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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밍 Jul 10. 2018

인생의 사분면 (2)

잘하지 못하는 것을 좋아할 용기


인생의 사분면(1)에 이어서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남들 앞에서 춤을 춰본 적은 없었지만. 나는 늘 춤을 좋아했다. 그저 TV에서, 인터넷에서, 또 거리에서. 춤을 잘 추는 사람들을 보면 그게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나랑 똑같이 팔이 두 개씩, 다리가 두 개씩 달린 몸인데. 어쩜 나랑은 저렇게 다른 몸놀림을 가진 걸까. 나도 아주 어렸을 때는 길에서 음악만 흘러나오면 꼭 한바탕 춤을 추고서야 지나갔다는데. 어린 나는 어쩜 그렇게 용기가 넘쳤던 걸까.


 이런 일들은 꼭 해보지 않아도 '내가 잘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어떻게 아냐'라고 묻는다면 '그걸 굳이 해봐야 아느냐'라고 되묻고 싶다. 나이를 어느 정도 먹으면, 내가 어떤 재능을 타고났는지 아닌지쯤은 몸으로 해보지 않아도 직감으로 알게 된다. 내가 아무리 정확한 모양과 순서로 몸을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화면 속의 저 댄서들과 똑같은 느낌을 풍길 수 없다는 것쯤은, 굳이 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명백한 사실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늘 마음속에 흥을 감추고 살아왔다. 노래가 들려오면, 머릿속에서는 이미 화려한 무대 위의 안무가 그려지지만. 차마 몸을 움직일 수는 없었다. 그저 깔짝깔짝, 고개를 움직이거나 발을 구르면서 소심한 리듬을 탈 뿐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서 그 마음을 드러내는 일이 더 힘들었다. 내 실력이 형편없다는 건 내가 제일 잘 아니까. 나의 흥은 점점 안으로 안으로 숨어 들어갔다.


 무슨 배짱이었는지 몇 년이 흐른 지금도 전혀 알 수가 없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한 나는 덜컥, 댄스 동아리에 지원을 했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하나, 나빴다고 해야 하나. 그 해에는 지원자가 그리 많지 않아 별도의 오디션이 열리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그 어떤 동작도 할 수 없는 백지의 몸을 가진 상태로, 학교에서 단 하나뿐인 댄스 동아리의 부원이 되었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무대 위에서 삐그덕거리고 있을 내 모습이 훤히 그려졌다.




 걱정과 달리 동아리 생활은 정말 좋았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내가 감히 '댄스 동아리'의 부원이라는 사실 자체가, 커다란 거울이 붙어있는 우리만의 연습실이, 시끄러운 음악이 새어 나오는 그 연습실의 복도가, 춤을 좋아한다는 사실 하나로 모인 사람들이. 모든 것이 좋아서 '완벽하다'는 말을 함부로 쓰고 싶을 지경이었다. 더운 여름날에 땀을 뻘뻘 흘려도, 연습실 자리가 비좁아서 화장실 거울을 보며 춤을 춰도, 시간이 부족해 모두가 잠든 깜깜한 기숙사에서 혼자 몸을 움직여도. 아무래도 다 좋았다. 어찌 되었든 난 춤을 추고 있으니까. 그 사실 하나로 모든 것이 다 괜찮아지곤 했다. 


 단 한 가지. 아무리 애써도 괜찮아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렇게나 춤을 좋아하는데. 누구보다도 열심히 연습을 하는데도. 내 마음의 크기 혹은 노력의 정도와는 상관없이 나의 타고난 재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때에는 정말이지 속상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수없이 연습을 해도 차마 따라갈 수 없는 그 '느낌'은 너무도 명백하게 재능의 영역에 속해 있는 것이었다. 춤을 추면 출수록, 내가 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받는 기분이었다. 이제껏 내 안의 흥을 숨기며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반복해서 직시하는 기분이 들었다. 


 무대에 오를 때면 더 끔찍했다. 우리의 공연을 보러 온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의 몸짓을 내보이는 일은 즐겁기보다는 항상 창피했다. 내가 얼마나 못하는지 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내 옆의 친구들보다 내가 한참 부족하다는 걸 너무나 잘 아니까. 그렇게 창피함과 열등감으로 얼룩진 나의 무대는 연습 때보다도 훨씬 더 엉망이 되곤 했다. 움츠러든 자세와 마음가짐은 아마 무대를 보는 사람들에게까지 고스란히 전달되었으리라. 그렇게 공연 하나를 겨우 마치고 난 뒤, 나의 무대 영상을 확인할 때에면 늘 아쉬움이 진득하게 묻어났다. 


그렇게 힘들면, 그냥 그만두지 그랬냐고?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제 2 사분면'이 삶의 가장 큰 딜레마이자 골칫거리인 것이다. 분명 나 좋자고 시작한 일인데. 내가 즐거우니까 뛰어든 일인데도. 그 일에 몰두할수록 마음은 오히려 가라앉고야 마는 희한함. 좋아하는 일에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그 일을 좋아할 수 없게 되는 이상한 반복. 그러한 것들이 우리 인생의 제 2 사분면에 놓여있다.




인생의 사분면(3)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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