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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밍 Jul 11. 2018

인생의 사분면 (3)

잘하지 못하는 것을 좋아할 용기


인생의 사분면(2)에 이어서 



그렇게 좋아하지만 도저히 잘 해낼 수는 없었던 시간들이 흘러갔다. 춤을 출 때에는 행복한데, 공연을 하는 것은 행복하지 않았다. 행복했다가 불행했다가. 또다시 행복했다가 불행했다가. 어딘가 희한하고 지겨운 반복이 무려 3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졸업공연을 끝으로. 드디어 나는 춤에서 손을 털었다.


 대학을 입학하고 난 뒤에도 여전히 수많은 댄스 동아리들이 유혹의 손길을 보내왔지만. 나는 그 어느 것 하나에도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은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가 잘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질질 붙잡고 늘어질 용기가 없다고 느껴졌다. 춤을 좋아하는 마음보다도 완벽하지 못한 공연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져버린 상태로. 그렇게 다시 4년이 흘렀다.


 이제 나는 영영, 다시는, 그토록 괴로웠던 '춤'과는 연이 닿을 일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우습게도.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 망각의 힘이 얼마나 커다랬는지. 남은 인생에서 절대로 발을 들일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 연습실에. 나는 제 발로 걸어 들어가고야 말았다. 그렇다, 나는 또다시 춤을 추고 있다. 내 손으로 가까운 학원에 전화를 걸어 상담 일정을 잡았고, 내 의지로 그 학원에 찾아가 이런저런 설명을 들었다.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단숨에 등록까지 마치는 데에는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사실. 두려웠다. 다시 그 고통스러웠던 '좋아함-좋아하지만 잘하지 못해서 불행함'의 사이클에 빠져버리면 어쩌지. 나는 이전만큼 쉽게 좌절에서 빠져나올 힘이 없는데. 졸업을 앞둔 대학생이 춤을 배우러 다닌다고 누가 비웃기라도 하면 어쩌지. 나보다도 훨씬 어린 친구들이 너무 쉽게 쉽게 잘 따라 추는 걸 보면서, 가뜩이나 바닥을 치고 있는 자존감을 아예 잃어버리면 어쩌지. 고민과 걱정을 늘어놓자면 한없이 길어지기만 했다.


 

그러나 그 길고 긴 걱정의 목록보다도 더 강렬하게 나를 움직인 것은 단지 '춤을 다시 추고 싶다'는 마음 하나뿐이었다. 과거와 미래를 불안해하느라 우울증에 발목을 붙잡힌 지 일 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 일 년,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훨씬 더 오랜 시간 동안. 나에게는 아무런 의욕이 없었다. 먹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장소도,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의욕이 없는 삶에는 더 이상 아무런 기대가 생기지 않았다.


 그랬던 나에게, 드디어 다시.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일 년 만에. 그런 상황에서 더 이상 내가 그 일을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못하면 좀 어때. 내가 이걸로 공연을 하겠다는 것도, 직업을 삼겠다는 것도 아닌데. 춤 좀 못 출 수도 있지. 내 옆에 서있는 사람보다, 조금 서투르고 어설프면 뭐 어때. 그걸로 웃음거리를 삼는 사람들이 이상한 거지. 그냥, 내가 춤을 출 때 즐거우면 되는 거지.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지난 일 년 동안 잃어버렸던 나의 인생을 다시 되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일을 기대할 수 없어 밤마다 삶이 끝나기를 바랐던 내가. 처음으로 내일이 오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빨리 내일이 오기를, 어서 내일이 밝아와서 수업을 듣기를. 그토록 간절히 원하게 되었다. 내일을 기대하며 잠든다는 건,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건 이런 기분이었구나. 나는 잃어버린 마음의 조각들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들의 인생은 우리가 바라는 것보다도 훨씬 더 잔인하다. 우리는 자주 '내가 좋아하는 것'이 '내가 잘하는 것'과 일치하지 않음에 탄식하고, 나의 재능과 조건을 원망하며 울상을 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 한 가지만으로도. 그것이 혹여나 남들이 보기에는 아주 우스꽝스럽고, 하찮고, 심지어 쓸모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오로지 내가 그 일을 좋아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들의 인생이 얼마나 반짝이는 생기를 머금을 수 있는지를, 나는 몸소 깨달아나가고 있다. 


 잘하지 못하는 것을 좋아하기란, 참 어렵다. 그렇지만 그 어려움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좋아하는 마음만 있다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또 얼마나 힘든 상황에서든지. 조금은 더 경쾌하게 발을 옮기며 리듬을 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우리의 삶에는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일'보다도 우리가 '좋아하는 일'이 조금은 더 많이 필요하다. 좋아하는 일로 가득 찬 삶은 반짝반짝 빛이 나니까. 마치 흑백이었던 나의 일상에 몸을 들썩이게 하는 멜로디가 흐르게 된 것처럼. 


 당신과 내가 같은 리듬에 춤을 출 수 있는 사람이기를. 그렇게 리듬에 몸을 맡기며 이토록 잔인한 삶을 조금이나마 더 즐겁게 웃으며 견딜 수 있기를.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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