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상담에서 마주한 것들
상담실 안에는 푹신한 의자 두 개와 작고 동그란 테이블 하나가 놓여있었다. 우리는 그 조그마한 방 안에서 함께 한 시간쯤을 견디었다. 나는 말했고, 그녀는 들었다. 그녀는 가만히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었고, 나와 눈을 맞추었고, 내가 말한 것들을 정리하며 되물어주었다. 대단한 해결책이나 번뜩이는 깨달음은 없었지만. 그 가만한 응답 속에는 생각보다도 더 단단한 온기가 느껴졌다.
나는 누구에게라도 홀린 사람처럼 나의 구석구석까지를 그녀에게 내보였다. 그녀로부터는 그 어떤 어설픈 판단이나 위로도 듣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나는 아무에게도 말해본 적 없는 비밀들, 그러니까 내가 나의 삶을 끝내기 위해서 나의 물건들과 SNS의 계정을 정리했던 일, 나의 가족들을 사랑하지만 결코 좋아할 수는 없기에 자주 괴롭다는 사실, 이제는 나의 하루하루가 그리고 앞날이 전혀 기대되지가 않는다는 마음 같은 것들을 풀어놓았다.
그녀가 물어왔다.
"다른 사람에게 힘든 모습을 보여주는 게 무서워요?"
"무서워요. 다른 사람이 보기에 나는 항상 밝고, 웃음이 많고, 위안과 따뜻함을 주는 그런 사람일 텐데. 사람들의 그 시선이 두려워요. 제가 혹시라도 우울하거나 부정적인 얘기를 꺼내놓으면, 저한테 실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망해서 더 이상 나를 좋아하지 않을까 봐, 나를 영영 떠나버릴까 봐 겁이 나요."
"누가 당신을 떠날 것 같은데요? 누가 당신에게 실망하는 게 그렇게 두려워요?"
한동안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게. 나는 누가 그렇게 두려운 걸까. 짧은 순간, 많은 이들이 나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매일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부터, 이제는 낡은 이름이 되어버린 지난 인연들까지.
가만히 앉아 무수히 많은 얼굴을 떠올려보았으나, 과연 그들 중 누구로부터 미움을 받는 것이 그렇게 두려웠던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게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모르겠어요. 전 도대체 누가 그렇게 무서웠던 걸까요."
잠시 웃음이 났다. 내가 그토록 무서워하던 것들이, 실은 아무런 실체도 없는 것들이었다니.
나를 이미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나의 밝음이 아니라 어둠까지도 안아줄 텐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내 쪽에서도 사양하면 그만인데. 그 정도로 가깝지 않은 사이라면, 그 정도로 서로의 품을 내어줄 마음이 없는 사람이라면. 나에게도 더 이상 쓸모없는 인연일 뿐인 건데.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상담 한 번으로 모든 것이 드라마처럼 변하지는 않았다. 나는 여전히 죽고 싶은 마음이 넘실대는 우울증 환자다. 그럼에도 내가 깨달은 것 한 가지는, 바로 나의 두려움이 터무니없는 상상에 불과했다는 것. 명확한 대상도, 아무런 실체도 없는 텅 빈 그림자 같은 두려움에 나를 꽁꽁 묶어두었던 이는 바로 나 자신이었다는 것.
지금처럼 내가 내 자신을 조금씩 이해하고, 알아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나에게도 다시 살고 싶은 마음이 찾아오지 않을까. 나도 나를, 나의 삶을 사랑할 수 있게 되지는 않을까. 오늘은 아무 두려움 없이, 작은 기대를 품고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