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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밍 Jan 12. 2018

처음 병원에 갔다



 청춘은 특권이라는데. 이 특권이라는 청춘 앞에서 나는 너무 자주 아프다. 아무래도 이 세상의 리듬이 나와는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농담처럼 얘기하고는 했지만, 정말 당장이라도 조용한 절에 가서 스님이 되면 행복할 것 같아.


 심리학과에서 공부를 하다보면, 여러가지 심리적인 질병들을 다루게 되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런 병에 대체 왜 걸리는 걸까, 싶었거든. 도대체 멀쩡히 살다가 왜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끼는 걸까? 그런데 부딫치고 나니까 알겠더라. 텍스트로 존재하는 질병과 내가 겪는 질병은 차원이 다르더라.


 어제는 뮤지컬을 보다가 10분도 안 되어서 뛰쳐나왔고, 한시간 정도 바깥을 들락날락 거리면서 숨을 쉬었고, 밖에 있는데도 자꾸 어딘가로 뛰쳐가고 싶었고, 가만히 있다가 눈물이 났고, 집 가는 길에는 지하철을 탈 수가 없어서 한 정거장을 가다가 내리고 다시 역 밖으로 나와서 숨을 쉬고는 또 한 정거장밖에 못 가고 아예 나와버렸어. 아무도 없는 깜깜한 밤길을 혼자 걸으니까 다시 무서워져서 미친듯이 차가 다니는 곳으로 서둘러 걸어갔고 택시를 잡았는데. 한시간 정도 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차가 멈출 때마다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어. 숨을 어떻게 쉬는 거였는지 모르겠고, 이러다 내가 숨을 못 쉬어서 쓰러지면 지금 이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나는 병원도 못 가고 죽는건가. 숨을 쉬고 심장이 뛰는 일들이 하나하나 다 낯설고 불안하고 무서워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


 근데 너무 이상한 건, 분명 나는 이 증상이 얼마나 비합리적인 건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는 거야. 약물을 투여해서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을 활성화시키면 된다는 것도 알고, 이건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끼게 하지만 실제로 내가 죽음에 이르게 되지 않는다는 것도 다 아는데. 그걸 알면서도 몸이 말을 안 들으니까 내가 미친 사람인 것 같더라.


 꾸역꾸역 한 시간을 버티고 집 앞에 내려서, 허겁지겁 계단을 뛰어 올라갔어. 청심환을 먹고, 속이 답답해서 활명수를 먹고, 잠이 안 와서 잠 오는 약도 먹고 가만히 누웠어. 여기는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우리집이라는 걸 아는데도 불안했어.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불안해서 너무 힘겨웠어. 죽을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무서우면서도 내가 살아있는 게 무서웠어.


 약 덕분인지 잠은 금방 들었지만, 오늘은 도저히 혼자 집에 있을 수가 없어서 가족들을 따라 나갔다 왔어. 나가는 것도 무서웠지만, 혼자 있는 게 더 무서울 것 같아서 용기를 냈어. 분명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하루였는데 산소가 너무 부족한 것 같은 답답한 느낌이 가시지가 않고, 심장 언저리가 꾹꾹 아프고, 왈칵왈칵 눈물이 흘러서 다섯 번은 울었어. 나는 이대로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걸까, 혼자서는 아무데도 갈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걸까. 그럼 나는 이제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나.


 그리고는 태어나서 처음 가본 정신과에서도 또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얘기를 했어.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 지더라. 내가 잠은 잘 자는지, 밥은 잘 먹는지, 소화는 잘 되는지, 또 죽고 싶은 생각은 안 드는지. 이런 세심한 물음들이 고마웠어. 밥도 거의 못 먹고 소화도 잘 안 돼요. 잠은 약 먹고 겨우 잤고, 죽고 싶지는 않지만 왜 사는지는 모르겠어요. 이런 이야기들을 삼십분 동안.


 선생님은 다 괜찮아 질거라고, 여섯 달만 치료하면 금방 나을 거라고. 지금은 비가 내리는 것 뿐이라고 하시더라. 비가 오는데도 우산을 안 쓰고 있으면 당연히 몸도 옷도 젖어서 추울 수 밖에 없지. 그러니까 같이 우산을 쓰면 되는 거고, 비는 결국 그치게 되어 있는 거라고. 자꾸 구덩이에 빠지게 되겠지만, 그러면 안 되는 거니까 우산을 쓰고 비가 그치기를 잘 기다려보자고. 약을 받아들고 월요일에 다시 병원에 오기로 했어. 약을 먹으니까 위약효과인지 진짜 약 효과가 돈 건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공황 증상은 없는 거 같았어.


 일주일 전만해도 나는 이렇지 않았는데. 힘든 고비는 나 혼자서도 다 잘 넘어왔고, 그래서 다시 기운을 차린 거라고 믿었었는데. 새롭게 시작할 것들 앞에 서서, 오히려 어느 때보다 의욕이 넘치는 상태였는데. 그래서 이제는 내가 할 일만 꾸준히 성실하게 하면 되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우울증은 그렇게 쉽게 가시는 게 아니었나봐. 내가 계속 덮어두고 모른 척 하니까 공황장애라는 친구까지 더 데리고 온 걸까. 육 개월은 금방 가겠지. 금방 스물 세살이 된 것만큼이나, 육 개월은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 가겠지. 그러면 나는 괜찮을 거야. 나는 다 이겨낼 수 있을 거야. 마음이 너무 아프고 속이 쿡쿡 쑤시지만, 이렇게 병원에 갔고 약도 먹고 걱정해주는 가족들도 있으니까. 금방 괜찮을 거야. 괜찮아, 다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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