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하게 불완전하고 시리도록 아픈 삶 속에서

-James Tate, Voyage to an Outlying Islan

by 달밍

* 앞선 게시물에서 번역한 James Tate의 영시 'Voyage to an Outlying Island'의 해석 및 감상을 다룬 글입니다.



사람들로 붐비어 발 디딜 곳 없는 병원, 나는 겨우 빈자리를 찾아 몸을 구겨 넣는다. 묘하게 날카로운 분위기가 흐르고 부딪치는 팔꿈치는 날 선 공기를 한결 더 매섭게 만든다. 착각일 거라고, 스스로를 달래던 찰나 옆 자리 여자의 퉁명스러운 물음에 착각은 현실이 된다. 오는 말이 곱지 않았으니 가는 나의 말도 퉁명스러울 수밖에. 여자와의 실랑이로 한껏 더 커져버린 나의 불안함은 작고 초조한 남자에게 말을 걸게 만들었다.


우리 둘 다 병원에 와있는 처지이지만, 그가 멀쩡하다면 나도 혹시 멀쩡할 수도 있지는 않을까. 그의 대답 속에서 구원을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아무 문제도 없죠?” 하고 물음을 건넨다. 그렇지만 남자의 대답은 나의 예상을 빗나가는 것이었고, 당황한 나는 횡설수설하며 아무 말이나 내뱉어버렸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들에 작은 남자는 곤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나의 모든 불안함 들도 방금 전 일의 변명거리가 될 수는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이내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아보려 애썼지만, 쏟아진 물은 담기기는커녕 사방팔방으로 튀어 다른 이들의 심기까지 건드리고야 말았다. 작고 초조한 남자, 옆 자리의 커다란 여자, 건너편의 남자, 그리고 그 옆에 있던 여자 아이까지. 우리는 모두 불안하고 신경질적인 마음을 감출 수가 없어 이런저런 말을 쏟아내듯 늘어놓는다.


“저기, 잠깐만요.” 나는 소란 속에 끼어든다. 병원은 긴장감에 휩싸여있고 의사들은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우리를 짓누른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가장 시끄럽게 증폭시키는 것은 바로 침묵이다. 이토록 시끄러운 침묵은, 잔인하리만큼 고요한 정적을 깨고 서로를 향해 말을 건넬 때에야 비로소 잠잠해진다. 이러한 침묵 너머의 위안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바로 서로를 향한 웃음과 사랑 속에 있다. 목을 조여 오는 공포와 감히 감추지 못하는 나약한 마음. 그 속에서 허덕이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오직 유머 감각을 발휘해 웃어보는 일, 그리고 힘껏 서로를 사랑하는 일일 뿐이다. 어쩌면 이것들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축복보다도 더 소중한 것이리라.


바로 그때, 간호사가 와서 나의 이름을 부른다. 거대하고 숨 막히는 운명 앞에서 무방비의 맨 몸으로 맞서야 하는 순간이다. 일어서서 몸을 떨던 나에게는 따스한 손과 포옹, 그리고 누군가의 말들.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나를 위로해 준다. 나는 간호사를 따라 길고 끝없는 길을 걸어간다. 모퉁이를 돌고 또 도는 동안 나는 이제 두려움이나 불안 함조 차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나 자신과, 이 곳에 온 이유와, 모든 희망마저 잃어버렸을 때. 의사는 내가 ‘특별하다’고 이야기하고 나는 한 번 더 그 미로 같은 복도를 지나 걸어 나온다. 대기실의 사람들은 다시 처음과 같은 침묵 속에 잠겨있었다. 마치 우리가 조금 전 나누었던 대화가 모두 꿈이었던 것처럼. 외딴섬으로의 여행을 마친 나는 가늘게 내리는 빗속에서 천천히 녹아내리며 다시 일상 속으로 스며들어 간다.


시의 제목에 등장하는 ‘외딴섬’은 어떤 공간일까? 이 외로운 공간은 이야기가 진행되는 병원이자, 동시에 우리의 삶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들은 어느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때때로 아프고, 신경이 날카롭고, 불안해한다. 대기실 속 환자들의 모습이 유별나다고 느껴지지 않는 까닭은 그들이 내 자신 혹은 내 주변 사람들의 모습과 닿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계속해서 서로를 붙잡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놓치지 않도록 꽉 붙잡고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을 이 시는 말하고 있다. 결국 ‘외딴섬으로의 여행’이란 어느 환자가 남긴 병원에서의 생생한 기록이자, 동시에 외딴섬과도 같은 삶을 새로운 시각과 시선에서 바라보게 하는 여행기와도 같다. 죽음과 가장 가까이 맞닿아있는 ‘병원’에서, 그 정 반대편에 놓여있는 ‘삶’을 숙고하도록 하는 것이 이 시가 지닌 가장 큰 힘이 아닐까.


“여기는 거대한 병원이고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었으니까. 모두가 불완전했고 그것만은 공평했으니까.”라는 어느 소설 속의 문장처럼, 공평하게 불완전하고 시리도록 아픈 삶을 살아가는 우리. 적어도 이 시(詩)를 읽은 우리들만큼은 고독하고 병든 외딴섬에서 침잠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주며 넘치는 웃음과 사랑 속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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