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이 자꾸만 부딪치는 이유
이건 맞았고, 이건 틀렸고. 여기서는 이 숫자가 아니라 저 숫자를 대입했어야지. 처음부터 다시 해보자. 공식 옆에 펼쳐두고. 몇 번만 하다 보면 금방 익숙해질 거야. 정해진 논리대로만 따라가면 되는 거잖아.
아무리 다시 풀어봐도 어디에서부터 꼬인 건지 정 모르겠으면, 그때 답지를 펼쳐보자. 답지는 친절하게, 한 줄 한 줄 풀이를 알려주니까. 그렇게 답지대로 몇 번만 하다 보면. 도무지 이해가 안 가던 공식도 어느새 저절로 외워져 있을 거야. 어때, 생각했던 것보다 쉽지?
그래. 이제는 인정할 때가 된 것 같아. 그때는 몰랐지만, 아니 실은, 알고 싶은 마음조차 없었지만. 공부를 한다는 건 참 쉬운 일이었어. 해야 할 일이 '공부'밖에 없을 때에는 전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는데 말이야. 주위 어른들이 입을 모아서 '그래도 공부가 제일 쉬운 거야~'라고 얘기할 땐, 그 말들이 전부 핑계처럼 들렸었는데. 조금만 지나와보니까. 이렇게나 선명하게 보이는 거였네.
규칙이, 공식이, 정답이, 그리고 해설이 있는 공부를 한다는 건.
사랑에 비해서는 정말이지 터무니없이 쉬운 일이었어.
답이 없는 문제에 골몰한다는 건 얼마나 우스운 일인 줄 아니. 그 누구를 잡고 물어봐도, 명확한 답을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백 명의 사람들에게 털어놓아봤자 각기 다른 백 개의 오답의 돌아올 뿐이야. 사랑의 문제에 있어서는, 그 누구도 답을 알려줄 수 없거든. 나와 네가 만들어가는 이 세상에 하나뿐인 문제에는, 정해진 답이라는 게 존재할 리가 없거든. 답으로 향하는 길은 딱 한 갈래뿐이야. 너와 내가 서로의 서투른 마음을 하나둘씩 이어 붙여 나가는 수밖에는 없어.
가끔씩은 누가 내 손을 잡고, 차근차근 답으로 향하는 길을 알려줬으면 좋겠어. '네가 이렇게 말한 건 잘못이란다', '네가 여기서는 이렇게 행동했어야지.' 그러면 나는 고분고분한 어린아이가 되어서 네가 서있는 답을 향해 천천히 발을 내디뎠을 텐데. 도무지 답을 알 수가 없어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던 그 순간들마다 나를 이끌어주는 선생님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엉망으로 구겨져버린 나의 옛 만남들을 조금은 더 빳빳한 모양으로 간직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건, 사랑에 답이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위안이 되는 순간도 있다는 거야. 이건 비밀인데. 고등학교 삼 년 내내, 난 수학에는 젬병이었거든. 세상에서 가장 명확한 답이 존재하는 학문이 바로 수학인데도. 그렇게나 깔끔하게 똑 떨어지는 해설지의 설명을 보고도. 해설지 속에 숨어있는 논리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서 굵은 눈물을 뚝뚝 쏟아냈던 날들이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아. 눈물로 얼룩졌던 시험지, 그리고 그 위에 잔인하게 그어져 있던 빨간빛의 색연필이 아직도 눈에 선명해.
그 어린 날의 수학 시험지들처럼, 내 사랑에도 빨간 줄이 그어진다는 건 정말 상상만으로도 온몸이 아찔한 일이야. 그러니 참 다행이지. 사랑에는 모범 답안도, 정해진 공식 따위도 없다는 게. 누군가가 채점을 하려고 달려들 일도 없고. 내 방법이 틀렸다 손가락질할 수도 없는 거잖아. 그리고, 누가 좀 손가락질하면 어때. 또 누가 빨간펜을 집어 들고 우리를 쫓아오면 뭐 어때. 지금 사랑하는 우리가 이렇게 행복하다는데. 그럼, 그걸로 된 거지.
답을 모르는 우리 두 사람이 때로는 만신창이가 되도록 부딪치더라도. 너와 닿을 때마다 튀어 오르는 이 빨간빛의 마음은, 빨간빛 색연필보다도 더 진한 색으로 일렁이고 있으니까. 그럼, 그걸로 충분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