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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밍 Dec 24. 2017

너를 좋아해서 그랬어

S에게, 겨울에 보내는 여름 편지



 어느덧 반년 전이 되어버린 그날 말이야. 너랑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 저녁을 먹었던 날. 그 때의 나를 생각하면 아직도 꽤나 부끄러워. 아무도 없는 방안에 있으면서도, 자꾸 어딘가로 숨고싶어져.

 그날의 우리는 꽤 즐거웠고, 오래 함께했고, 자주 웃었지만. 동시에 그날의 나는 아주 서둘렀고, 서툴렀고, 어설픈 모습이었어. 네가 알고 있었을지, 지금은 알고 있을지 나는 영영 모를테지만. 내가 알고 있는 사실 한 가지는 말이야. 그날의 내가 그토록 어리숙했던 이유는 딱 하나라는 거야.

 그저, 너를 좋아해서 그랬어. 그래서 나에게는 그 하루가 그렇게 어려웠어. 어떻게하면 조금 더 너에게 예쁘게 보일 수 있을까. 어떻게 말하고, 웃고, 너를 바라봐야 너도 나에게 빠져들 수 있을까. 내 머릿속은 그 따위의 것들을 생각하느라 참 바빴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꾸며냄보다는 더 중요한 게 있었는데 말이야. 너의 이야기를 조금 더 귀 기울여 듣고, 충분히 공감해주고, 다시 나의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일. 그 단순한 일 하나면 충분했던 건데. 내 욕심이 우리의 예뻤던 저녁을 망친 거야.

 아직도 너와 나의 관계는 천천히 움직이는 어떤 선 위에 놓여있는 것만 같아. 내가 너를 놓지 못했기 때문이겠지. 나의 어리고 서투른 이 마음 속에서 언젠가 너를 보내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네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해주고 싶어.

 너는, 나의 여름이었다고. 덥지도 않은데 자꾸만 얼굴에 열이 올라서. 안 그래도 빨갛고 울긋불긋한 내 얼굴이 더 못나 보일까봐 걱정하게 만들었던. 너는 그런 사람이었어. 나의 계절을, 뜨거웠던 여름을, 너로 가득히 채워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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