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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밍 Jan 11. 2018

홀로 오롯할 용기

스물둘과 스물셋의 언저리에서



 

 모두에게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스스로의 곪은 상처들을 가만 들여다보는 일은 참 어렵기만 하다. 설사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던 결과라고 해도. 그것을 객관화된 수치로 마주한다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어설프고, 서투르고, 어리고, 불완전한 나의 모습. 그 무엇 하나 제대로 정해진 것 없이 어딘가에 둥둥 떠 있는 것만 같은 나의 현실을 두 눈 똑바로 뜬 채 마주 보는 데에는 생각보다도 더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다.      


 심리 검사 결과지를 받아 든 나는 올 한 해 동안의 내 모습을 돌아다본다. 오래 고민할 필요도 없이 2017년의 나, 스물두 살의 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했던 문제는 바로 ‘왜 살아야 하는가?’의 화두였다. 죽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나에게는 그럴 용기도, 그럴 명분도 충분하지 않았다. 다만, 끝없는 경쟁과 허무와 우울의 무게감에 지쳐버린 나에게는 ‘살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나만 이렇게 힘든 건지, 다른 사람들은 다 괜찮은 건지.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붙잡고 이토록 고된 삶을 버텨나가는 건지. 나에게 삶은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가득한 세계였다. 그때부터 늘, 만나는 사람들을 붙잡고는 물어보았다. 살아가는 이유가 뭐냐고, 나는 지금 당장 죽는다고 해도 아쉬울 게 없을 것 같다고. 다들 비슷한 대답들을 늘어놓았다. 죽지 못해 산다거나, 자기도 잘 모르겠다는 그런 얘기들을.     


 그날도 여느 때와 크게 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 술을 먹다가 적당히 분위기가 달아오를 때쯤. 나는 친하게 지내던 언니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날의 대답은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던 나에게, 적어도 남은 날들을 견뎌낼 이유를 만들어주었다. 네가 떠나고 남겨질 사람들을 생각해보라고. 너의 그 오래된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해두신 할머니를,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너만 보며 살아오신 어머니를 생각해보라고. 네가 떠나면 그분들이 감당할 슬픔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물론 나도, 네가 죽는다면 너무 슬퍼서 견딜 수 없을 것 같다고. 텅 비어있는 위로나 어설픈 공감이 아니라. 눈물이 어려 있던 그 말은 나에게 진심이 되어 다가왔다.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앞으로는 내 곁의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고 그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해서 살아가겠노라고 되뇌었다.      


 그렇게 ‘나’보다는 ‘나의 사람들’을 우선에 놓는 생활이 이어졌다. 누군가가 울적해하면 달려가서 이것저것을 사다 주고는 따뜻한 위로의 말들을 늘어놓았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아서 내가 끌어안기 힘든 일들까지 떠안기 일쑤였다. 지친 티를 내고 싶지 않아서 오히려 더 씩씩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곤 했다. 분명 사람들은 내게 고맙다며, 대단하다며 말해주는데. 이상하게 나는 전보다도 더 중심을 잡을 수가 없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타인이 주인이 되어버린 나의 삶은 점점 엉망이 되어갔다. 내가 조금 더 똑똑하고, 예쁘고, 착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 조금이라도 부족한 모습을 보이면 사람들이 금세 떠나버리고야 말 거라는 비뚤어진 마음. 그 잘못된 믿음의 탑 위에서 휘청거리는 날들이 늘어만 갔다.      


 그런 나에게 날아온 검사 결과는 아주 정확했다. 외면하고만 싶었던 현실을 뚜렷이 직시하게 해 줄 만큼. 타인으로부터 거절당하거나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에 극도로 민감한 회피성 성격장애, 지나치게 완벽한 것을 추구하며 과도하게 집착한다는 강박성 성격장애, 지속적인 부정적 인지와 행동 패턴을 특징으로 하는 우울성 성격장애. 이 세 가지 성격장애의 백분위가 80%, 심지어는 90%에 이른다는 사실은 나의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끊임없이 완벽해지기 위해서 스스로를 옭아매고, 정해놓은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면 혹여나 누군가 나에게 실망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답이 없는 문제들 속에서 헤매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울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갔다.     


 가만, 생각에 잠겼다. 오래 고민했고 천천히 생각했다. 그리고는 이내, 실은 그 아무도 나에게 완벽하기를 강요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네가 완벽해야만 너를 사랑할 것이라며 말했던 이들 또한 없었다. 하지만 스물두 해가 되도록. 아직도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에 서투른 나는, 그렇게 혼자서 만들어낸 그릇된 사고 속에 갇혀 내 자신을 괴롭히고 있었다. 조금 모자라면 뭐 어때. 실수하고 틀리면 어때. 그렇다고 해도 날 떠나는 사람들은 없을 거야. 설령 누군가 그러한 이유로 나를 떠난다고 해도, 그런 사람은 내 쪽에서 사양하면 되는 거야.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다른 사람을 힘껏 사랑하는 일, 그리고 그들로부터 넘치는 사랑을 받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우위에 놓여야 할 것은, 혼자서도 오롯이 서있을 수 있는 힘이었다.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휘둘리지 않는 나의 단단하고 견고한 내면. 다른 이의 인정과 칭찬 없이도 내가 나를 응원하고 지켜주고 보듬어줄 수 있는 용기. 내가 지금껏 다른 이들에게 해왔던 것처럼,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가짐. 이러한 것들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올 겨울의 나는 뒤늦게 깨달아가고 있다. 스물세 살의 나는 조금 더 나를, 그리고 나의 사람들을 아낌없이 사랑할 수 있는 나이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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