잡고 뒤에서 신나게 흔들어대는 모든 아버지들아
내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강아지 새끼인 줄 아느냐
-최승자,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중에서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줄에 묶여있으면, 처음에는 갑갑하고 벗어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그 줄이 충분히 길면 묶여있다고 하더라도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다. 줄이 긴 억압, 우리가 스스로 묶여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게 하는 그런 억압이 있다. 최승자가 남긴 이 구절을 보며 그 이야기가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꽁무니를 붙잡고 뒤에서 신나게 흔들어대는 아버지들과 살아가고 있다. 단지 그 아버지가 우리의 목줄을 단단히 붙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뿐. 목을 조여 오는 그 느낌에 너무도 익숙해진 우리는 강아지 새끼가 된 나머지 이 세상에 항복하고, 행복하고야 만다.
그러나 시대의 반역자, 시의 순례자였던 최승자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스스로가 목줄에 묶여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아파하며 낑낑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잠의 잠, 꿈의 꿈 속에서도 싸움을 멈추지 않았던 시인. 그녀는 아버지로 나타낸 이 세상의 모든 부패와 억압, 권위와 허무에 절대로 순응하지 않겠다는 강렬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내가 달아나면 달아날수록, 목을 감싼 목줄이 점점 더 목을 조여오고. 결국 살이 문드려져 피가 줄줄 흐른다고 할지라도. 절대로 당신의 손놀림에 순응하지 않겠다, 정신의 완전한 해방을 꿈꾸겠다. 그런 의지가 저 짧은 문장 속에 모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썩어버린 이 세상에 눈 감는 것이 아니라, 허무의 힘으로 철저히 무장하여 외롭고 긴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던 최승자. 그녀의 그 고된 싸움의 끝은 어디일까. 그녀의 시를 읽고 그녀를 이해하려 발버둥치는 우리의 노력이 그녀가 가는 길에 조그마한 힘이라도 될 수 있기를 조심스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